어쩌면 이렇게도 안 풀릴 수 있을까. 국가대표 수비수 장현수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그는 감독의 꾸준한 신임과 기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대형사고를 치며 비난의 표적이 됐다. 본인의 잘못도 있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유독 장현수에게만 가혹한 불운이 이어지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러시아월드컵에서 스웨덴과 멕시코에 2연패를 당했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첫 두 경기를 모두 패한 것은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20년만이다. 아직 최종전이 남아 있어 16강 진출 가능성이 실낱같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상대가 FIFA 랭킹 1위인 독일이라 전망은 어둡다. 오히려 3전 전패를 걱정해야할 처지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에 모두 중앙수비수로 선발출전했던 장현수는 안타깝게도 번번이 대표팀 부진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한국이 2경기에서 허용한 3실점에 모두 직·간접적으로 장현수가 관여되어 있었다.

불운의 시작은 멕시코전 전반 27분 박주호의 부상이었다. 장현수가 롱패스로 연결한 볼이 부정확하여 라인을 벗어났고 박주호는 무리하게 다리를 뻗어 패스를 받으려다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다. 박주호는 김민우와 교체됐고 이때부터 한국의 수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후반 김민우가 뼈아픈 PK(페널티킥)를 내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장현수의 패스미스가 상황의 발단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박주호의 부상 자체는 그저 운이 없었던 사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은 '장현수 때문에 박주호가 부상을 입었다→ 김민우가 투입된 이후 PK를 내줬다→ 고로 모든 책임이 장현수로부터 비롯됐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장현수 선수의 성급했던 태클 시도

[월드컵] 장현수 조현우 김영권, 아쉬움 가득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월드컵] 장현수 조현우 김영권, 아쉬움 가득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민우의 PK 상황에도 장현수의 경기력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후반 17분 또다시 장현수의 패스미스가 스웨덴에 차단당하며 역습 상황이 발생했고, 한국의 수비라인이 무너지면서 김민우가 문전에서 다급하게 볼을 걷어내려다가 무리한 태클을 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고 이날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장현수와 김민우는 많은 비난을 받아야했다.

신태용 감독은 멕시코전에서도 다시 한 번 장현수와 김민우를 기용했다. 홍철이나 오반석, 정승현같은 포지션이 겹치는 대체 자원들을 대거 뽑아놓고도 신 감독은 정작 본선에서 장현수와 김민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2차전에서도 이들로부터 비롯된 수비불안이 최악의 상황을 불러왔다.

전반 초반 20여분간 공세를 이어가던 한국은 멕시코의 역습 상황에서 김민우가 상대의 측면침투를 막지 못하여 공간을 내줬다. 이를 커버하려던 장현수가 성급하게 태클을 시도하다가 문전에서 크로스로 올린 공이 팔에 맞으며 페널티킥을 내줬다. 태클이 실패하면 바로 공간이 무방비로 뜷리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태클에 나설 타이밍도 아니었던데다, 상대가 크로스를 시도하는 동선에서 대놓고 팔을 치켜드는 것은 수비수로서 기본을 망각한 실수였다. 지난 스웨덴과 1차전 당시 PK를 내주는 과정에서 장현수와 김민우의 역할만 바뀌었을 뿐이다.

후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추가골 상황에서도 장현수의 태클 실수가 있었다. 앞선 PK 상황과 유사하게 장현수는 에르난데스가 골문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슛각도를 좁히거나 지연시키는 플레이 대신 성급하게 태클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에르난데스는 장현수를 제끼고 완벽한 슈팅공간과 타이밍을 확보한 이후 침착하게 추가골을 넣었다. 이영표-안정환 등 이날 경기 해설을 맡았던 축구전문가들도 "태클을 해야할 타이밍이 아니었다"며 이례적으로 장현수의 수비 실수를 집중적으로 비판할 정도였다.

한국은 2경기에서 모두 1골차로 패했다. 실력차는 있었지만 막상 붙어보니 한국이 결코 이기지 못할 상대도 아니었다. 장현수의 실수가 아니었더라면 두 경기 모두 최소한 비기거나 혹은 승기를 잡을 수도 있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 후 한국대표팀의 경기력에 실망한 팬들의 분노는 특히 부동의 주전 수비수였음에도 연이어 실점의 빌미를 내준 장현수에게 집중됐다.

대표팀 감독들에게 사랑 받았던 장현수, 왜?

장현수는 2010년대 이후 한국대표팀 수비라인의 중추로서 꾸준히 활약해왔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부터 A대표팀에서 손흥민-기성용 등과 함께 대체불가한 선수로 중용받았고, 신태용호에서도 거의 모든 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섰다. 연령대별 대표팀 시절에도 홍명보-고 이광종 감독의 사랑을 받았다. 클럽에서도 일본과 중국 등 해외 무대를 넘나들며 아시아권에서는 정상급의 실력과 경험을 인정받은 수비수다.

하지만 장현수는 2016년 후반기부터 경기력 논란에 휘말리며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 사실상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특히 한국축구의 위기를 불러온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장현수는 연이은 수비실수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며 질타를 받는 장면이 늘었다. 당시 김영권-홍정호-김기희-김주영 등 유독 중앙수비수들이 집단적으로 슬럼프와 중국화 논란 등에 휘말렸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A매치 경기에 출전했고 가장 많은 신임을 얻었던 장현수에게 그만큼 비난이 쏠리게 된 측면도 있었다.

수비수로서 장현수의 장점은 이른바 다재다능한 '육각형 수비수'라는 점이다. 현대축구에서 커맨더형 수비수에게 요구하는 라인 조율, 빌드업, 투지, 리더십,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 등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선수다. 팬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감독들은 장현수같은 선수를 선호한다.

하지만 정작 장현수의 장점이라는 것이 뒤집어말하면 세계무대 기준으로 어느 하나 특출나지못한 어정쩡함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스피드가 아주 뛰어나지도 제공권이나 몸싸움이 탁월하지도 않고 수비수임에도 태클 능력은 지나치게 떨어진다. 그래서 정작 경기를 지켜본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장현수가 대체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에서 보듯 장현수의 최대 단점은 위기 상황에서 순간적인 상황 판단력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A매치 때마다 연이어 실수를 해 비난 여론을 받다 보니 선수 본인이 정신적으로 위축된 면도 있는 듯하다. 일단 실점 상황에서 실수 장면이 지나치게 크게 각인되며 장현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라면 그에 대한 부담감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월드컵 직전까지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던 파트너 김영권이나 2010 남아공대회의 조용형같은 선수들이 본선무대에서 절치부심한 모습으로 재평가를 받았던 것이 좋은 예다.

1994년 미국월드컵의 황선홍, 1998년 프랑스대회의 하석주, 2014년 브라질대회의 박주영과 정성룡 등 월드컵에서 저조한 플레이로 국민적 비난에 휩싸였던 선수들의 사례는 많다. 하지만 이 정도로 비난 여론이 고조된 적은 많지 않았다. 월드컵의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마음고생에 시달렸던 선배들의 사례처럼 장현수의 미래까지 걱정되는 순간이다.

장현수의 부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한국축구가 지난 4년간 발전하지 못한 이유, 장현수보다 더 나은 수비수를 발굴하지 못한 근본적인 책임까지 장현수가 모두 짊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장현수는 인맥이나 특혜로 국가대표로 발탁된 선수도 아니고 연령대별 대표팀부터 많은 경쟁과 노력을 통하여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장현수를 발탁하고 중용한 것은 역대 대표팀 감독들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거듭된 실수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것은 장현수 본인이다.

이제는 독일과의 최종전에 장현수를 출장시켜야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할 문제다. 장현수를 벤치로 내리는 것은 여론의 비난에 의한 선택이 아닌 선수보호를 위한 것에 가깝다. 이미 거듭된 부진과 비난으로 자신감을 잃은 선수를 계속해서 기용한다는 것은 팀으로서나 선수 개인으로서나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독일을 상대로 무실점 승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독일전에서 어떻게든 총력전으로 임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자칫 장현수를 또 출전시켰다가 실점이나 실수라도 허용할 경우 그때는 정말로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월드컵이 장현수 개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무대도 아니고 지금까지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고통을 맛보고 있는 장현수를 잠시 쉬게해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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