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의 작품 포스터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의 작품 포스터 ⓒ 씨네룩스


다음 네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 데이비드 보위, 류이치 사카모토, 오시마 나기사. 이 영화에는 기타노 다케시와 데이비드 보위의 젊은 시절이 등장하며,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삽입곡이 배경으로 깔린다. 덧붙여서, 시네필들의 우상 중 하나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아도 나름 볼만하다.

아마 영화의 제목이 궁금할 텐데, 네 사람을 모두 모른다 해도 영화의 제목을 이미 알고 있을 공산이 크다. 이 영화에서 어느 인물의 입을 빌려 언급되는 제목은 바로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다. 어디선가 익숙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피아노에 관심이 많거나 혹은 음악 감상을 즐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 곡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 One summer's day >와 기쿠지로의 여름의 < Summer >과 더불어 피아노 연주자를 자극하는 음악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원체 음악이 좋아서다.

이 곡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이라는 점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것을 증명하듯 류이치 사카모토를 다룬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의 도입부에 이 곡이 흘러나온다. 류이치가 20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물에 잠겼던 피아노를 쓰다듬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류이치 본인이 후두암에 걸렸던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물에 잠긴' 피아노와 '목이 잠긴' 류이치를 대비하며 두 '사건'을 동시에 위로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하는 곡이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인 것을 상기해 보면 이 곡은 영화 전체를 은유한다.

물에 잠긴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가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의 한 장면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의 한 장면 ⓒ 씨네룩스


류이치는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피아노를 일컬어 "물에 잠긴 피아노 송장을 매만지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류이치는 "나름 쓸만한 소리가 난다"고도 말한다. 후반부에 가서는 "물에 잠긴 피아노는 자연의 소리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이 조율한 상태의 음은 완벽하지가 않다"고도 덧붙인다. 이 영화에서 류이치가 물에 잠긴 피아노에 자신을 이입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발언들은 후두암을 극복한 자신이 비로소 본연의 상태로 돌아왔음을 비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류이치가 생각하는 본연의 상태는 단순히 '작곡가로서 작곡일을 하는' 게 아니다.

류이치는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 감독의 제안을 받고 작곡계에 복귀한다. 재밌게도, 그가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가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다. 죽음에서 돌아왔다는 상징성을 품에 안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류이치는 '쓰나미 피해자'들 앞에서 '물에 잠긴 피아노'를 연주한다. 후두암에 걸렸던 사실 고백 - 복귀작으로 <레버넌트>를 선정 - 쓰나미 피해자들 앞에서 연주. 이하의 순서로 시작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류이치 본인의 심정을 고백한다.

병에 걸리기 이전에 자신의 모습은 <메리크리스마스>이고, 그 후의 행적은 <레버넌트>라는 비유법은 이 영화가 '류이치'의 영화임을 상기시킨다. 그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류이치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의 작곡을 담당하게 된 계기를 말하는데 그 이유란 게 몹시 재미있다. 그는 오시마 나기사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고, 자신의 성격상 "하겠어요"라고 답하지 못해 "작곡을 맡겨 주시면 출연할게요."라고 말한다. 이후 영화가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보면, 죽음을 극복한 이후 류이치는 먼저 나서서 "하겠어요"를 말하는 사람이 된다.

류이치는 음악이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일까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의 한 장면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의 한 장면 ⓒ 씨네룩스


사실 그 이전에도 류이치는 '하겠어요' 쪽의 사람이었다. 영화는 '9.11 테러'와 '이라크전'의 영상을 짧게 보여주고, 류이치 본인은 그 두 사건을 언급하며 자기 생각을 말한다. 여러 시위 현장에서 목소리를 냈다는 류이치는 그것과는 반대로 일에서는 선뜻 자신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젊은 시절에는 무척 열정적이었음을 고백하며 나이가 든 지금은 체력이 부족해 하루 8시간밖에 일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자신은 꺼져가는 불씨였으며, 가장 활활 타오르던 때로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를 꼽은 것이다.

그는 '9.11 테러' 당시 현장에 있었고 사건 이후 일주일 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고 말한다. 추모 광장에서 어느 청년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일을 재개했다는 그의 말로 추측하건대, 류이치는 음악이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그에게 삶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음악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영화는 류이치의 삶이 아니라 작곡한 음악을 대신 들려준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줄곧 이어지는 류이치의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한다. 그중에서도 <메리크리스마스>가 류이치 사카모토를 상징하는 곡인 것은 곡 자체의 인기 때문만은 아니다. 글 말머리에 와서 뒤늦게 고백하건대, <메리크리스마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아주 잘생긴 모습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비록 상대가 데이비드 보위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평소에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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