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H조 일본과 콜롬비아의 경기. 이날 일본은 콜롬비아 선수 1명이 퇴장한 가운데 2-1로 콜롬비아를 누르고 1승을 올렸다.

2018 러시아 월드컵 H조 일본과 콜롬비아의 경기. 이날 일본은 콜롬비아 선수 1명이 퇴장한 가운데 2-1로 콜롬비아를 누르고 1승을 올렸다. ⓒ AP-연합뉴스


일본이 '대어' 콜롬비아를 잡았다. 일본이 19일 오후 9시(아래 한국시각) 러시아 모르도바에 위치한 모르도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H조 1차전 콜롬비아와 맞대결에서 2-1로 승리했다. 일본은 H조 최약체라는 평가를 딛고 첫판부터 승전고를 울리며 16강 진출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일본은 4년 전 브라질에서 콜롬비아에 뼈아픈 패배를 맛본 바 있었다. 당시 조별리그 1무 1패로 16강 진출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며 최종전에 나섰지만,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앞세운 상대의 전력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일본은 1-4로 완패했고, 대한민국과 같은 1무 2패로 대회를 마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4년 후, 일본은 이전의 아픔을 갚는 데 성공했다. 시작부터 경쾌했다. 일본은 콜롬비아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몰아쳤다. 전반 3분 만에 선제골을 뽑았다. 위협적인 역습으로 콜롬비아 진영을 헤집었고, 카가와 신지가 페널티킥을 얻어내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 콜롬비아 수비의 핵심 카를로스 산체스는 핸드볼 반칙을 범하며 퇴장까지 당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시작하자마자 수적 우위를 점했다. 상대는 쉽사리 전진할 수 없었고, 일본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반 39분, 후안 퀸테로가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일본의 골망을 출렁였다. 그러나 일본은 노련한 경기 운영을 보이며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고, 후반 28분 오사코 유야가 역전골을 뽑아내며 승리를 챙겼다.

놀라운 경기력, 일본이 달라졌다

일본이 정말 잘했다. 특유의 색깔인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역습과 위협적인 슈팅을 수차례 만들어냈다. 이른 시간 상대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의 장점도 영리하게 활용하며, 콜롬비아의 체력을 빼놓는 모습도 보였다. 수비에서는 조직적인 압박과 협력을 통해 안정감을 더했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투쟁심도 느껴졌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넘쳤고, 실력으로 목표를 이뤄냈다.

사실 일본의 선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도 한국 못지않게 월드컵을 앞둔 분위기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일본은 월드컵 개막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러시아행을 이끈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을 경질했다. 본선 티켓은 따냈지만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을 고집하고, 스타급 선수들과 갈등이 끊이질 않으며, 평가전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일본은 긴급히 니시노 아키라 일본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게 감독직을 맡겼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에서 1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UAE와 이라크에 패하는 등 안 그래도 불안한 모습을 노출한 일본이었다. 일본 축구의 상징인 혼다 게이스케와 카가와 신지도 이전과 같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이제는 팀 분위기까지 뒤숭숭해졌으니 본선에서 '힘겨울 것'이란 평가는 당연했다.

본선 조별리그에서 맞붙는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4년 전 1-4 대패를 안긴 바 있는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 사디오 마네가 이끄는 '돌풍의 팀' 세네갈,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가 버틴 폴란드 등 쉬운 상대가 없었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치른 다섯 차례 평가전에서도 1승 1무 3패로 부진했다. 마지막 평가전이었던 파라과이전에서 4-2로 대승을 거뒀지만,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파라과이와 평가전 이전까지 4경기 2골에 그친 결정력을 보완할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일찍이 수적 우위를 점한 것을 행운이라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명백한 실력이다. 콜롬비아의 허를 찌르는 역습이 기회를 만들었고, 퇴장을 불러왔다. 볼을 소유하며 상대의 체력을 빼고, 틈을 노려 정신까지 흐트러뜨리는 노련함은 우리의 숙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기본에 충실한 일본

 2018 러시아 월드컵 H조 일본과 콜롬비아의 경기 장면. 이날 일본은 2-1로 콜롬비아를 꺾고 1승을 올렸다.

2018 러시아 월드컵 H조 일본과 콜롬비아의 경기 장면. 이날 일본은 2-1로 콜롬비아를 꺾고 1승을 올렸다. ⓒ AP/연합뉴스


일본이 차고 넘친 어두운 전망을 뒤엎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탄탄한 기본기다. 확실히 일본은 기본기가 좋다. 수비가 밀집한 공간에서도 여유롭게 볼을 다룬다. 빠르고 강한 패스를 안정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키핑 능력이 있고,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를 수 있는 창의성까지 갖췄다. 

일본의 공격은 특별하지 않았다. 오버래핑으로 생긴 측면 공간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역습에서의 판단은 빨랐고, 패스는 섬세했다. 그 결과 슈팅 수(14-8)에서 크게 앞섰고, 키 패스(10-6) 성공에서도 우위를 보였다. 그리고 결과를 가져왔다. 특별한 것이 아닌, 축구의 기본에 충실한 결과다.

또 하나의 기본. 일본은 승리에 대한 의지를 그라운드에서 보여줬다. 인간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신체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전반 막판 동점골을 내줄 때만 해도 '역시 일본 축구의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는구나' 싶었지만, 후반전 볼을 향한 그들의 집념에서 '내 생각이 틀렸구나'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콜롬비아는 후반전 초반부터 뛰지를 못했다. 수적 열세를 메우기 위해 평소보다 많이 뛴 이유도 있었지만, 일본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말려든 것이 가장 컸다. 일본의 볼을 빼앗기 위해 압박에 나서야 했고, 빠른 공격으로 뒷공간을 노려야 했지만 무뎌진 발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본이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것은 아니다. 1승을 따냈을 뿐이다. 1승만으로도 16강에 오를 수는 있지만, 확률은 극히 낮다. 일본이 조별리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세네갈과 폴란드를 상대로도 승점을 따내야 한다. 세네갈이 시드배정국 폴란드를 2-1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일본의 도전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첫 경기 이변을 연출한 일본이다. 고질병으로 불린 약점을 보완하는 데도 성공했다. 애초부터 큰 기대를 받지 못한 만큼, 부담도 적다.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일본은 어디까지 올라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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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VS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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