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이다. 1978년 첫 솔로 앨범인 < Thousand knives >를 발표하고 3인조 테크노 그룹인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류이치 사카모토는 1983년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면서 영화음악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7년 <마지막 황제>의 OST를 통해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종합예술가와 환경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아티스트로서 정점에서 활동하던 2012년부터 인후암 판정을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한 2014년을 거쳐 2017년 새로운 앨범 < async >를 대중에게 선보이기까지 5년의 시간을 담았다. 연출을 맡은 스티븐 노무라 쉬블 감독은 일본 내 지진, 쓰나미, 방사성 물질 노출 문제가 연이어 발생한 2012년에 반핵활동가로 목소리를 내던 류이치 사카모토를 보고 개인의 철학과 사상이 어떻게 예술에 스며드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작품을 기획했다고 설명한다.

2014년 류이치 사카모토가 암으로 판정을 받으면서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영화음악을 의뢰받은 류이치 사카모토는 치료와 작업을 병행하면서 인생의 2막을 연다. 발병 전 구상했던 앨범의 아이디어를 백지화하고 다시 출발점에 선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의 한 장면

▲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의 한 장면 ⓒ 씨네룩스


카메라는 삶의 위기를 겪은 아티스트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듣고 생각하는지 관찰한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예술적으로 승화하는지 엿본다. 누구나 인생이 그런 것처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길을 뒤따른다.

철저히 '현재 작업'만으로 이뤄진 한 사람의 다큐멘터리

아티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는 일대기를 다루거나 음악적인 성과를 검토하는 방식을 흔히 취한다. 이와 달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현재 작업을 중심에 놓는다. 부모, 결혼, 아내, 아이 등 사생활에 관한 부분은 다루질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는 형식도 멀리 한다. 영화는 오로지 류이치 사카모토가 어떻게 음악을 창조하는 가에만 집중한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암 발병 이후 그 전부터 기획했던 새 앨범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음과 음악은 무엇인가 파고든 끝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의 새로운 사운드트랙을 만든다는 해답을 찾는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사물의 소리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을 따라 음악에 넣기 위해 숲속을 걷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 뒷마당에 내리는 빗소리, 북극의 빙하가 녹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수집한다. 빗소리를 담기 위해 양동이를 뒤집어쓰는 귀여운 모습도 보여준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의 한 장면

▲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의 한 장면 ⓒ 씨네룩스


류이치 사카모토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를 "훌륭히 편집하여 흐름이 좋고 계속 화제가 이동해간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스티븐 노무라 쉬블 감독은 많은 영상을 찍고 모은 다음에 편집하여 고유한 서사와 리듬을 만들었다. 새로운 앨범을 준비 중인 '현재'의 류이치 사카모토와 '과거'의 류이치 사카모토는 비슷하면서 때로는 이질적으로 맞닿는다.

과거의 류이치 사카모토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옐로우 뮤직 오케스트라'로 활동하던 당시 영상이다. 숨겨졌던 작업 비화를 들려주는 대목도 재미있다. 특히 1990년 <마지막 사랑>의 영화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엔니오 모리꼬네를 언급할 때엔 웃음이 터진다.

스티븐 노무라 쉬블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를 통해 "류이치 사카모토가 세상을 어떻게 듣는지, 그것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하는지 지켜봄으로써 관객들이 스스로 새로운 인식의 창을 열 수 있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영화는 음악, 환경, 세계, 권력, 역사를 바라보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시각이 확실히 드러난다. 아티스트의 근사한 초상화로 손색이 없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의 한 장면

▲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의 한 장면 ⓒ 씨네룩스


류이치 사카모토는 '소리의 영원성'과 '자연스러운 소리'를 함께 찾는다. 두 가지가 모순된 개념임을 알지만, 그의 탐구는 멈추질 않는다. 이것은 꼬리 또는 에필로그를 뜻하는 '코다(Coda)'라는 제목이 지닌 역설과 만난다.

암 판정 이후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 아티스트에게 종결과 따라붙는 코다를 붙인 건 뭔가 이상하다. 영화는 제목, 그리고 류이키 사카모토가 삶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바로 중간에 나오는 <마지막 사랑>의 한 구절로 말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 포스터

▲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영화 포스터 ⓒ 씨네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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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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