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작품 포스터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작품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인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켜내는 사람이다. 좋든 싫든 간에 자신이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지켜내야 한다. 집단으로 보면 구성원 모두를 포용하는 방향일 테고, 개인으로 보면 자신이 숨기고 싶은 것까지 껴안는 것이다. 꼭 드러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아픈 것이라 해서 덮어두기만 한다면 상처는 곪는다. 어찌됐든 상처를 치료할 때 상처 부위와 접촉하게 된다. 그렇다면 굳이 상처를 곪게 할 이유가 없다.

주인의식으로 뭉친,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는 주인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만들어 낸 영화다. CJ 문화재단이 주관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을 기반으로 했고, 300만여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의 전체 시나리오는 두 가지로, 전반부와 후반부의 대비가 명확하다. 전반부가 약간의 유머를 섞어 옥분을 소개하는 것이라면, 후반부는 문제에 대한 조명이 주가 된다.

전반부의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전통시장에서 수선가게를 하는 옥분(나문희 분)은 이것저것 트집 잡아 구청에 민원을 넣고는 한다. 이른바 '도깨비 할머니'로 불리는 그녀는 시장 상인과 구청 직원 모두에게 미움받고 있다. 하지만 민원 내용이란 게 모두 법과 제도를 철저히 따지는 것이어서 딱히 제제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구청에 새로 발령 온 직원 민재 (이제훈 분)가 그녀와 엮이게 되고, 영어를 가르쳐 주는 대신 민원을 멈추기로 약속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후반부의 이야기는 이렇다. 옥분과 정심(손숙 분)을 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다. 두 사람은 일본군을 피해 함께 도망쳤다. 정심이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고발하려던 것과는 달리 옥분은 사건을 숨기려 했다. 그러던 중 정심이 치매에 걸려 증언을 못 하게 되자 옥분이 대신 연설 무대에 선다. 그녀는 정심으로부터 주인됨을 이어받아 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아이 캔 스피크>는 '나는 말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연설대에 오르게 되는 옥분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주인이 있다. 옥분은 '어느 곳에 있어야 할지를 아는 주인'이고, 정심은 '일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주인'이다. 영화는 옥분이 정심을 계승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인물의 대비를 통해 문제가 부각되고, 각각 대립 관계의 인물과 성격이 뒤바뀌게 된다. 말하자면 인물들이 서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부에서 법과 제도를 중시하던 옥분은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과 갈등을 빚는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갑갑하리만큼 사소한 일에 법을 주장하던 그녀가, 대회협력팀이라는 이름의 용역 깡패가 이웃에게 행패를 부리는 걸 막지 못한다. 소소함에 집착하다 큰 것을 놓친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옥분과 대비되는 사람이 바로 구청 직원 민재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민재는 옥분처럼 법과 제도를 중시한다. 첫 번째로는 민원서류를 들고 온 옥분에게 번호표를 먼저 뽑으라며 대응하는 모습이 있고, 두 번째로는 구청장과의 대화에서 재개발 회사에 형식상 고소를 하고 소송에서 지면 그만이라며 '짜고 치는 고스톱'을 건의한 것이 있다. 즉,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 성격이 유사하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민재는 옥분과는 다르게 '주도적' 주인이 아니다. 오히려 민재는 주인을 섬기는 사람에 해당한다. 공무원이라는 직책은 위에서 아래로의 명령이므로 그러하다. 그래서 민재는 옥분과는 반대로 큰 것에 집착하다 소소함을 잃고 만다. 하나뿐인 동생에게 지원해줄 것은 해주면서도 사소한 부분은 놓치고 만다. 시장 사람들의 문제에 관해서도 제도에 도전할지언정 마음은 이해해주지 못한다.

주인 의식을 갖고 시장 일을 해결하는 옥분과, 업무의 일환으로만 시장 일을 대하는 민재는 서로 사사건건 부딪친다. 표면적인 성격이 부딪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면에서 두 사람은 표면 성격과 정반대다. 옥분은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숨겨두었고, 민재는 부모님 없이 동생을 키워야 하는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을 숨겼기에 주인이 아니고, 자신을 드러냈기에 주인이다.

개인적 이유와 공적 이유

옥분은 자신의 삶임에도 세상의 눈치를 보며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이 부분이 그녀가 개인적인 면에서 '주도적' 주인이 아님을 말해준다. 반면 민재는 옥분에게 딱히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동생과 함께 옥분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한다. 이 부분이 민재가 개인적인 면에서 '주도적' 주인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공무원이라는 틀을 벗어던지자 비로소 주인됨을 되찾은 것이다.

전반부에서 옥분이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오래전 미국에 입양된 자신의 동생에게 연락하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개인적인 면을 '아이 캔 스피크'하려 한다. 그러나 정심이 치매에 걸리고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선다. 옥분은 개인적인 일이라 생각했던 위안부 피해야말로 공적인 일임을 깨닫는다. 이제 옥분은 정심을 대신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개인적인 일이 공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인의 문제가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후반부에서는 인물의 공적, 개인적 문제와 주인됨의 가치가 뒤바뀌게 된다. 옥분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드러낸 이후, 옥분의 주변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대하던 옥분을 공적으로 대하게 된다. 첫 번째로, 민재는 민원 업무와는 상관없이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게 된다. 두 번째 인물도 있다. 옥분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이웃이 옥분을 피하자, 옥분이 다가가서 이유를 묻는다. 그녀는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서러워서 그랬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냐"고 답한다. 그 말인즉슨, 우리 모두의 문제인데 왜 혼자 끌어안으려 했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옥분의 문제는 '사회가 가진 것'이었고, '사회가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재는 '주도적' 주인에서 '적재적소'의 주인으로 바뀌게 된다. '적절한 때'를 알아야 상처가 났을 때 바로 치료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재는 옥분의 문제를 외면하려다 끝내 받아들인다. 반대로, 온갖 문제를 곧바로 민원 넣던 '적재적소' 주인 옥분은 '주도적' 주인으로 바뀌게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소소하게 일하기보단 자신을 위해 크게 일하게 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옥분은 친구 정심을 대신해 워싱턴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약칭 HR121)을 발의한다. 그때 일부 의원들이 옥분에게 그녀가 피해자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옥분은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하지 않았고, 그게 발목을 잡은 것이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플래시백으로 친구 정심이 과거에 피해자 등록하던 때를 보여준다. TV에서 전국적으로 위안부 피해자 등록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때 구청 직원 중 하나가 "부끄러워서라도 자발적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한다. 그러자 분에 찬 정심은 "그 부끄러운 사람이 바로 나"라고 소리친다. 

정심은 사회적 분위기가 냉랭한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려 출사표를 던진다. 그녀는 모두가 쉬쉬하며 모른 체하던 것을 뒤집으려 주인으로서 나선다. 피해를 규명하기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즉, 그녀는 일을 주도적으로 풀어 나가는 '주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어느 곳에 있어야 할지를 아는 '주인'이기도 하다.

옥분도 정심의 뒤를 이어 주인이 된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주도적' 주인으로 바꾸고, 정심으로부터 다시금 '적재적소'의 힘을 물려받는다. 쉽게 말해, 공적인 면에서 '적재적소' 였던 걸 '주도적'으로 바꾸고 사적인 면에서 '주도적' 이었던 걸 '적재적소'로 바꾼다. 본인 스스로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있었기에, 비로소 그녀는 연설대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부분에 있어 상징적인 장면은 연설대에서 머뭇거리는 옥분의 모습이다. 옥분이 머뭇거릴 때, 어느 샌가 미국으로 날아온 민재가 의회에 난입해 "How are you"를 외친다. 그 외침은 옥분을 향한 물음이었고, 이에 옥분은 "I' am fine. Thank you. And you?"로 답한다.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이지만 '적재적소'에 도착한 민재의 모습을 통해 옥분이 말할 용기를 얻는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나' 혹은 '우리'가 아니라 '내가 속한 우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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