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과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이 나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6일 오후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린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감독 대 감독' 스페셜 토크.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과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유지영


"여성 감독이 수적으로 너무 없다 보니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드신 감독님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또 친구가 생긴 느낌이라 기쁘고 영화도 잘 봤다. <소공녀>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 반갑다. 영화가 너무 좋다. 정말 영광이다." (이경미 감독)

영화 <미쓰 홍당무>(2008)와 <비밀은 없다>(2016)의 이경미 감독이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을 만났다. 10년 전 장편 데뷔작을 선보인 여성 감독과 이제 막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을 영화관에 올린 여성 감독이 만났다는 점에서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아래 여성영화제) 스페셜 토크 '감독 대 감독: 나의 영화, 당신의 영화'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행사였다. 폐막을 앞둔 여성영화제는 6일 영화 <소공녀>를 상영한 뒤 이경미 감독과 전고운 감독의 스페셜 토크를 선보였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감독들과 관객들의 대화는 시종일관 웃음이 터지는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관객들은 전고운 감독에게 질문하기 전에 "좋은 영화에 감사한다"거나 "보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 "<소공녀>의 상영관이 적어서 아쉬웠다", "<소공녀>의 미소를 종교로 만들어서 받들고 싶을 정도였다"고 감상을 털어놓았다.

"영화 <소공녀> 제작 계기, 담뱃값이 2000원 오른 일이 결정타"

 영화 <소공녀>에서 미소(이솜 분)는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영화 <소공녀>에서 미소(이솜 분)는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 CGV


배우 이솜이 주연으로 분한 영화 <소공녀>는 지난 3월 말에 개봉해 현재 극장에서는 보지 못하는 작품으로 이번 제20회 여성영화제에서 재상영됐다. 개봉 전에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위스키와 담배,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소공녀> 속 주인공 미소는 이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를 위해 '집'을 포기한다. "난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라는 말과 함께 미소는 과거 밴드를 함께했던 멤버들의 집을 방문한다. 영화는 지금은 각자 사정이나 처지가 달라진 멤버들을 하나씩 방문하면서 미소에게 생긴 일을 담는다(관련 기사: 이솜의 '취존 여행기', '마이너'한 취향에 바치는 헌사).

6일 현장에서 <소공녀>를 처음 봤다는 이경미 감독은 "배우가 꼭 그 캐릭터인 것 같을 때,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미소 역할을 맡은 이솜씨가 어떤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미소처럼 느껴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소공녀>를 연출한 전고운 감독은 영화 제작 계기를 묻는 한 관객의 질문에 담뱃값이 올랐던 일을 언급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고 싶었다. 술, 담배, 남자친구까지 넣고 마침 영화를 만들 때가 박근혜 정권 시절이라 많이 분노가 쌓여 있었지만 (일동 웃음) 되도록 이 분노를 돌려 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담뱃값이 오른 게 결정타가 됐다. 2000원이나 오르는 게 이상했고, 내겐 이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은 상당히 센 캐릭터로 나온다. 담배 피우는 여성을 소비하는 기존의 방식이 답답했던 것 같다. '담배를 피우게 생겼다'는 말도 이상하다." (전고운 감독)

 "담뱃값이 올라서..." 미소(이솜 분)는 담뱃값이 오른 현실에 황당해한다.

"담뱃값이 올라서..." 영화 <소공녀>에서 미소(이솜 분)는 담뱃값이 오른 현실에 황당해한다. ⓒ CGV


이경미 감독은 전고운 감독의 말을 거들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이 지붕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범죄로 걸린다'는 말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 감독은 "여자들끼리 그런 말을 농담처럼 했지만 담배를 꼭 무리 지어 피우거나 남자랑 같이 피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해를 당하는 일이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고 '담배 피우는 여성'에 대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 전고운 감독은 "경범죄까진 아니지만 요즘도 억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에 여성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 잠깐이라도 나오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라며 "담배 피우는 여성 캐릭터의 사진을 모았던 적도 있다"고 고백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이날 현장에서 이경미 감독이 <비밀은 없다>의 제목이 <소공녀>가 될 뻔했다는 비화도 전해 관객들의 관심을 샀다. 이경미 감독은 "<비밀은 없다>는 제목을 짓지 못하고 있을 때 <소공녀>라는 제목을 제안한 적이 있지만 거절당했다"면서 "그래서 영화 <소공녀>가 개봉했을 때 더 궁금했다"고 한다.

한 관객은 "이경미 감독이 각본을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정을 많이 거치는 작업 스타일을 가졌다고 알고 있다"면서 전고운 감독의 시나리오 작업 방식을 묻기도 했다.

전고운 감독은 "내 생각에 <소공녀>의 시나리오는 병렬식이고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인 반면, 이경미 감독님의 시나리오는 설계 자체가 엄청 복잡하다. <비밀은 없다>를 보면서 저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지 싶을 정도였다"며 이경미 감독의 작품에 관해 칭찬했다.

"내가 계란을 갖고 후라이를 한다면 이경미 감독님의 작품은 내가 모르는 어떤 프렌치 요리다. (웃음) <소공녀>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영화라 빨리 쓴 편이지만 영화의 시간과 힘, 노력은 다 다르다. <미쓰 홍당무>가 이경미 감독님의 데뷔작인데, 내 영화와 비교했을 때 컷이 담고 있는 밀도가 다르고 연출도 너무 잘하시더라. 이경미 감독님은 연출력을 뺏어오고 싶은 경쟁자다. (웃음)" (전고운 감독)

이경미 감독은 전고운 감독의 극찬에 "스타일의 차이다. 대사를 쉽게 쓰신다니 너무 부럽다. 내 다음 작품을 써달라"고 '즉석 제안'을 해 현장에 웃음을 안겼다.

 이경미 감독이 연출한 공효진 주연의 영화 <미쓰 홍당무>(2008)

이경미 감독이 연출한 공효진 주연의 영화 <미쓰 홍당무>(2008) ⓒ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소공녀>의 장례식장 장면, 배우들의 즉흥 대사"

이날 현장에서는 특히 배우 이솜이 연기한 '미소'라는 역할에 대해 관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전고운 감독은 "미소를 만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낮아지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미소는 예의 있는 친구인데, 바빠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착한 사람은 돈이 없으면 무시당한다"며 "그런 게 싫었고 미소를 기억시키고 싶었다"는 말을 남겼다.

또 '집'을 포기한 미소의 선택에 대해 전 감독은 "미소가 그렇게 용감할 수 있는 이유는 편견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보통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사는데, 자기에게 시선이 집중돼 있으면 단순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관객들 사이에서 극 중 친구들의 집에 방문한 미소가 '왜 하필 계란을 가져갔는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전고운 감독은 웃으면서 "내가 미소라면 오랜만에 만났으니 뭐라도 가져갈 것 같다. 3천 원 정도면 계란 30개를 살 수 있으니까 가족들끼리 나눠 먹기도 좋고 가장 적당한 게 계란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한편, '노동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하는 미소가 살기 힘든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 감독은 "과도한 노동은 사실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미소는 '이만큼만 일하겠다'라고 선택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인건비가 높다면 4시간만 일해도 살 수 있고 그런 나라도 있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시스템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이 있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지 않고서는 젊은 나이에 자기 집을 갖고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돈이 없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는 걸 이 영화가 알려준다. 그래서 반가웠다." (이경미 감독)

배우 이솜을 제외하고 배우 김희원이나 최덕문, 김재화 등 배역에 적절한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는 평이 잇달았다. '캐스팅 비결'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전고운 감독은 "역할과 비중에 상관없이 배우에 대한 존경심과 호감이 너무 커서 배우들로 '힐링'을 많이 한다. <소공녀>를 찍으면서 만나고 싶었던 배우들을 그냥 신나게 만났다"고 답했다. 전 감독은 자신의 "덕질"이 캐스팅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영화 <소공녀>의 결말 부분, 미소는 집 대신 강변에 텐트를 치고 사는 것을 택한다. 미소는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하는 병에 걸렸지만, 마지막 장면을 미루어 보아 약을 먹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듯하다. 전고운 감독은 결말에 대해 "텐트를 치고 사는 건 내게 상징 같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려면 텐트까지 쳐야 하나?라는 메시지"라고 답했다. 그 옆에서 이경미 감독은 "실제로 텐트 치고 사는 게 불법이라 그렇게 못 산다"고 거들었다.

이어 전 감독은 "백발로 바뀌는 병을 설정한 이유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고 미소의 처지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라고 밝혔다. "어릴 때 한약 먹으면 머리에 새치가 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서 따온 설정이다."

미소를 제외한 밴드 멤버들끼리 재회한 장례식장 장면, 전고운 감독은 배우들에게 시나리오 없이 '본인들이 경험한 미소에 대해 한마디씩 해달라'고 주문했단다. 이 장면에 관해 전 감독은 "배우들이 모두 집중을 해서 미소를 떠올려주셨고 그 말들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6일 오후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과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이 나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6일 오후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린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감독 대 감독' 스페셜 토크.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과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유지영



소공녀 전고운 이경미 비밀은없다 미쓰홍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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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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