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스틸 컷.

<버닝>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버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버닝>은 지난 8일(현지 시각) 개막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로선 유일하게 진출했다. 이창동 감독은 지난 2000년 <박하사탕>이 칸 감독주간에 초청된 이래 <밀양>(2007)으로 여우주연상을, <시>(2010)로 각본상을 받았다.

<버닝>의 국내개봉은 17일로, 칸 현지에선 하루 앞선 16일 오후 6시 30분 상영될 예정이다. 국내 언론배급시사는 14일(월)로 이날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창동 감독 측은 <밀양> 때부터 국내 개봉을 칸 영화제 공식 스크리닝 직후로 잡아왔다.

<버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강렬한 통찰력을 담은 작품으로 알려졌다.

<버닝>은 필름으로 촬영한 전작들과 달리 이창동 감독의 첫 디지털 영화다. 이와 관련해 이 감독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필름과 디지털이 공존할 때도 소위 필름 룩(look)을 좋아했다"면서 "막상 디지털로 작업을 해보니 렌즈와 카메라의 기술이 높아져 인공적인 조명 없이 거의 모든 촬영이 가능하고, 필름보다 맨눈으로 보는 느낌에 가깝더라. 역시 기술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만족을 드러냈다.

이창동 감독은 필름으로 찍을 때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면 인공 조명이 덜 필요해서 현장에서 촬영시간을 단축하고, 회차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촬영 현장에선 조명 세팅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버닝>은 왜 여명과 황혼녘에 절반 이상 촬영된 것일까

특히 디지털 카메라는 지난 10여년간 기술혁신을 거듭해 오면서 필름보다 높은 해상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엔 디지털 카메라로 필름룩을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지만, 필름만이 가지는 '미묘한' 질감을 디지털 카메라가 따라잡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실제로 촬영감독 등 전문가라고 해도 디지털로 찍은 영상과 필름으로 찍은 영상을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이렇듯 디지털이 소위 필름룩을 구현하면서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뿐 아니라 상업영화 쪽에서도 많은 현장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해왔다.

이외에도 디지털은 장편영화 편당 평균 1억 원에 육박하는 필름 구입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필름현상 및 텔레시네(후반작업을 위해 필름을 비디오로 전환해주는 작업) 생략 등 후반작업에 있어서 비용을 절감하고 프로세스를 단축시켜 주는 장점도 있다. 이창동 감독도 2010년에 개봉됐던 <시>까지 필름으로 찍고 이번 작품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이 감독은 또 제작보고회 당시 "영화가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즉흥성을 디지털이 갖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며 "특히 <버닝>엔 저녁노을과 새벽빛이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 나온다"고 밝혔다.

영화인들은 해질녘과 동틀녘에 해당하는 이 시간대를 매직 아워(Magic Hour), 즉 마법의 시간이라고 부르곤 한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 있어서 영화인들이 선호하는 시간대지만 너무 짧다. 이 감독의 언급으로 볼 때 이 시간대의 빠르게 변하는 부드러운 빛을 포착하는 데 디지털 카메라가 유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버닝> 스틸 컷.

<버닝>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그렇다면 <버닝>은 왜 여명과 황혼녘에 절반 이상 촬영된 것일까. 현재 영화에 대한 줄거리는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라고만 나온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돼 있어 현재로선 어떤 이야기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영화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1983)를 살펴보면 실마리가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제공한 대강의 줄거리에 따르면, 화자에겐 내연녀가 있는데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그 남자는 화자에게 기묘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자기는 가끔 남의 헛간에 방화를 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조만간 내 집 근처에 있는 한 헛간을 태울 거라고 말한다. 화자는 지도에 헛간이 있는 곳들을 표시하고, 그 코스를 정기적으로 달린다.

이창동 감독은 지난 4일 열린 칸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원작과는 다른 나름의 해석을 더했음을 암시했으나 방화라는 아이디어, 영화의 설정 자체는 원작에서 가져왔음을 밝혔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벤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이 방화를 하면서 돌아다니고 이를 쫓는 종수가 활동하는 때가 해당 시간대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으론 등장인물들의 청춘이 한낮의 태양처럼 찬란하지 못하고 해질녘이나 새벽녘처럼 빛이 부족하고 쓸쓸하다는 '은유'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창동 감독은 "스티븐 연은 한국말이 힘들다고 하지만 영화 속에선 완벽했다"며 "속을 잘 알 수 없는 인물을 잘 살려냈다"고 칭찬했다. 

칸 영화제 자문위원 피에르 르시앙의 극찬

이창동 감독은 앞서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은 <밀양>에서도 소설과는 다른 접근법을 보여줬다. 소설이 아이를 유괴로 잃은 엄마의 심정을 화자인 남편이 서술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면 영화는 좀 더 깊숙이 아이를 잃은 엄마의 감정에 개입해 들어갔다. 함께 아이를 잃은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의 슬픔과 고통을 객관적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는 것보단 제3자인 종찬(송강호)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지난 5일 별세한 칸 영화제 자문위원 피에르 르시앙은 <버닝>에 대해 "영화가 원작자가 꾸며낸 것들로부터 멀어져서 영화 자체로서의 맥박으로 그만의 고유한 생명력을 얻는 순간, 그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라고 극찬했다.

 영화 <버닝> 스틸 컷.

영화 <버닝>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이창동 감독도 "원작이 무엇이든 저는 저대로의 고민을 안고 독자적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원작은 따로 있지만 원작이 제공한 캐릭터나 전개, 통찰을 벗어나 영화작가의 독자적 해석과 고민, 영화적 표현을 담았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창독 감독은 그간의 작품에서 모두 '범죄'를 모티브로 삼아왔다.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의 어떤 큰 압력에 의해 쓰러진다. 그들은 국가의 감시와 처벌, 폭력이 낳은 희생자(박하사탕)일 수도 있고, 편견에서 비롯된 잔인한 범죄의 희생양(밀양)일 수도 있으며, 오인된 범죄(오아시스)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작품마다 드러나는 '공권력'의 억압과 '범죄'라는 모티브는 이창동이 즐겨 사용하는 극적 장치이며, 그가 속한 세대가 공유한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방화에 쾌감을 느끼는 미스터리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젊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며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해 느낄 법한 무력감과 분노 같은 정서를 섬세하게 담았다고 알려졌다.

이 감독은 지난 4일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버닝>은 (원작과는 달리) 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면서 "특히 오늘 이 시점 한국 젊은이들이 처하고 있는 현실의 요소, 낯익은 일상 속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지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서스펜스, 일상의 미스터리, 일상의 스릴러 같은 느낌으로 전개된다"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제목 <버닝>에 대해선 "뭔가에 열중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열정을 불태우기가 어렵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그 자체로 '불타는'이라는 뜻과 '방화'라는 암시 외에 중의적인 의미를 더해 더 풍부한 의미를 담았다. 영화의 개봉은 오는 17일로, 전날 칸에서 수상한다면 국내 흥행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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