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슬러> 스틸컷

영화 <레슬러>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럭키>를 제외하고 최근의 유해진은 특유의 웃음기를 덜고 관객과 만나왔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지만 스릴러와 범죄드라마에서 활약하면서 보폭을 넓혀왔다. 그가 이번엔 가족 코미디를 들고 왔다. 그것도 성인 아들을 둔 아버지로 말이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유해진은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은데 우주에 비하면 또 느리다"며 웃어 보였다.

영화 <레슬러>에서 유해진이 맡은 귀보는 아내를 일찌감치 잃고 아들(김민재)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인물. 전직 국가대표 선수로서 못다 이룬 꿈을 아들에게 걸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는 열혈 아빠다. 하지만 어디 가족이 내 마음 같을까.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자라온 동갑내기 친구 가영(이성경)이 귀보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엇나가기 시작하는 아들이다. 이 부자관계 사이 깊게 깔린 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진실성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과거 인터뷰에서 유해진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진실성을 꼽은 바 있다. 영화의 장르와 역할의 비중을 떠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진실성이 있는지가 그에겐 중요했다. <레슬러>를 두고 그는 "진실성과 함께 재미도 봤다. 재미라는 게 웃긴 것만을 뜻하는 아니"라며 "적은 예산으로 부자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게 좋았다"고 운을 뗐다.

"민재만한 아들이 실제로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라고 누가 그러더라. 근데 촬영장에선 형 동생처럼 지냈는데... 만약에 현장에서 날 아빠라고 불렀다면 한 소리 했을 것이다(웃음). 실제로 아버지가 되어 본 적이 없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야기에 충실하면 되는 거지. 전부 경험해야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만 대사들을 보면서 자식 키우는 게 역시 쉽지는 않겠다는 걸 느꼈다. 귀보가 엄마(나문희)에게 '자식 키우기 참 힘들어' 이러니까 엄마는 '넌 20년 키웠지만 난 40년 키웠다'고 답하지 않나(웃음)."

함께 호흡을 맞춘 김민재와 나이 차가 꽤 나지만 유해진은 현장에서 이른 바 꼰대스럽지 않기로 유명했다. 평소에도 누굴 가르지는 게 아니라 의견을 나누자는 주의인 그는 "민재에게 너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떨 것 같니라고 많이 물었다"며 "연기라는 게 정답이 없잖나. 누가 누굴 가르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영화 <레슬러> 스틸컷

영화 <레슬러>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만 레슬링 할 때 민재가 아무래도 첫 영화고 해서 의욕이 넘쳐 다칠까 봐 그런 부분에선 조심하라고 하긴 했다. 레슬링 참 힘들더라(웃음). 잠깐만 붙잡고 있어도 땀이 막 난다. 민재와 같이 훈련을 받고 그랬는데 나야 은퇴 선수니까 하는 척 했지만 민재가 진짜 고생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젊은 친구인데 참 든든하다고 느꼈다. 좋은 배우인 것 같다. 처음엔 날 어려워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잘 안기고 배려가 있더라. 그 친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와 하면서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극중 가영이 귀보를 어렸을 때부터 짝사랑 해온 설정을 두고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 사이 로맨스라는 평도 있다. 표현 방식에 따라 관객 입장에선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라는 말에 그는 "어릴 적 선생님을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그런 때가 있잖나. 그런 맥락에서 가영의 외사랑인 것 같이 보였다"고 답했다.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영이나 성웅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가 외사랑을 말하고 있다. 귀보 엄마의 아들 사랑도 그렇고. 촬영하면서 귀보 역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연기할 땐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부모도 성숙해 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가족 이야기에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왜 어렸을 때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까. 가족이라는 게 말 그대로 가족이지. 있어서 고마운 존재.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에게 참 잘해야지 마음만 먹고 살았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면서 마음 구석엔 항상 그곳에 계시지 이러면서 위안 삼고 있었다. 참 나쁜 놈이지... 가족은 있어줘서 고마운 존재 같다."

어떤 용기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중 나오는 몇 가지 대사 중에 유해진이 직접 애드리브로 던진 게 있다. 귀보가 운영하는 체육관 현판에 붙은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없으면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도 본래 대사엔 없었지만 유해진이 현장에서 읊었다.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남긴 말로 <레슬러>의 주제의식과도 통하고 있었다. 이 질문을 바꿔 유해진의 인생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한 게 있는지 물었다.

"음... 연기지. 과거에 제가 연기할 땐 지금보다 외모로 더 평가받던 시기였다. 용기가 필요했던 부분이었다. 그땐 왜 계속 연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그냥 연기하는 게 좋았다. 지금도 고향에서 같이 연극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간다.

제게 여러 분들이 배우로서 이후 목표가 뭐냐고들 물으시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왔다. 배우를 계속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감사할 따름이다. 이 자리나 위치를 지킨다기 보다는 그냥 전 배우로서 극장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하려 한다. 제 지금의 위치야 뭐 처음부터 제가 이랬던 것도 아니고(웃음)."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영화 <레슬러>에 출연한 유해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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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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