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챔피언' KIA 타이거즈의 올시즌 행보가 예상보다 저조하다. 28경기를 치른 5월 1일 현재 13승 15패로 5할에도 못미치는 승률로 고작 6위에 머물고 있다.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제압했던 선두 두산과의 승차는 벌써 7게임이나 벌어졌다.

아직 위기라고 할 정도의 상황까지는 아니다. 4위 kt부터 9위 롯데까지의 승차가 아직 2게임밖에 불과할 만큼 중위권의 혼전 양상이 심하여 KIA에게도 반등의 기회는 충분하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최근 부진한 KIA의 순위가 더 내려갈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KIA는 지난주에는 5경기에서 고작 1승 4패에 그쳤다. 범위를 최근 15경기로 넓혀도 5승 10패, 승률 .333에 불과하다. 팀 5할승률 붕괴가 본격적인 하락세의 전주곡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2경기 연속 완투 경기를 펼친 KIA 에이스 양현종

2경기 연속 완투 경기를 펼친 KIA 에이스 양현종 ⓒ KIA 타이거즈


2018시즌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던 KIA의 부진은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KIA는 양현종, 헥터 노에시, 최형우 등 지난 시즌 우승의 핵심자원들이 모두 건재하며 이렇다할 전력누수가 없었다. 경쟁팀들에 비하여 선수층이 얇고 주전과 백업의 격차가 크다는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핵심 선수들의 기량이 원숙기에 접어들었고 지난해 우승의 경험이 더해진만큼 특별한 전력보강이 없어도 1~2년간은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할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았다.

KIA의 최근 부진을 일종의 '우승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알고보면 한국프로야구 사상 전년도 우승팀이 이듬해 부진에 빠지는 경우는 드문 일도 아니다. 1982년 원년 우승팀 OB가 이듬해 승률 5위에 그쳤고, KIA의 전신인 해태가 1983년 우승 이듬해에 5위에 머물렀으며. 심지어 1995년 우승팀 OB는 다음해 꼴찌로 추락했고. 2015년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은 이듬해 9위까지 내려앉으며 급추락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2009년과 2017년 우승 사이의 공통점

KIA에게도 익숙한 데자뷔가 떠오른다. KIA는 조범현 감독이 이끌던 2009년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대망의 V10을 이루어냈으나 이듬해인 2010년 5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진출조자 실패하는 충격적인 추락을 보였다. 2010년에 81승, 승률 ,609를 넘겼던 KIA는 불과 1년만에 59승, 승률 .444로 -22승을 기록하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2009년과 2017년의 우승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변'에 좀 더 가까운 우승이었다는 점이다. 우승 직전해인 2008년 KIA의 성적은 6위(PS탈락)였고, 2016년에는 5위(와일드카드 진출)로 기껏해야 중위권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 리그 최강전력으로 꼽히던 팀은 각각 SK(2007-08, 2010년 우승)와 두산(2015-16년 우승)이었고 KIA는 대항마나 다크호스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유력한 우승후보까지는 아니었다.

2009년의 경우, 시즌 초 트레이드로 영입한 김상현과 KBO리그 적응을 마친 최희섭이 'CK포'를 구성하며 대폭발했고 로페즈-구톰슨-윤석민-양현종으로 이어지는 막강 선발진과 곽정철, 손영민, 유동훈의 필승 계투조가 조화를 이루며 당시 최강으로 꼽히던 SK의 추격을 따돌리고 한국시리즈 7차전 명승부 끝에 12년만의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7년에는 FA시장에서 100억의 사나이 최형우를 영입하며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고, 양현종과 헥터, 임기영까지 가세한 막강한 선발진의 힘을 앞세워 3연패를 노리던 두산을 따돌리고 다시 8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그런데 '우승 시즌' 당시 KIA에는 커리어 하이급 시즌을 기록한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 2009년 당시 우승의 핵심주역이었던 김상현, 최희섭, 유동훈, 로페즈 등은 이후로 다시 그만큼의 활약을 보여준 적이 없다. 양현종이나 안치홍처럼 이후로도 착실하게 성장해준 선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년간 부상이나 기복없이 꾸준히 활약해준 주전급 선수는 많지 않았다. 냉정히 말하면 2009년의 우승 과정에는 성적에 '거품이 낀' 선수들이 많았고 이듬해부터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8년전 악몽, 또 다시 되풀이하게 될까

2017년 우승도 마찬가지다. 당시 KIA는 상식을 벗어날만큼 엄청난 타선폭발이 이뤄졌다. 팀타율이 유일하게 3할대(.302)를 넘겼고 타점-득점-출루율-장타율 등 홈런(3위)을 제외한 대부분의 타격 주요 기록을 휩쓸었다. 8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명기-김주찬-버나디나-최형우-나지완-안치홍-이범호-김민식-김선빈으로 이뤄진 주전급 타자중 대부분이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KBO리그를 강타한 타고투저 현상과 최형우의 가세라는 요소를 감안해도 정상 수치를 벗어난 기현상에 가까웠다.

2018시즌도 KIA의 팀타율은 .296(2위)로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타선의 전반적인 파괴력은 지난 시즌에 비하여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최형우를 제외하면 2017시즌만큼의 페이스를 보여주는 선수가 없다. 이범호와 안치홍이 부상으로 한동안 이탈하면서 짜임새도 느슨해졌다. 지난주 5경기에서 KIA의 팀타율은 0.274로 6위, 팀 OPS는 0.664로 8위에 그쳤다. 타선이 갑자기 약해진게 아니라 우승 시즌에 몰아쳤던 거품이 빠지고있는 과정이라고 할 만하다.

 KIA 김기태 감독

KIA 김기태 감독 ⓒ KIA 타이거즈


2009년이나 2017년이나 KIA는 우승팀치고는 선수층이 그리 두터운 편은 아니었다. 주축 선수들이 모두 부상 없이 건재하다면 어떤 팀과 맞붙어도 해볼만 하지만 장기레이스에서 각 팀이 모두 100% 전력으로 임하기는 어렵다. 전 시즌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던 선수들이 다음 시즌에도 똑같은 수준의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시즌 구상에 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KIA가 몰락하는 과정도 믿었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과 슬럼프에 빠지면서 비롯됐다.

2018년의 KIA도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불안요소는 여전하다. 이미 많은 몸값을 들인 기존 주전 선수들을 지키는데도 벅찼던 KIA로서는 더 이상 외부에서의 전력보강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박정수, 황윤호, 유승철, 최원준 등 유망주들의 성장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두산이나 삼성이 전성기에 장기집권을 이뤄내며 왕조로 평가받은 것은 꾸준히 좋은 선수를 발굴해내며 두터운 선수층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승 감독임에도 사령탑의 리더십에 대한 팬들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도 비슷한 대목이다. 조범현 감독은 2009년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라는 공로에 불구하고 이후로도 코칭스태프 개편, 노장 이종범의 기용 문제, 투수교체 타이밍 등을 놓고 사사건건 극성팬들의 시달림을 받았다. 지금의 김기태 감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비난 여론을 잠시 잠재우는 듯했으나 올시즌 다시 또 팀이 부진한 조짐을 보이면서 연일 팬들의 비난을 듣고 있다.

어쩌면 우승이란 '어제 내린 눈'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작 타이틀을 지켜야한다는 부담감과 우승팀답게 기대에 부응해야한다 눈높이는 더욱 높아진다. 우승 후유증은 모든 챔피언들이 감당해야할 통과의례다. 2018년의 KIA는 또다시 8년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게 될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