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달그락.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음식 하는 소리가 매우 정겨웠다. 하늘 한 번 제대로 보기 힘든 바쁜 도시의 일상 속에서 휴대전화 액정 빛이나 TV에서 홀로 울리는 사람 소리에 외로움을 달래는 도시인들에게는 더욱.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영화였다. 1시간 43분의 러닝 타임 동안 걱정 없이 쉬고 싶어지는. 푸른 농촌의 풍경 속에 편안해지는. 말 그대로 위로가 되는 그런 영화였다. 어찌 보면 흥행하는 것이 당연했다. 쫓기고 쫓아야만 하는 도시의 삶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이란 힐링 그 자체이니까.

그런데 나는 단순히 위로만 받고 이 영화를 끝낼 수 없었다. 집이 있고 함께할 친구들이 있는 <리틀 포레스트>의 이상적인 풍경과 다른 농촌의 모습을 알고 있으니까. 혜원(김태리 분)이 보여주는 것은 버리고 농촌 속으로 도망치는 삶이 아님을 느꼈으니까.

떠났으나 떠나지 못한 삶

 농촌으로 떠나있는 혜원이지만 문득 떠나고 싶었던 것들이 찾아오곤 한다.

농촌으로 떠나있는 혜원이지만 문득 떠나고 싶었던 것들이 찾아오곤 한다. ⓒ 수박


혜원은 도시 속 삶에 지쳐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허기졌다. 차가운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인스턴트 도시락으로 굶주린 배를 달래는 삶이었다. 문득 인스턴트 도시락 속 밥이 맛이 없어졌다. 먹을 수 없었다. 진짜 밥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고향에 내려온 그녀는 부지런하게 밥을 짓는다. 언 땅에서 먹을만한 배추를 골라 따고 배춧국을 끓여 먹는다. 허겁지겁. 그녀의 모습에 얼마나 허기졌는지 느껴진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진다. 눈을 치우기 전 수제비 반죽을 해두고 언 몸을 따뜻한 수제비로 녹이고 직접 빚은 막걸리로 은숙(진기주 분)과 재하(류준열 분)과 못 나눴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도망쳐버린 그녀의 삶, 평온하게 보인다. 그러나 문득 떠나고 싶었던 것들이 다시 찾아오곤 한다.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재하의 말에서도, 반송할 수도 없게 주소 없이 찾아온 편지를 통해서도. 요리할 때마다 들리는 엄마(문소리 분)의 목소리에서도.

단지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우연에 맡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농촌의 삶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노력 없이 되는 것이 없음을 알려준다. 먹다가 아무렇게나 던진 토마토가 새 싹을 틔우고 과실을 맺을 수 있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노지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토마토가 완숙했을 때 따야지만 가능한 일. 정성스레 키운 농작물이 자연에 따라 모두 엉망이 되 버리기도 하는 아무리 힘을 다해도 결국에는 자연에 도움을 기대야만 하는 농촌이지만 그 기저에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것이 없이는 자연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보여주려던 것. 혜원이 보여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가을에 걸어둔 감이 마르고 말라 한 겨울 맛있는 곶감이 되는 것 같은 일. 주무르고 또 주무르면서 말랑말랑하고 단 맛있는 곶감으로 만드는 일. 따스한 햇볕과 바람, 흙냄새가 풍기는 고향은 도망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억을 담은 곳이었다. 악한 상황에도 버틸 수 있는 뿌리를 내리는 곳이었다.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평온하지만은 않았던 농촌들

 작은 숲은 평온히 조용하게 도망쳐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이 곳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위한 곳이니까.

작은 숲은 평온히 조용하게 도망쳐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이 곳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위한 곳이니까. ⓒ 수박


그래서 헤원이 만들어나가는 작은 숲을, 남들에게 결정되어야 하는 인생이 싫어 스스로 주체성을 가지기 위해 내려온 재하,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은숙이 살고 있는 의성의 농촌을 평온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평온히 조용하게 도망쳐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이 곳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위한 곳이니까.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나는 성주의 한 농촌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교 농민학생연대활동으로 떠난 그곳에서 나는 과수원 일을 도왔다. 사과 속에 단물이 잘 차오를 수 있도록 빨갛게 예쁜 물이 들 수 있도록 쓸모없는 잎들을 떼어내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끝없어 보이는 나무들 틈에서 사과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잎을 떼어내는 일은 1분만 메시지가 늦어도 답답한, 궁금한 것은 10초면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는 빠른 도시의 삶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너무 느렸다. 지루할 만큼.

그래도 즐겁기는 했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리듬 속에 하는 일이. 직접 착즙한 사과즙을 받아 마시며 함께 평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들은. 취업, 학점 등 복잡한 고민들은 접어두고 농촌의 삶도 괜찮구나 생각할 만큼.

그런데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낮의 일상이 끝이 나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바로 사드배치 문제였다. 실제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지 검증이 되지도 않았다는데, 전자파에 소음까지 걱정되는 것을 들여온다고 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한다던 대통령이었는데 결국 배치 계획은 바뀌지 않았다. 주민들은 한때 기습 배치가 진행되면서 삶의 현장이 위협받았다. 그들에겐 단물이 가득 찬 사과가 평화였고 노란 참외가 평화였는데 전쟁 무기가 성주를 차지하게 생겼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매일 밤을 그렇게 나가고 외쳤다. "사드배치 반대"라고.

여기뿐일까. 밀양과 청도에서는 송전탑 설치 문제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땅을 갈구고 작물을 심고 거두면서 평생을 살아왔을 땅들. 느리더라도 단단히 쌓아왔을 농촌의 삶들. 평온할 수만은 없었던 곳들이 많았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가 단순히 위로만 되지는 않았다. 이 땅에서 영화 속 농촌처럼 평온하기만 한 곳은 거의 없으니까. 집과 땅, 함께할 친구가 있는 그런 완벽한 평화의 땅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까.

덧붙이는 글 영화와 드라마에서 현실을 읽어냅니다.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유를 해봅니다. 독특하고 독하게 청년의 감성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독(讀)한리뷰입니다.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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