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FC 서울의 '슈퍼 매치'는 K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꼽힌다. 오랜 앙숙이자 국내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꼽히는 두 팀의 맞대결은 K리그 최고의 흥행보증수표였다.

하지만 지난 8일 열린 양 팀의 통산 84번째 맞대결은 슈퍼매치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큰 아쉬움을 남겼다. 경기 내용, 결과, 흥행 그 어느 것도 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간 양 팀에 누적된 문제점이 한꺼번에 노출돼 탄식을 자아냈다.

이날 수원 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공식 관중은 1만3122명으로 집계됐다. 종전 최소 관중 기록이었던 2005년 6월 12일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1만9385명을 동원했던 것보다도 6천여 명이나 줄어든 불명예 기록을 13년 만에 경신한 것. 심지어 역대 슈퍼매치 한 경기 최다관중 기록이었던 2007년 4월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5만5천397명 기록에 비하면 1/4로 토막난 수치다.

슈퍼매치, 왜 관중들의 외면 받을까

다잡은 승리 놓친 FC서울 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프로축구 K리그1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1-1로 경기를 마친 서울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8.4.1

▲ 다잡은 승리 놓친 FC서울 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프로축구 K리그1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1-1로 경기를 마친 서울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8.4.1 ⓒ 연합뉴스


슈퍼매치의 최전성기로 꼽히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평균 3~4만 명 이상의 구름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빅매치가 아닌 이상 이 정도 관중동원은 쉽지않다. 비록 2015년 이후로 슈퍼매치가 다소 하락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K리그 최고의 인기 라이벌전으로서의 명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슈퍼매치에서 관중 숫자가 3만 명 이하에 그치면 실패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2017년 3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3만4376명)에서 열린 경기를 끝으로 슈퍼매치는 더 이상 3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올해 첫 슈퍼매치에서는 '슈퍼'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만큼 관중들의 외면을 받았다.

슈퍼매치의 흥행 침체는 최근 양 팀의 저조한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과 수원은 한때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이자 스타의 산실이었지만 최근에는 두 팀 모두 정상권에서 멀어지며 예전의 위용을 잃은 지 오래다. 수원은 올 시즌 리그 5위에 그치고 있으며 슈퍼매치 직전 열린 '2018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FC)' 경기에서 시드니FC(호주)에게 1-4로 참패했다. 심지어 서울은 올 시즌 개막 이후 무승에 그치며 12개 팀 중 11위에 머물고 있다. 황선홍 감독의 경질 여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경기 외적인 환경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갑작스레 찾아온 꽃샘추위와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의 역습까지 겹친 것도 일반 축구 팬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게 된 이유로 꼽힌다.

설상가상 두 팀의 위태로운 행보를 반영하듯 이날 경기력 역시 슈퍼매치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졸전이었다. 양 팀 모두 필승에 대한 의지보다는 지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큰 듯 라인을 내리고 수비적인 경기를 펼쳤다.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낼 만한 창의적이고 화려한 플레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세밀한 패스나 연계플레이보다는 역습이나 크로스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패턴이 경기 내내 이어졌다.

거친 파울과 비매너 플레이로 경기 흐름이 뚝뚝 끊기는 장면도 잦았다. 후반 24분 프리킥 찬스에서 FC 서울의 정현철이 상대 골망을 흔들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머리 대신 손을 쓴 사실이 발각돼 무효 처리됐다. 2분 뒤엔 수원 최성근이 볼과 상관 없는 상황에서 정현철을 가격했다가 이번에도 비디오 판독을 거쳐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당했다. 비매너와 그에 따른 보복성 플레이가 줄줄이 이어지며 경기가 과열 양상을 띄기도 했다.

경기 끝난 직후 쏟아진 야유

기뻐하는 수원 삼성 선수들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기록한 수원 삼성 데얀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4.3

▲ 기뻐하는 수원 삼성 선수들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기록한 수원 삼성 데얀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4.3 ⓒ 연합뉴스


이날 슈퍼매치의 가장 큰 이슈였던 수원의 외국인 공격수 데얀은 골을 넣는 데 실패했다. 지난해까지 서울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데얀은 구단의 리빌딩 계획으로 팀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최대 라이벌 팀 수원으로 이적한 것을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이 때문에 데얀이 공을 잡을 때마다 서울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나오는 등 잠시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큰 불상사는 없었다. 데얀은 이날 서울의 집중 수비에 막혀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데얀에게 쏟아진 야유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끝내 지루한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이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관중석에서 거센 야유가 쏟아졌다. 일부 서울 팬들은 이날도 무승 탈출에 실패한 황선홍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황새 아웃'을 목놓아 외치기도 했다.

수원 일부 팬들도 가세했다. 졸전을 펼친 서정원 감독과 수원 선수단에게 야유를 보내는 일부 팬들도 있었다. 슈퍼매치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답답하고 지루한 경기력에 대한 불만은, 특정 팀의 팬을 떠나 축구를 즐기러 온 관중들의 공통적인 반응이기도 했다.

이번 슈퍼매치의 흥행 부진은 수원과 서울, 양 구단은 물론이고 K리그 전체적으로도 경각심을 느껴야 할 사건이다. 양 팀 감독이나 선수단도 예상 이상으로 저조한 관중 숫자에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리그 환경도 달라지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매너리즘에만 기대고 있다면 슈퍼매치에도 미래는 없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