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열린 한국영화 100주년 사업 추진위원회 모임

지난 3월 31일 열린 한국영화 100주년 사업 추진위원회 모임 ⓒ 한국영화 100주년사업추진위


진보와 보수, 좌우, 신구세대 등으로 나뉘었던 영화계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앞두고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평창올림픽이 남북관계 해빙에 기여했듯 '한국영화 100주년'이 영화계의 해묵은 갈등을 해소시키는 데 일정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를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데 이어, 국립영화박물관 건립 추진도 시작돼 영화계 전체가 100주년 사업에 힘을 합치겠다는 자세다.

지난 3월 31일 '한국영화 100주년 범영화인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날 서울 충무로영상미디어센터에 모인 추진위원회는 위원장으로 유인택 동양예술극장 대표를 추대했다. 영화계는 오는 6월말까지 '100년 기념사업회'(가칭)를 출범시켜 100주년을 준비하기로 했다.

유인택 대표는 "위아래와 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선배라고 한시적으로 위원장 추대를 받은 것"이라면서 "영화계 내 세대와 이념 등 갈등과 차이를 뛰어넘는 범영화인의 총의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기회에 영화계가 힘을 합쳐 자랑스런 한국영화 100년을 총정리하길 희망한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중간 보고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영화 100주년 사업 위해 손잡은 진보와 보수

 지난 1월 한국영화 100주년 사업 추진을 위해 모인 영화인들.

지난 1월 한국영화 100주년 사업 추진을 위해 모인 영화인들. ⓒ 한국영화 100주년사업추진위


한국영화는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김도산 감독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와 기록영화 <경성전시(京城全市)의 경(景)>이 개봉한 것을 출발로 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1963년부터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고 2019년에는 100년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해부터 영화계에서 '한국영화 100주년을 준비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2017년 4월에는 국회에서 관련 세미나를 열어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진보-보수를 대표하는 영화계 인사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특성에 맞게 현재 한국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영화단체연대회의 소속 단체들과 1970~80년대 한국영화의 중심에 있었던 영화인총연합회 소속 단체들이 함께 모여 논의하는 게 특징이다.

영화단체연대회의와 영화인총연합회는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성격을 띤 영화단체연합체다. 1955년 창설된 한국영화인협회가 한국영화의 대표 단체로서의 자리를 유지해 왔으나 1990년대 후반 정치적 방향성을 달리하는 젊은 영화인들이 충무로포럼을 만들면서 거리감이 커졌다.

이후 2000년 영화인회의가 만들어지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영화인회의는 영화단체연대회의로 이어졌고, 한국영화인협회는 2009년 영화인총연합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치적 성향이 진보와 보수로 갈린 데다 젊은 세대와 원로 세대로 나눠지면서, 좌우대립이나 신구갈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양측의 오랜 갈등은 영화인총연합회 산하 일부 단체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조금씩 풀리는 모양새다. 특히 원로보수영화인들의 중심 역할을 했던 한국영화감독협회가 2016년 11월 양윤호 감독을 이사장으로 선출한 게 변화의 계기가 됐다는 시각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이기도 한 양윤호 감독은 진보-보수 영화단체들 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유인택 추진위원장은 "양윤호 감독이 한국영화 100주년 사업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면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양 감독은 최근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TV광고를 제작해 주목받기도 했다.  

감독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상우 감독 역시 양 감독과 함께 원로보수영화인들 내부의 고질적인 부정과 비리 문제에 대해 적극 비판하면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감독은 지난해 대종상 준비 과정에서도 감독협회를 대표해 "원로영화인들이 뒤로 물러나고 지금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인들에게  심사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대종상은 오랜만에 큰 잡음 없이 무난한 시상식을 치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영화박물관 추진도 본격화

 지난 4월 2일(월) 인사동에 모인 국립영화박물관의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지난 4월 2일(월) 인사동에 모인 국립영화박물관의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 국립영화박물관 추진위원회


한국영화 100주년 사업은 국립영화박물관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2일 이춘연 대표와 정지영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은 인사동에서 모임을 열고 국립영화박물관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100년 역사'의 한국영화가 괄목할 만한 성장사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표할 만한 영화박물관기 부재한 상태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해서다.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부산 임권택영화박물관 등이 있지만, 운영인력이나 규모 면에서 100년의 영화사를 기록·전시하는 영화박물관으로서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 있는 명예의 전당에도 주요 감독과 배우들의 시나리오와 기자재 등이 전시돼 있으나 종합촬영소가 부산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후 갈 곳을 못 찾고 있다.

프랑스는 이미 1936년에 건립된 대표적인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보유하고 있고, 또 하나의 대표적인 박물관인 리옹의 뤼미에르 연구소 또한 1982년에 개관했다. 중국은 2013년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상하이영화박물관을 개관했다.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도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박물관을 하나씩 갖고 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볼 때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국립영화박물관을 만들자'는 영화계의 의지는 그만큼 설득력이 있다.

지난 2일 추진위원회 모임에서 이춘연 공동대표는 "영화박물관은 한국영화 전체가 참여해야 할 일"이라며 진보-보수, 신구세대가 모두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진위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인 김홍준 감독과 경희대 박신의 교수를 중심으로 국립영화박물관의 필요성 및 성격과 방향, 입지 및 공간계획 등 세부적인 내용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지원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영상자료원 류재림 원장도 기존 영화박물관이 작다며 새로 건립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영화계 인사들은 이번에 추진하는 '국립영화박물관'과 자료원 박물관은 방향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추진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영화인은 "한국영상자료원의 박물관은 전시실 개념이지 박물관법에 규정된 박물관은 아니다"면서 "영화인들은 국립영화박물관 건립을 확정한 다음에 부지 문제 등을 정부와 협의해 보겠다는 것이고, 세세한 사안까지 검토해 제안서를 올리고 추진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인도 "영화인도 아닌 영상자료원장이 생색내듯이 박물관을 추진하려는 것에, 영화인들의 시선이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며 "영상자료원에서 추진하는 박물관과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 중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천시가 국립영화박물관 추진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지난 2일 추진위원회 모임에도 참석해 관심을 나타냈다. 부천시는 상동에 있는 부천영상문화단지 안 부지 등을 제공할 수 있다며 박물관 유치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영화 100주년 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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