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곤지암> 스틸 컷.

영화 <곤지암> 포스터. ⓒ (주)쇼박스


저는 공포영화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에 어떤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면, 그 힘든 시각적인 자극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영화를 보는 편입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불신, 그 위에 방관하는 신(악마 또는 운명)이라는 주제를 드러낸 영화 <곡성>은 관람한 당일 악몽을 꿀 것이 뻔했음에도(실제로 그랬습니다) 기꺼이 영화관에서 보았죠.

또 새로운 시도가 있는 공포 영화라면 역시 영화관에서 제 돈으로 티켓 값을 지불하고 봅니다.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만 열차에서의 호러를 보여준 10년 전 영화 <레드아이>가 한 예죠.

영화 <곤지암>을 본 것은 위에 설명한 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정신병동에 사람들을 난폭하게 감금하던 그 시절에 대한 어떤 주제와 서사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고요. 또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비교적 흔한 연출 기법입니다만 파운드 푸티지, 페이크 다큐멘터리형 영화가 한국에서 시도된 것에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죠.

일단 영화 자체는 나쁘지는 않습니다. 재밌었습니다. 다만 공포 영화를 잘 못 보는 겁 많은 사람이라는 걸 여자친구한테 들킬까봐 두 손으로 얼굴은 못 가리고 조용히 흐릿하게 실눈을 뜬 채 가까스로 공포 영화를 감상하는 제가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감상한 것으로 보아서는 그렇게까지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각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곤지암 정신병원에 입장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머리 속으로 '이거 대박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마치 <곡성>이나 강남스타일이 그랬던 것처럼 한 해를 관통하는 키워드, 즉 2018년을 대표하는 어떤 아이템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까지 생기더군요. 다만 영화 감상을 끝낸 지금은, 흥행에 성공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어떤 명작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유는 크게 아래 두 가지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심심한 공포영화

 영화 <곤지암> 스틸 컷.

영화 <곤지암> 스틸 컷. ⓒ (주)쇼박스


이 영화에서 CNN이 선정한 전 세계의 기괴한 장소를 모두 가본 재미교포 샬롯이 4번째(아마도 죽음을 나타내는 숫자 4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로 방문한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겪게 되는 일은 상당히 무섭습니다.

샬롯 역을 맡은 배우 문예원씨는 연기가 매우 훌륭합니다. 특유의 허세를 부리다가 나중에 눈물 때문에 화장이 다 번지고 겁에 질려 실눈을 뜨며 옆을 보는 장면은 정말 연기같지가 않습니다. 동료가 빙의되면서 샬롯이 겪게 되는 장면들은 실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합니다. 무섭습니다. 이 장면에 한해서는, 여타 굵직한 공포 영화들에 뒤지지 않아요. 다만 솔직히 말하면 이 장면 이후로는 약간은 심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마치 세트 메뉴를 시킨 음식점에서, 다소 심심한 요리가 나오다가 본격적으로 훌륭한 메인 디시가 나왔는데, 그 이후에 나온 음식들이 다시 심심하게 돌아간 느낌입니다.

영화가 곤지암 정신병원을 '다양하게' 묘사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어지간한 공포영화보다 훨씬 기괴했던 국산 게임 명작 <화이트데이>를 보면, 학교라는 공간의 각 장소가 참으로 다채로운 방식으로 섬뜩하게 표현됩니다. 일제시대 건물을 연상시키는 구 교사(校舍)와 신식 건물인 신 교사의 분위기 차이, 각 과목별로 제공된 음악실, 실험실, 경비실, 화장실 등 각각의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심장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곤지암 정신병원은, 실험실, 샤워실, 그리고 의문의 402호 등의 공간들이 사실 그렇게까지 명확한 구별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간 표현을 좀 더 다양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CNN 선정 세계 7대 기괴한 건물인 곤지암은 그 자체로 좋은 장소적 소재이긴 합니다. 어둡고 더러운 폐쇄적인 공간에 불을 켜고 카메라를 장착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매우 공포스럽죠. 하지만 이 장면만을 지속시키는 것만으로는 관객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좀 더 명확한 메시지 있었더라면

 영화 <곤지암> 스틸 컷.

영화 <곤지암> 스틸 컷. ⓒ (주)쇼박스


이 영화에서 과거를 묘사한 흑백 사진과 영상은 상당히 기괴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공간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이 많은 것을 유추해볼 수도 있죠. 다만 이 영화에서 원장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과거에 여기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원혼들이 사람을 죽이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끝까지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다른 여타 훌륭한 공포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알 포인트>의 경우, 군인들을 죽이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영화 마지막까지 잘 드러나지 않죠. 고전 영화 <샤이닝>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 공간이 저주 받았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 공간이 왜 저주 받았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감독의 재량으로, 일개 관람자에 불과한 저는 당연히 이를 존중해야겠지요. 다만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일과 현재의 사건의 인과 관계, 목을 매 자살했다는 원장과 그녀의 실험실이 간직했던 비밀, 여기에 더해 어떤 반전까지 더해졌다면 더 훌륭한 영화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특히 아연의 캐릭터,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반전이나 또는 특별함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 캐릭터를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윤과 아연 간의 관계에서 초반부의 살짝 장난스러운 티격태격함을 제외하고는 아무 갈등도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402호라는 가장 중요한 공간에 이 둘을 밀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별다른 클라이맥스를 보여주지 않고 종전에 처리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장면을 넘기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단 젊은이들의 탐욕이 그들을 사지에 몰아넣는다는 건 약간은 진부합니다만 그 자체로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 하나로 영화 전체를 끌어가기에는 좀 서사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 마디만 첨언하자면 어쩌면 '주제'를 넣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콘텐츠에 시대정신이나 어떤 주제 의식이 들어가야만 수작이라는 생각을 혐오합니다. 영화는 재밌는 게 우선이죠. 공포영화라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가 제일 중요할 것이고요. 다만 그 자체만으로도 기괴한 1970, 80년대 흑백 영상과 사진, 얼마 전 탄핵된 대통령의 젊은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봤을 때는 어떤 주제 의식을 넣으려고 했다면 매우 훌륭하게 집어 넣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영화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 미제의 살인 사건이 주제입니다만, 당시 민주화 시위를 막는 데 많은 경찰력을 동원해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슬쩍 집어넣어 실은 그 시대 자체도 공범이라는 그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줬습니다. <곤지암>도 그랬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무난히 흥행에 성공할 것으로 평가합니다.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는 리뷰이지,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리뷰는 아니니까요. 전작 <기담> 같은 경우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비운의 명작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흥행에 성공해서 다음 작품은 좀 더 감독이 여유를 가지고 더 훌륭한 수작으로 돌아올 수 있길 기대해보겠습니다.

곤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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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투자자, 소설가, 아마추어 기자. "삶은 지식과 경험의 보고(寶庫)이자 향연이다. 그러므로 나 풍류판관 페트로니우스가 다음처럼 말하노라." - 사티리콘 中 blog.naver.com/admljy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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