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잃을 것이 있을까. 전패(3패)하면 어떤가. 우리가 승리하면 '이변'이라 불리지만, 패하면 '당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상대가 누구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8일 오전 3시 45분(한국시각) 폴란드 호주프에 위치한 실롱스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폴란드와 평가전에서 2-3으로 패했다.

월드컵 묘수찾기 쉽지 않네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월드컵 묘수찾기 쉽지 않네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팀은 스리백 카드(3-4-3)를 꺼내 들었다. 김승규 골키퍼가 골문을 지킨 가운데 김민재와 장현수, 홍정호가 중앙 수비수로 출전했다. 박주호와 이용이 윙백으로 선발 출전했고, 중원은 기성용과 정우영이 책임졌다. 손흥민은 스트라이커로 나섰고, 이재성과 권창훈이 측면 공격을 도맡았다.

37분 만에 끝난 스리백 실험

FIFA 랭킹 6위 폴란드는 최종예선 포함 그간 우리가 상대했던 팀보다 확실히 강했다. 우선, 압박 위치와 강도가 남달랐다. 대표팀은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해 들어오는 상대를 이겨내지 못했다. 상대의 적극적인 압박에 당황하며 볼을 뒤로 돌렸고, 긴장한 탓인지 실수까지 남발했다.

우리의 압박은 보이지 않았다. 대표팀은 자신이 맡은 지역을 지키면서 수비하는 데만 집중했다. 이 덕에 폴란드는 수월한 공격 전개가 가능했다. 우리 진영으로 넘어오는 데 큰 부담이 없었고, 1대1 싸움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전반 10분, 우리 실수로 시작된 상대의 빠른 역습이 문전으로 달려든 레반도프스키의 슈팅으로 이어질 뻔했다. 전반 22분에는 우측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레반도프스키가 헤더로 연결해 골문을 위협했다. 김승규 골키퍼의 빠른 판단과 놀라운 반사 신경이 실점을 막았지만, 아찔한 장면이었다.

수비 숙제 장현수(5)와 홍정호(19)가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9)에게 헤딩골을 허용한 뒤 허탈해 하고 있다.

▲ 수비 숙제 장현수(5)와 홍정호(19)가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9)에게 헤딩골을 허용한 뒤 허탈해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계속 몰아치던 폴란드가 균형을 깼다. 전반 31분, 왼쪽 측면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레반도프스키가 깔끔한 헤더로 마무리했다. 장현수가 레반도프스키를 막기 위해 경합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이른 교체를 단행했다. 전반 37분, 중앙 수비수 김민재를 빼고 스트라이커 황희찬을 투입했다. 황희찬과 손흥민을 전방에 배치하는 4-4-2 포메이션으로의 전환이었다.

그러나 추가 실점을 내줬다. 전반 45분, 그로시츠키가 김승규 골키퍼와 1대1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상대는 별문제 없이 침투 패스를 찔렀고, 그로시츠키는 여유롭게 우리 수비 뒷공간을 허물었다. 상대가 잘한 것보다는 우리의 실수가 뼈아픈 실점이었다. '0-2', 전반전은 완패였다.

전반과 달랐던 후반... 2-3 아쉬운 패배

대표팀은 후반전 시작 직전, 다시 한 번 교체 카드를 활용했다.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인 홍정호, 이용을 빼고 윤영선과 최철순을 투입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표팀이 주도권을 잡고 공격을 전개했다. 후반 3분, 이재성이 박주호가 측면에서 낮고 빠르게 올려준 크로스를 슈팅으로 연결했다. 후반 5분, 최철순이 정우영의 직접 프리킥 슈팅이 수비 맞고 흐른 것을 재차 슈팅으로 연결했다. 4분 뒤, 기성용과 황희찬을 거친 볼이 손흥민에게 향했고, 짧은 드리블에 이은 중거리 슈팅으로 이어졌다.

손흥민 황희찬 시너지 황희찬(오른쪽)과 손흥민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함께 공격하고 있다.

▲ 손흥민 황희찬 시너지 황희찬(오른쪽)과 손흥민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함께 공격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팀의 공격은 계속됐다. 후반 12분, 손흥민의 패스를 받은 황희찬이 수비와 간격을 벌리는 빠른 드리블에 이어 슈팅을 시도했다. 후반 17분, 교체 투입된 김신욱의 헤더에 이은 윤영선의 슈팅이 폴란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후반 40분, 대표팀은 마침내 만회골을 뽑았다. 기성용 대신 투입(후반 34분)된 '슈터' 이창민이었다. 이창민은 손흥민이 왼쪽에서 수비수 2명을 따돌린 뒤 살짝 내준 볼을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거리가 상당했지만, 골문 구석을 정확히 때린 멋진 득점이었다.

기세가 오른 대표팀은 동점골까지 터뜨렸다. 후반 42분, 손흥민이 수비 시선을 끈 뒤 침투 패스를 찔렀고, 뒷공간을 허문 박주호가 잡아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이를 문전으로 달려든 황희찬이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그러나 대표팀은 웃지 못했다. 후반 막판, 역전골을 허용했다. 지엘린스키가 골문 상단 구석을 노린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2-3', 5만 5천여 관중의 함성을 등에 업은 홈팀 폴란드의 승리였다.

한국 잃을 것 있나... 최철순과 황희찬이 보여준 '투지'가 필요해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레반도프스키 못지않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싸워야 한다. 이날처럼 선수의 이름값에 기죽어선 곤란하다.

경기 초반, 우리 선수들의 몸이 굳은 듯했다. 5만 5천여 관중의 함성, 레반도프스키와 같은 선수들의 이름값에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상대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적극적인 압박 및 공격 의지를 보이면서, 부담도 커졌다. 결국 실수를 연발했고, 선제골을 내줬다. 총체적 난국, 최악의 흐름이었다.

그 분위기를 뒤집었다. 전술 변화(스리백->포백)가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투지'를 보인 황희찬과 최철순의 움직임이 더 인상적이었다.

황희찬은 소속팀 잘츠부르크에서 보여준 것처럼 활발히 움직였다. 특히, 볼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 눈부셨다. 그는 '들소'처럼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상대 수비는 실수를 범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상대가 쉽게 전진하지 못하도록 압박했고, 공격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

공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돌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침투를 선보이며 공격 중심에 섰고, 골 맛까지 봤다. 중앙과 측면을 활발히 오가면서 유연한 연계 능력도 보여줬다.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속도'를 우선한다면, 손흥민의 파트너로 유력해 보인다.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 최철순 축구국가대표팀 수비수(DF) 최철순이 21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 아일랜드축구협회(FAI) 내셔널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훈련에서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 최철순 축구국가대표팀 수비수(DF) 최철순이 21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 아일랜드축구협회(FAI) 내셔널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훈련에서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체 출전한 최철순도 인상적이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공수를 활발히 오갔고, 투지 넘치는 드리블과 돌파를 보여줬다. 상대의 태클과 몸싸움에 넘어지기를 반복했지만, 곧바로 일어나 압박에 들어갔다. 173cm, 신체 조건은 선발 출전한 이용(180cm)은 물론 폴란드 선수들에 비해 한참 밀렸지만,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투지'가 필요하다. 한국이 스페인처럼 아름다운 패스 축구를 선보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날 경기가 증명했듯이 수비에 많은 숫자를 둔다고 해서 안정감이 더해지는 것도 아니다. 허술한 수비 조직력 및 개인 기량, 강도 높은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 빠른 역습을 위협적인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세밀함 등 우리는 모든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심지어 시간까지 없다. 

답은 하나다. 2002 한-일 월드컵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객관적인 전력이 가장 떨어진다. 상대보다 무조건 많이 뛰어야 한다. 상대가 누구든 강하게 부딪히고, 때론 거칠게 몰아붙여야 한다. 체력과 집중력에서 앞설 때, 상대의 틈을 노려야 한다. 최소한, 이름값에 주눅 들어 할 수 있는 것조차 못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황희찬과 최철순이 그랬던 것처럼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이 필요하다.

손흥민, 혼신을 다한 슛 손흥민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카밀 글리크를 앞에 두고 혼신을 다해 슛하고 있다.

▲ 손흥민, 혼신을 다한 슛 손흥민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카밀 글리크를 앞에 두고 혼신을 다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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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VS폴란드 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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