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훈 머리를 글러브로 치는 로저스 넥센 히어로즈 에스밀 로저스가 지난 24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KBO리그 개막전에서 최재훈이 홈에서 아웃되자 글러브로 머리를 치고 있다.

▲ 최재훈 머리를 글러브로 치는 로저스 넥센 히어로즈 에스밀 로저스가 지난 24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KBO리그 개막전에서 최재훈이 홈에서 아웃되자 글러브로 머리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2년 만에 KBO리그로 돌아온 에스밀 로저스(넥센)가 옛 동료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행동을 하면서 개막전부터 논란이 됐다. 2015-16시즌 한화에서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퇴출했던 로저스는 올해 넥센 유니폼을 입고 지난 24일 한화와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여 6.2이닝 9피안타 1볼넷 6탈삼진 3실점(2자책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부상 경력으로 우려를 자아냈던 지적을 불식할만한 활약이었다.

그런데 이날 로저스는 경기 중 여러 차례 한화 선수들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2회 1사 3루에서 이용규의 중견수 뜬공 때 홈에서 아웃된 최재훈과 이용규의 헬멧을 연이어 글러브로 툭툭 건드리는 행동을 했다. 5회에는 1루에서 견제 아웃된 양성우를 바라보며 두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동작도 나왔다.

한화 측은 경기 후 로저스의 행동에 대하여 불쾌감을 표시했다. 넥센도 한화의 요구를 수용하여 로저스에게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고 26일 밝혔다. 로저스도 이에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적절하지 못한 행동에 '논란'

양성우 보며 두 눈 가리키는 로저스 넥센 히어로즈 에스밀 로저스가 지난 24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KBO리그 개막전에서 한화 양성우를 바라보며 자신의 두 눈을 가리키고 있다.

▲ 양성우 보며 두 눈 가리키는 로저스 넥센 히어로즈 에스밀 로저스가 지난 24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KBO리그 개막전에서 한화 양성우를 바라보며 자신의 두 눈을 가리키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로저스가 친정팀에게 고의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한 게 아니냐'고 성토하는 반응도 있다. 반면 '친분이 있는 옛 동료들에게 그 정도 장난은 할 수도 있지 않나'라며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프로불편러'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로저스는 한화에 있을 때부터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던 전력이 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습을 종종 드러내곤 했다. '악동'이라는 꼬리표는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만, 최소한 흥이 많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괴짜'에 가까운 면모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화전에서 로저스의 행동이 악의는 없어 보이지만 다소 경솔했다는 점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물론 로저스가 자신을 방출시킨 한화에 대한 악감정으로 그런 행동을 저질렀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로저스는 경기 전부터 한화 동료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장난을 치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화를 떠나는 과정이 깔끔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동료들간의 관계에서 앙금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선후배 관계가 강한 한국야구에서 경기를 앞둔 선수들간의 가벼운 '친목질'은 사실 국내 선수들간에도 빈번한 장면이다.

문제는 적어도 경기 중에는 공과 사를 구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저스의 의도를 옛 동료들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로 좋게 해석한다고 해도, 당하는 상대 선수들도 똑같이 받아들였는지는 의문이다. 팀의 승리를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경기 중에 아웃을 당하고 기분이 상해있는 선수를 툭툭 건드리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행동이 아니다. 심지어 양성우를 쳐다보며 두 눈을 가리키는 행동은 누가 봐도 조롱이나 도발이라고 느낄만한 소지가 충분했다.

'장난'이라면 당사자가 불쾌함 느끼지 않는 수준이라야

경기 중 발생하는 선수들간의 장난이나 친목질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하여 정답은 없다. 때로는 승부의 세계라도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때로는 짓궂은 신경전을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는 동업자 정신을 발휘하여 서로를 존중하는 장면도 야구의 일부다. 다만 그 기준은 양쪽 모두에게 동일하게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넥센 1루수 박병호는 삼성 박석민(현 NC)이 출루하여 투수 견제구를 받아 태그하는 과정에서 돌연 '급소'를 글러브로 터치하는 돌발행동을 저질렀다. 본의 아니게 '성추행'(?)을 당한 박석민은 고통과 민망함에 당황하여 잠시 박병호에게 항의했지만 그 이상 심각하게 문제삼지는 않았다. 두 선수가 평소에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장난이었고 대부분의 팬들도 우스운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동네야구도 아니고 경기 중인 프로선수들이 진지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비판도 소수지만 없지 않았다.

반면 장난으로 시작한 사건이 심각한 분위기가 된 경우도 있다. 롯데 이대호는 지난 2017년 6월 두산과의 경기가 끝나고 상대 선수인 오재원과 정색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가 '꼰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이대호는 경기 중 오재원이 1루로 충분히 송구시켜 정상적으로 아웃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주자 이대호를 기다렸다가 태그 아웃시킨 장면에 대하여 지적했다. 두 선수가 오랫동안 친분이 있기에 가능했던 장난이었지만 이대호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웃을 수 없었고, 경기 후 오재원의 불필요한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유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대호의 행동은 프로선수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대응이었지만, 일부 극성팬들은 전후사정도 모르고 이대호가 선배라는 지위를 악용하여 오재원에게 속좁게 '훈계질'을 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켰고 양팀 팬들간에 대리전으로 번지기도 했다. 오재원은 다음날 경기에서 볼넷을 얻어 걸어나간 뒤 1루수로 있던 이대호를 갑작스럽게 두 팔 벌려 포옹하는 퍼포먼스를 통하여 논란을 종결시켰다.

이처럼 로저스의 사례만 딱히 유별나다거나 외국인 선수라서 한국야구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다만 저지르는 선수 입장에서는 악의 없는 장난이었다고 할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이 웃지 못하면 그것은 장난이 아니라 조롱이나 도발이 될 수도, 심지어는 심각한 모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프로야구는 경기하는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팬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고려해야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언행으로 '예능이 다큐가 되어버리는' 경우는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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