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손흥민(25·토트넘)이 맹활약하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산소탱크 박지성(36·은퇴)과 비교 논쟁을 벌이고 있다. 축구 선진국 팬들이 자주 하던 배부른 논쟁(?)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지금도 마라도나 vs. 메시 우열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답을 찾지 못했다. 어느새 세계적인 공격수를 보유한 한국도 손흥민 vs. 박지성 해답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토트넘 에이스로 성장한 손흥민

 12일 오전 1시(한국시간)에 열린 프리미어리그 30라운드 본머스와의 경기에서 토트넘 손흥민 선수가 상대팀 골키퍼 베고비치를 제치고 득점에 성공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토트넘은 손흥민의 멀티골에 힘입어 4-1로 역전승했다.

12일 오전 1시(한국시간)에 열린 프리미어리그 30라운드 본머스와의 경기에서 토트넘 손흥민 선수가 상대팀 골키퍼 베고비치를 제치고 득점에 성공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토트넘은 손흥민의 멀티골에 힘입어 4-1로 역전승했다. ⓒ EPA/연합뉴스


손흥민은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포체티노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은 지난 12일(한국시간) 열린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본머스와 원정 경기서 4-1 역전승했다.

손흥민이 시즌 17·18호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토트넘은 18승 7무 5패(승점 61)로 리버풀(승점 60)을 끌어내리고 3위로 올라섰다.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승점 65)와 4점차에 불과해 준우승도 가능한 상황이다.

손흥민은 4경기 연속골과 함께 3차례 멀티골을 기록, EPL 득점순위 8위에 진입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동료들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공을 돌렸다.

뛰어난 실력과 겸손한 자세, 하회탈 웃음으로 영국 현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공영방송 BBC 인터넷판은 손흥민 사진으로 도배하며 "어머니의 날, 아들(SON)이 또 효도했다"고 보도했다.

이쯤 되면 손흥민과 'EPL 선구자' 박지성을 비교해볼 만하다. 맨유에서 7년간 뛴 박지성만큼이나 손흥민도 토트넘 주축으로 성장했다. 토트넘은 최근 3~4년 사이 전력이 급상승하며 우승후보로 자리매김했다. 손흥민은 EPL 최정상급 공격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EPL 득점왕 출신 크리스 서튼(45)도 "나라면 맨유의 산체스보다 손흥민을 쓰겠다"고 말할 정도다.

손흥민과 박지성의 포지션은 윙어지만 미드필드 어느 지역에서도 뛸 수 있다. 멀티 플레이어로 전술적 가치가 높다. 구체적인 쓰임새는 다르다. 손흥민은 공격 극대화, 박지성은 공수 균형과 수비안정화에 힘을 보탰다.

공격포인트는 손흥민이 앞선다. 2016/17시즌 21골을 넣어 차범근(19골)이 보유했던 역대 한국인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골을 넘었다. EPL 입성 두 시즌 만에 통산 29골을 기록, 박지성이 8시즌에 걸쳐 달성한 27골도 깼다. 그러나 단순히 기록만으로 선수를 평가하기 어려운 게 축구다.

'살신성인' 박지성의 프로페셔널

인터뷰하는 박지성  제이에스파운데이션이 주최하는 '2017 JS컵 U-12 국제 유소년축구대회'가 지난 2017년 8월 3일 강원 평창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평창국민체육센터서 열린 참가선수단 환영만찬회에 참석한 박지성 이사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인터뷰하는 박지성 제이에스파운데이션이 주최하는 '2017 JS컵 U-12 국제 유소년축구대회'가 지난 2017년 8월 3일 강원 평창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평창국민체육센터서 열린 참가선수단 환영만찬회에 참석한 박지성 이사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성은 맨유 시절 '두 개의 폐', '에너자이저'로 불렸다. 강철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뛰며 동료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퍼거슨 전 맨유 감독도 인정할 정도로 공간 지각력이 뛰어났다. 볼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파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지성을 막기 어려운 이유는 이타적 랜덤(무작위) 플레이 때문이다. 상대는 박지성이 공을 잡았을 때 패스할 것인지, 슈팅할 것인지, 돌파할 것인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간결하고 기본에 충실한 드리블과 옹골찬 피지컬, 살신성인 자세 등 올라운드 공격수로 각광받았다.

'수비형 윙어' 박지성은 강팀에도 강했다. 첼시, 리버풀, AC밀란을 상대로 골 맛을 봤다. 특히 아스날 킬러로 유명했다. 박지성이 골을 넣을 때마다 아스날 벵거 감독의 주름이 더 깊게 패였다.

맨유 전 동료들의 칭찬도 박지성을 돋보이게 한다. 웨인 루니(에버턴)는 지난 2016년 영국 유튜브 축구매체 '풋볼 리퍼블릭'과 인터뷰에서 "함께 뛴 선수들 중 저평가된 선수를 꼽아달라"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박지성"을 언급했다.

루니는 "박지성은 잊지 못할 동료다. 그는 매우 저평가됐으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호날두(레알 마드리드)도 과거 방송된 'SBS 스페셜-박지성, 오 캡틴 마이 캡틴'에서 "박지성의 프로정신에 감명받았다"고 밝혔다.

호날두는 "박지성과 함께 뛰어서 든든했다"며 "그는 하루종일 뛰어다닌다. 절대 멈추는 법이 없다. 열심히 뛰면서 공간을 메워주니 팀 동료로서 고마웠다. 축구선수들 모두가 좋아하는 유형"이라고 언급했다.

퍼거슨 전 감독도 자신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박지성 영입을 꼽는다. 퍼거슨은 챔피언스리그 AC밀란전 피를로 전담마크 경기를 떠올리며 "박지성은 내 전술을 120% 수행했다"고 말한 바 있다. 박지성이 지난 2012년 맨유를 떠나자, 퍼거슨은 자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박지성 아버지 박성종 씨가 공개한 퍼거슨의 자필편지에서 퍼거슨은 "변명이 될 수 있겠지만, 너의 (시한부) 무릎상태가 걱정스러웠다. 네가 원한 만큼 출전기회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 나의 결정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이어 "내 손자는 가장 좋아하던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자 많이 서운해했다. 아직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박지성은 팀원 모두가 신뢰하던 선수였다. 프로페셔널하고 어중간은 없었다. 매 경기 전력을 기울였다. 무릎연골이 조각나 너덜너덜한 순간까지도 소속팀을 위해 내달렸다. 하얗게 불태웠기에 수명 다한 무릎은 '훈장'과 같은 것이다.

박지성 vs. 손흥민을 결론짓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축구는 내용과 결과 모두 중요하다. 점수로 승패를 결정짓지만 과정이 있어야 골을 넣을 수 있다. 손흥민이 "동료들이 없었다면 많은 골을 넣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 것과 뜻을 같이 한다.

박지성이 손흥민보다 객관적으로 앞서는 것은 타이틀이다. EPL 정규리그 우승 4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우승 1회를 기록했다. 그리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첫 16강을 이끌었다.

박지성은 맨유 통산 204경기에 출전해 28골 29도움을 기록했다. 맨유팀 역사상 92번째 통산 200경기 이상 출장한 레전드로 남았다.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퍼디난드, 반니스텔루이, 호날두, 루니, 비디치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뛰며 맨유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는 손흥민에게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더 발전할 여지를 남겨뒀다. 손흥민이 EPL 선구자 박지성을 이어 영국축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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