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한 자리 숫자 더하기 혹은 빼기의 문제였을까? 그래도 축구장에서는 골을 더 많이 넣은 팀이 이긴다는 것을 홈 팀이 몰랐을 리 없다. 겨우 한 골이지만 앞서가고 있다고 방심했던 빈틈은 결국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고 말았다. 이것이 축구라는 사실을 어웨이 팀 유벤투스가 또 한 번 보여주었다.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유벤투스(이탈리아)가 한국 시각으로 8일 오전 4시 45분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7-2018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믿기 힘든 역전극을 펼치며 2-1로 이겼다. 유벤투스는 1, 2차전 합산 점수 4-3으로 8강에 오르는 감격을 누린 것이다.

거친 파울에도 다시 일어난 손흥민

 3월 8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간) 열린 토트넘과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토트넘 손흥민 선수가 득점에 성공했다. 손흥민의 선제골에도 토트넘은 1-2로 역전패를 당해 8강 진출이 좌절됐다.

3월 8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간) 열린 토트넘과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토트넘 손흥민 선수가 득점에 성공했다. 손흥민의 선제골에도 토트넘은 1-2로 역전패를 당해 8강 진출이 좌절됐다. ⓒ EPA/연합뉴스


런던 홈팬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웸블리에 들어온 홈 팀 토트넘 홋스퍼는 지난달 14일 토리노 어웨이 경기에서 전반전 10분도 안 되어서 2골이나 내주며 흔들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72분에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귀중한 프리킥 동점골을 만들어내 2-2로 비기고 돌아왔다.

토트넘으로서는 어웨이 골을 두 개나 만들어내며 비겼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래서 바로 이 홈 경기에서 패하지만 않는다면 그 어웨이 2골이 8강으로 자신들을 끌어올릴 것이라 믿었다.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최근 득점 감각이 절정에 오른 손흥민을 과감하게 스타팅 멤버로 내세웠다. 지난 1차전에서 손흥민을 83분에 교체 선수로 들여보낸 것과는 분명히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정말로 손흥민은 경기 시작 후 3분 만에 왼발 대각선 슛을 과감하게 날리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 지안뤼지 부폰이 손흥민의 슛을 몸 날려 가까스로 막아내야 할 정도였다.

상대 팀 유벤투스 입장에서는 토트넘의 간판 골잡이 해리 케인 말고도 손흥민 또한 골치 아픈 존재였기에 거친 몸싸움이 본격적으로 가해졌다. 32분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위험한 반칙이 손흥민을 쓰러뜨렸다.

토트넘 골키퍼 요리스가 왼발로 높게 차 올린 공이 중앙선 부근에 떨어지는 것을 향해 손흥민이 낙하지점을 찾아 솟구쳤을 때 점프 타이밍을 늦게 잡은 유벤투스 수비수 안드레아 바르찰리가 손흥민의 등을 밀면서 떠올랐다. 그 순간 손흥민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바르찰리의 축구화에 다리를 밟혔다. 그런데 바르찰리의 다음 행동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시몬 마시니아크(폴란드) 주심이 파울을 선언하지 않고 돌아서자 바르찰리는 손흥민을 한 차례 더 밟는 동작을 취했고 그 다음에도 발길질을 내뻗는 동작을 보였다. 마지막 발길질은 손흥민이 맞지는 않았지만 축구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위험한 발길질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주심만큼 가까운 곳에 대기심도 있었지만 바르찰리를 향한 경기 중 징계는 없었다.

손흥민의 골, 8강행이 눈앞에 보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손흥민은 벌떡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7분 뒤에 절묘한 선취골을 터뜨리고 말았다. 39분, 오른쪽 측면에서 키어런 트리피어가 낮게 깔아준 공을 향해 반대쪽에서 달려든 손흥민이 오른발로 찬 공이 살짝 빗맞으며 디딤발인 왼발 안쪽에 맞고 묘한 회전으로 골문 안에 빨려들어간 것이다. 베테랑 골키퍼 지안뤼지 부폰이 몸을 날리며 공을 걷어내려고 했지만 손흥민의 양발에 맞은 공은 상대 선수들이 예측한 타이밍을 벗어난 골이었다.

이에 토트넘 홋스퍼의 동료들이나 8만4010명이나 되는 웸블리의 홈팬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지르며 손흥민의 3경기 연속골이자 시즌 16호골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토트넘 홋스퍼는 후반전에 빈틈을 보였다. 유벤투스의 알레그리 감독이 61분에 베나티아를 빼고 리히슈타이너를 들여보내며 오른쪽 측면 공격을 특별히 주문했을 때 그 대비가 소홀했던 것이다. 거짓말처럼 단 3분 만에 놀라운 동점골이 바로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64분, 리히슈타이너가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미드필더 케디라가 헤더 패스로 연결했고 이 공을 기다렸다는 듯 곤살로 이과인이 절묘한 오른발 바깥쪽 발리슛으로 토트넘 골키퍼 요리스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손흥민과 이과인의 골 모두 강한 것보다 얼마나 섬세하게 상대 수비수나 골키퍼의 타이밍을 빼앗을 수 있느냐를 가르쳐주는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또 3분만에 놀라운 일이 하나 더 벌어졌다. 유벤투스의 역습 과정에서 이과인의 전진 패스를 받은 파울로 디발라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왼발 슛을 정확하게 차 넣어 역전시킨 것이다. 토트넘 홋스퍼 수비 라인의 오프 사이드 라인은 왼쪽 풀백 벤 데이비스 혼자서 내려가 있는 바람에 디발라를 함정에 빠뜨리지 못했다. 교체 선수 리히슈타이너를 막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데이비스의 라인 컨트롤에 나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1골을 먼저 넣어 8강행 티켓이 눈앞에 보였던 토트넘 홋스퍼의 운명이 후반전 중반에 이처럼 180도로 바뀐 것이다. 이에 포체티노 감독은 74분에 에릭 다이어를 빼고 라멜라를 들여보냈고, 85분에는 델레 알리를 빼고 골잡이 페르난도 요렌테를 들여보냈지만 연장전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는 동점골은 끝내 만들지 못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성숙한 태도 보여준 손흥민

 손흥민의 짧은 인터뷰가 담긴 토트넘 홋스퍼 공식 트위터 화면 캡쳐

손흥민의 짧은 인터뷰가 담긴 토트넘 홋스퍼 공식 트위터 화면 캡쳐 ⓒ 토트넘 홋스퍼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손흥민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시즌을 통틀어 매우 중요한 경기였기에 자신의 골이 더 빛나지 못한 아쉬움과 그밖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을 것이다. 그는 경기 직후 구단 인터뷰를 통해 그 마음을 조금 풀어놓았다.

실제로 손흥민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팬들을 향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축구라며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도 보였다. 축구 선수로서 진정으로 빛나기 위해서 발기술 몇 가지 말고도 갖추어야 할 인성이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의 교훈도 벌써 잊은 것처럼 안드레아 바르찰리에게 인신 공격을 퍼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손흥민은 바르찰리나 그가 행한 위험한 파울을 언급하기보다 팬들 앞에서 고개부터 숙이고 더 성숙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는 그라운드 위에서 온갖 험한 몸싸움들이 난무하지만 축구를 진정으로 즐기고 다른 사람에게 축구로 기쁨을 주기 위해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가를 이 명승부와 멋진 선수 하나가 또 가르쳐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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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2018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결과(8일 오전 4시 45분, 웸블리 스타디움-런던)

★ 토트넘 홋스퍼 1-2 유벤투스 [득점 : 손흥민(39분,도움-키어런 트리피어) / 곤살로 이과인(64분,도움-사미 케디라), 파울로 디발라(67분,도움-곤살로 이과인)]
- 1, 2차전 합산 점수 4-3으로 유벤투스 8강 진출!

◇ 현재까지 8강 진출 팀 목록
리버풀 FC, 맨체스터 시티 FC(이상 잉글랜드)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유벤투스(이탈리아)
축구 손흥민 챔피언스리그 바르찰리 토트넘 홋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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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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