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임순례 감독의 영화에서 눈에 들어오는 건 영화 속 대상이 잘 나가는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들이라는 것이다. 비주류이고 그들은 기존 사회의 영역에서 주로 밖이나 변두리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청춘의 시련을 그려낸 <세 친구>가 그랬고, 고단한 현실에 흔들리며 온갖 소동을 겪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밴드가 그랬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답답한 한편으로 미워할 수 없는 정감이 있는 사람들이다. 잘 나가는 주류는 아니지만 서로 간의 끈끈한 정과 연대는 힘든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그 과정 속에서 작은 감동과 희망을 전해준다. 흥행작이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는 이런 흐름이 잘 녹아았다. 주류 인기 스포츠가 아닌 관심 받지 못하는 비인기 스포츠 선수들의 열정을 통해 뭉클한 감동을 그려냈다.

올해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개봉한 지 10년째 되는 올해 임순례 감독은 그 장기를 깊이 숙성시켜 또 하나의 작품을 내놨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리를 포레스트>는 그런 임순례 감독의 특성이 오롯이 담긴 영화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영화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도시에서 지친 청년들이 어머니의 품 같은 농촌으로 돌아와 쉼을 얻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지는데 임순례 감독의 색깔이 듬뿍 배어 있다.

혜원(김태리)을 중심으로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 세 친구의 이야기가 중심인 <리틀 포레스트>는 그의 첫 장편이었던 1996년 <세 친구>의 또 다른 변주처럼 보인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통과 의례를 거치는 남자 셋의 <세 친구>와 달리, <리틀 포레스트>의 세 친구는 여자 둘에 남자 하나지만 힘들어 하는 청춘이라는 점은 비슷하다.

도전에 실패한 좌절감과 도시의 배고픔에 시골집으로 돌아온 혜원이나, 도시의 꽉 짜여진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와 농사를 짓는 재하나. 마음을 도시로 향하나 현실은 농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은숙은 모두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 하던 <세 친구>와 크게 다름이 없다. 돌아와 잠시 쉼을 얻고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정도가 차이다.

농촌을 떠났으나 벗어나지 못하고 돌아온 혜원이나 재하, 농촌을 벗어나고 싶으나 떠나지 못한 은숙은 지금 현실 속 청춘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 "떠나온 것이 아닌 돌아온 것"이라는 혜원과 애인의 통화 내용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감독이 농촌이라는 공간을 통해 지친 젊음을 위로하고 싶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녹색당원 감독의 정치적 색깔이 담긴 농촌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리틀 포레스트>의 농촌은 삶의 공간이고 생동의 공간이다. 땅에서 솟아나는 식물의 생명력은 농촌을 낭만적으로 그린다. 거친 농사일을 강조하기 보다는 땀을 통해 땅을 일구는 보람을 전한다. 자연 속에서의 농사는 도시에서 시달렸던 삶에 비해 안식을 준다. 그렇다고 자연이 늘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힘든 노력들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며 좌절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혜원이나 재하가 도시에서 겪었던 숨 막히고 배고픈 현실 보다는 덜한 느낌이다.

따라서 <리틀 포레스트>에서 농촌은 치유와 회복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피폐한 농촌을 너무 이상적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싶지만 여기에는 감독의 정치적 지향성이 확연히 스며있다. 그런 면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로 볼 수 있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과 땀 흘리는 노동, 계절마다 자연을 노니는 작은 생물, 옆에서 친근감 있게 혜원을 지켜주는 개 등은 녹색당원인 감독의 정체성이 잘 표현된다. 촬영 과정에서 벌레 하나까지도 신경 썼다는 뒷이야기는 감독의 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직접 땅에서 캐내고 정성을 담는 요리는 감정이나 기분을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때로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게도 만들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언 땅에서 캐낸 배춧국이나 직접 빚는 막걸리, 겨우내 냉해를 피해 자라나는 양파와 가을에 말려 맛이 익어가면서 곶감 등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와는 반대의 느낌이다.

덕분에 <리틀 포레스트>는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정리해주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마음에 평온함을 안겨 준다. 기승전결 구도가 명확하기 보다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삶의 과정은 기존 영화와는 다른 문법으로 다가온다. 호쾌한 웃음이나 화려한 액션, 역사적 아픔이나 잔인한 현실 등과는 결이 다르다.

그저 잔잔한 호숫가에 배를 띄우고 거니는 기분이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끊임없이 사계절이 순환하듯 결말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계속 이어지고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을 성찰해 보는 역할을 한다.

임순례 감독은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로 주고 싶었다"는데 <리틀 포레스트>는 그의 의도에 딱 맞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애, 취업, 시험 걱정은 버리고 해원과 친구들의 특별한 사계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한 감독의 마음이 영화에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전달되는 웃음을 통해 감독은 지친 사람들의 등을 토닥인다.

<리틀 포레스트>의 단점은 너무 허기진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상당히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하고 맛깔난 음식들이 이어지는 장면들은 배고픈 상태의 관객에게는 영화 상영 시간이 내내 견디기 힘든 고문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왼쪽부터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 혜원(김태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왼쪽부터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 혜원(김태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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