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또다시 선발명단에서 제외됐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이번에도 손흥민 대신 에릭 라멜라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심지어 라멜라가 물러난 이후에도 가장 먼저 투입된 선수는 루카스 모우라였다. 교체멤버로도 2순위로 밀려난 손흥민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5분에 불과했다. 설마했지만 라멜라와 모우라의 틈바구니에서 손흥민의 향한 포체티노 감독의 '저울질'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장면이다.

토트넘은 25일(이하 한국시각) 오후 9시 영국 런던의 셀허스트 파크에서 열린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8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헤딩 결승골에 힘입어 고전 끝에 1-0으로 승리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이 주로 맡던 측면 윙어 자리에 라멜라를 선발로 내세웠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 손흥민은 후반 35분 모우라에 이은 두 번째 교체카드로 무사 뎀벨레와 자리를 바꿔 경기장에 투입됐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팰리스의 이청용도 후반 42분 교체로 투입되어 손흥민과 나란히 6~7분 정도 짧은 '코리언더비'가 펼쳐지기도 했으나 딱히 인상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포지션 겹치는 라멜라-모우라에 선발 경쟁 밀리는 듯한 분위기

EPL 토트넘, 아스널에 1-0 승리 10일 오후(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과 토트넘의 27라운드 경기. 손흥민은 70분을 뛰었으나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다.

지난달 14일 에버턴과 경기에서 시즌 11호 골(리그 8호)을 기록한 이후 EPL에서는 4경기째 침묵이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을 합치면 6경기째 무득점이다.

▲ EPL 토트넘, 아스널에 1-0 승리 10일 오후(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과 토트넘의 27라운드 경기. 손흥민은 70분을 뛰었으나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다. 지난달 14일 에버턴과 경기에서 시즌 11호 골(리그 8호)을 기록한 이후 EPL에서는 4경기째 침묵이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을 합치면 6경기째 무득점이다. ⓒ 연합뉴스/EPA


손흥민은 지난 시즌부터 토트넘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6-17시즌에만 무려 21골을 넣으며 한국인 유럽파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올시즌도 11골을 터뜨리며 팀 내에서 케인 다음으로 많은 골을 기록하고 있었다. 최근 라멜라가 장기부상을 털고 전력에 복귀했고 겨울이적시장에서 모우라까지 가세하면서 토트넘의 2선 활용폭이 넓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상종가를 달리고 있던 손흥민의 입지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포체티노 감독의 생각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포체티노 감독은 라멜라와 모우라의 출전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며 이들을 앞으로 팀전력에서 중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 것이 바로 손흥민이었다. 공교롭게도 손흥민이 지난달 14일 에버턴과 23라운드 이후 한달 넘게 무득점(9경기 연속)에 시달리며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진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지난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원정경기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손흥민 대신 라멜라를 선발투입하는 '깜짝 기용'을 단행했다. 이어 치열한 TOP4 경쟁을 펼치고 있는 토트넘에 있어서, 팰리스와의 리그 경기에서도 포체티노의 우선 순위는 라멜라였다. 손흥민은 중요한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는 교체멤버에 그쳤고, 이 사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는 3부리그 로치데일과의 FA컵에서만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손흥민이 다시 한번 험난한 주전 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음을 보여준 현 주소다.

손흥민을 응원하는 국내 팬들의 불만은 클 수밖에 없다. 포체티노 감독을 향한 비난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그간 토트넘에서 검증된 활약을 보여준 손흥민이 부상과 슬럼프로 오랫동안 보여준 게 없는 라멜라-모우라보다 못 할 게 뭐냐'는 지적이다. 둘째로 토트넘 부동의 빅3로 꼽히는 케인-에릭센-알리는 다소 부진하더라도 변함없이 부동의 주전으로 기용되는데 유독 손흥민만 끊임없이 희생양이 되고있는 것은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결국 손흥민의 실력 탓이라기보다는 감독이 선호하는 선수기용이나 전술적 성향의 문제에 가깝다. 케인은 설명이 필요없는 현재 유럽 최고의 공격수중 한 명이고, 에릭센은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플레이메이커, 알리는 풍부한 활동량과 득점력이 뛰어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각각 팀내에서 대체불가한 역할을 맡고 있다.

포체티노 감독은 중앙 지향적인 빅3와는 달리, 2선의 좌우 윙어에는 좀더 기술적이고 창의성이 뛰어난 드리블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라멜라와 모우라는 모두 자신이 공을 직접 몰고 수비를 흔드는 플레이에 능한 유형의 선수들이다. 두 선수는 각각 축구강국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가대표로까지 활약한 테크니션들이다. 컨디션만 좋다면 이들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토트넘의 공격 밸런스을 극대화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게 포체티노 감독의 구상으로 보인다.

이들에 비하여 손흥민의 최대 장점은 뛰어난 골 생산력이다. 손흥민은 2선 자원임에도 팀내에서 사실상 최전방 공격수 못지않은 폭발적인 득점력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골이 없는 경기에서의 팀 기여도나 잦은 기복은 여전히 약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토트넘 입단 이후 연계능력이나 전술 소화 면에서 많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손흥민이 팀 내에서 케인이나 에릭센만큼 '대체불가'할 정도의 위상을 지닌 선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월드컵 전까지 다시 주전 경쟁해야... 증명해낼 기회는 있다

손흥민이 그동안 토트넘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데는 본인의 눈부신 활약도 있었지만 토트넘의 상황도 한몫을 담당했다. 라멜라가 장기 부상으로 팀전력에서 이탈하고 무사 시소코나 빈센트 얀센(페네르바체 임대) 등이 부진하면서 선수층이 얇은 토트넘에서 최전방과 2선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손흥민의 가치가 더욱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손흥민과 포지션이 겹치는 라멜라와 모우라의 컨디션이 점점 올라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도 아직은 손흥민에게도 기회는 충분하다. 손흥민의 자리를 가장 위협하고 있는 라멜라가 포체티노 감독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라멜라는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부진했고, 지난 팰리스전에서도 66분을 소화하는 동안 단 하나의 슈팅이나 결정적인 득점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가장 먼저 교체됐다. 라멜라 대신 투입된 모우라 역시 지나치게 볼을 끄는 성향만 드러내며 아직 프리미어리그의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토트넘은 종료 2분 전 케인의 득점포로 간신히 이기기는 했지만, 영국 현지에서는 그동안 팰리스전에서 강한 면모를 여러 차례 보여준 손흥민을 일찍 투입했다면 좀 더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포체티노 감독의 용병술을 지적하는 반응이 많았다.

시즌 종료까지는 이제 약 석달밖에 남지않았다. 손흥민은 이 기간 치열한 팀 내 주전경쟁과 함께 토트넘에서 자신의 미래, 다가오는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향한 대비까지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손흥민이 다시 한번 보란 듯이 포체티노 감독의 저울질을 실력으로 극복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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