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왼쪽부터 조제/구미코를 연기한 이케와키 치즈루와 츠네오를 연기한 츠마부키 사토시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왼쪽부터 조제/구미코를 연기한 이케와키 치즈루와 츠네오를 연기한 츠마부키 사토시 ⓒ (주)프레인글로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약 자신의 주변 누군가가 장애인과 교제를 한다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 당신에게 이성적 관심을 보인다면? 이러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바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이다.

마작방 알바생이자 대학생인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한 손님에게 괴상한 소문을 듣는다. 어떤 할머니가 담요로 덮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모차를 매일같이 끌고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곧 그는 유모차의 정체와 우연히 마주친다. 구미코(이케와키 치즈루)라는 다리를 못 쓰는 여성이었고, 그를 할머니가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소설 속 인물인 조제라고 부른다. 그는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에 관심을 갖고 다가간다.

조제는 어떤 '실'에 촘촘히 둘러 싸여있다. 이 실들의 근원은 그녀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과 태도다. 그들은 그녀를 가두고 옥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습격하기도 하고, 가슴을 만지게 해주면 쓰레기를 매일 버려준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받아들인다. 혼자 유모차를 끌고 가기엔 쓰레기장이 멀기 때문이다(반면, 습격한 자에겐 칼침을 놓는다). 츠네오의 동생은 같은 인간임에도 장애인과 처음 대화해봤다며 그녀를 마치 동물원 속 동물 보듯이 신기해한다.

보호자인 할머니조차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구속한다. 할머니 몰래 츠네오와 외출한 날에는 "다리도 아픈 주제에 네가 보통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 타박한다. 할머니가 그녀를 태우고 다니는 유모차 또한 단절의 공간이었던 집을 단지 이동식으로 바꿔놓았을 뿐이다. 유모차 속 그녀는 외부와 접촉은커녕 담요에 가려져, 세상을 바라보는 것마저 어렵다.

하지만 츠네오는 다르다. 그녀의 곁에서 사랑을 준다. 동시에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인도한다. 단절의 상징이었던 유모차 또한 츠네오로 인해 벗어난다. 그녀의 소망이었던 '사랑하는 이와 가장 무서운 것 같이 보기'도 함께한다. 이미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호랑이다. 하지만 그런 그마저 결국 조제를 떠난다. 그는 그녀의 장애 자체에도 지쳤지만, 자신과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끝내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가족에게 조제를 소개하기로 한 날에도 결국 발길을 돌린다.

츠네오의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그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바다로 여행을 떠난 츠네오와 조제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바다로 여행을 떠난 츠네오와 조제 ⓒ (주)프레인글로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츠네오의 복잡 미묘한 심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그는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생과 통화를 한다. 통화의 끝 무렵 지쳤냐는 동생의 물음에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이내 볼일을 보던 그녀를 찾아가 끌어안는다. 몇 마디 대사보다 하나의 행동이 그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엔딩부, 조제와 헤어지고 담담하게 전 애인과 길을 걷다가 오열하고 마는 모습 또한 인상 깊다.

반면, 조제는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자신의 불편한 다리에서 비롯된 특이한 취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의 진심을 왜곡한다. 자라오며 많은 부당한 일을 겪었을 그녀로써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또 그녀가 이름을 따온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 속 조제는 사랑의 짧음을 역설하며 지고지순한 연애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이 소설에 영향을 받은 그녀는 동화 같은 순수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리하여 더더욱 츠네오의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장면들을 살펴보면, 우선 어릴 적부터 친구인 코지(아라이 히로후미)의 결혼질문에 "결혼이 가능할 리 없잖아"라고 일축하며 진지한 관계로의 발전을 믿지 않는다. 둘이 첫 관계를 가질 때도 마찬가지다. 조제의 급작스러운 성관계 제안에 츠네오는 당황하며 '자신은 옆집 변태와 다르다'고 말한다. 이에 그녀의 대답은 "달라? 뭐가 다른데?" 후반부에 사랑을 나눌 때도 그를 만족시키려 눈을 가리고 손을 묶는 독특한 방식을 제안한다.

그래서인지 이별할 때 그녀는 오히려 담담하다. 같이 얘기를 나눴던 독특한 성 취향 잡지를 선물하기까지 한다. 다만, 편협한 시선 속에 갇혀있었던 그녀는 자상한 그에게 호감이 갔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 마치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관심에도 행복하고 만족한다.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조제의 상황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바람직한 사회적 환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릇된 시선과 태도가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 하물며 이들에게 성폭력을 일삼는 인면수심의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과잉친절, 과잉염려도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본인에게 묻지도 않고 무작정 도와준다면, 당사자는 자존심도 기분도 상할 수 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의도와 세심한 배려가 합쳐져야만 비로소 선행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사랑... 행복했던 조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츠네오의 전 여자친구인 카나에(우에노 주리)다. 그에게 차인 그녀는 조제를 찾아가 '장애인 주제에 자신의 애인을 뺏었다'는 모진 말을 퍼붓는다. 감추고 싶었던, 혹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선민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그녀가 보살펴야할 장애인인 조제를 찾아가 뺨을 때리고, '장애라는 무기가 부럽다는 막말'까지 하는 등 밑바닥을 보인다. 그 후 그녀는 인생의 길을 잃고 원래 꿈과는 무관한 일을 한다. 짐작건대 많은 이들이 장애인을 보며 카나에처럼 자신도 모르게 남모를 우월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사랑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던 조제. 이처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서로 사랑하는 두 주인공의 입장 차이에 따른 서로 다른 시선이라는 애처로운 사랑을 보여준 영화다. 다만 헤어진 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당당하게 앞을 향해 가는 조제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그녀의 앞길이 전보다 밝을 것만 같다. 그녀가 말했듯 심해 속 물고기였던 자신에서 밝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조제로 말이다.

조제,호랑이그리고물고기들 영화 장애인 사회 일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쓴이를 꿈꾸는 일반인 / go9924@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