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은 다작(多作)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 감독이다. 게다가 매년 하나씩 작품을 내놓는데, 높은 퀄리티를 드러내고 있어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차례 감독상을, 세 차례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의 작품성은 인간의 감추고 싶은 욕망과 치부를 과감히 들추어내는 데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음직 하지만 누구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은 심리들을, 우디는 적나라하게 공개한다. 그런데 관객을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과정이 우디의 손에서는 강한 몰입도와 매력을 지닌 영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관객들이 결국 그러한 현실에 몰입하고 직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데 이 감독의 탁월함이 있는 것이다.

우연과 욕망의 교차점 아래에서

 <매치 포인트>(2005).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스칼렛 요한슨 주연

<매치 포인트>(2005).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스칼렛 요한슨 주연 ⓒ 글뫼/(주)퍼스트런


10년의 간격을 두고 상영된 작품 <매치 포인트>(2005)와 <이레셔널 맨>(2015)은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바로 우연과 욕망이 교차하는 순간, '행동하는 괴물'이 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러시아 문단의 거목 도스토예프스키가 있다.

우디 앨런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했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주 차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 <매치 포인트> 속에는 주인공이 소설 <죄와 벌>을 읽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매치 포인트> <이레셔널 맨>의 스토리 뼈대 자체가 <죄와 벌>을 중심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오마주한 것이다.

<죄와 벌>의 스토리 구조는 한 청년이 무고한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겪게 되는 정신적 갈등을 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살해의 '동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초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 즉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우월적 존재임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경제적인 부를 확보하는 것, 즉 남의 돈을 강탈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우디가 그리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욕망들이다.

영화 <매치 포인트>에서 테니스 강사 크리스는 우연찮게 상류층 집안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고, 그 집안의 여인 클로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의 오빠 톰의 약혼녀인 노라를 처음 본 순간 크리스는 강한 정념에 불탄다. 결국 두 여자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에 접어든다. 이 줄타기가 위태로워지고 자신이 행운으로 얻어낸 부유함과 가정이 모두 파탄날 위기에 처하자, 결국 크리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노라와 그녀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을 총으로 쏴 죽인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치부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서다.

한편 영화 <이레셔널 맨>은 대학교수 질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뛰어난 철학 교수이지만 자신이 직접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염세적인 향기만을 풍기게 된다. 그러다 우연찮게 한 식당에서 뒷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마을 판사의 '부정'을 인식한다. 그 순간 그는 결심한다. 자신이 그 사람들과 마을을 위해서 판사를 직접 죽이겠다고.

그는 오랜 시간 공들인 끝에 이러한 결심을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여기서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눈치채고 이를 자백할 것을 추궁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범인으로 몰려 큰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인 무고한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자부심을 가지던 질은, 이런 상황이 겹쳐오자 심적 불안감에 휩싸이며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행위를 알고 있는 연인을 죽이고자 결심한다.

앨런이 이들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일까. 우연과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보이고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들도, 자신들이 감추고 있던 욕망이 실현될 수 있는 '우연'의 지점을 만나게 되면 크게 변화하게 된다.

거짓말, 불륜, 살인 등 사회 규범상 금지되어 있는 선을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과감하게 넘어선다. 그렇게 할 때 자신들의 앞에 서있는, 욕망을 실현할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물음을 품게 된다. 과연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평생 꿈꾸고만 있던 비현실적 목표를 이룰 기회를 직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우디의 인물들은 도스토예프스키적인 결단을, 욕망의 화신이 되는 길을 택했다. 물론 그 결말은 각기 달랐다. 혹자는 성공을 얻었으나, 혹자는 삶을 파멸로 이끌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별 인물들의 상황이 어떻게 끝맺음 되는지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가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곳에 있을 터이다.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일

 <이레셔널 맨>(2015). 엠마 스톤, 호아킨 피닉스 주연

<이레셔널 맨>(2015). 엠마 스톤, 호아킨 피닉스 주연 ⓒ (주)프레인글로벌


우디 앨런 감독은 자신의 작품의 탁월성과는 별개로, 성적인 추문에 수차례 휩싸인 바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자식이 유년시절 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기도 했고(그는 우디와 의절했다), 한국계 수양딸과 결혼하며 근친상간 논란과 롤리타콤플렉스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얼마 전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이 터지자, 여러 여배우들이 우디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었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훌륭한 예술가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매치 포인트>와 <이레셔널 맨>은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쉽지 않은, 말 그대로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들이다. 관객들은 그렇기에 현실에서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예술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에서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감독의 작품과 삶 자체를 동시에 바라보며 느낄 수 있다. 

영화 감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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