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작은 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리적인 제약으로 아마도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은 한 사람이 품고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시민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작은 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가장 크기도 하다.

작은 한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존재하고, 다른 사람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의 고유함이 있다. 그래서 작은 한 사람을 조망하는 일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멈추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록 매체는 순식간에 변화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작은 한 사람이 있고 우리는 상냥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개별적인 존재를 담은 기록물에 울고 웃는다.

스웨덴 출신의 감독 오사 블랑크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은 백 살부터>(2015)는 101세의 다그니를 주인공으로 한다. 2016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의 상영작이었고, 현재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101세 할머니 파워 블로거, 소통은 그녀의 일상

다그니는 스웨덴에서 아주 유명한 블로거이다. 다그니는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매일같이 기록하고, 사람들과 활발한 소통을 이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다그니의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다. 다그니의 의도와는 별개로 웹상에서 큰 입지를 다지면서 수많은 매체에서 그녀를 섭외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컴퓨터를 잘 다루고 친구와 메일을 주고 받고, 자신의 블로그를 지속해서 운영하는 일은 그녀에게 굉장히 일상적인 풍경이다. 처음에는 마우스를 다루는 것도 낯설어서 헤맨 시절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재는 수십만 명이 구독하는 블로그를 그녀의 삶 속에서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단순하게 컴퓨터를 다루고 메일을 보내는 법을 알려주는 강좌에 선생님으로 출강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은 백 살 부터

ⓒ 오사 블랑크


"제가 이렇게 활동하는 건 우리 노인 친구들을 돕기 위해서예요. 도전할 용기를 주고 싶어요. 전혀 위험하지 않거든요. 나이 든 여성분들 모두 도전할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사회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다그니는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 그런 일은 없다고 반증하고 있다. 사별한 이후, 그녀는 연애 사이트를 샅샅이 살펴보면서 새로운 상대방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관찰하기도 하고, 전 남편과 즐겁게 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춤출 수 있는 파트너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한다. 지금 당장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있지는 않지만, 사랑을 생각하고 늘 기다리는 그녀를 보면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저는 저예요"

아주 간단한 말이지만,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다그니의 많은 삶을 만난 극 후반부에 다그니의 입에서 저 말이 나왔을 때 모종의 쾌감을 느꼈다. 젊은 시절 다그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부의 꿈을 포기한 채로 바느질공장에서 20년을 일해야만 했고, 알코올중독자인 첫 남편에게 괴롭힘을 받으며 힘겨운 생활을 영위해나가야 했다. 그리고 일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번째 남편 해리와 사별한 이후, 그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한다. 10년이 흐른 현재 다그니는 의사와의 대화에서 지금의 삶이 흡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삶을 생생하게 느끼고,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확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많아진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생의 감각은 아니다.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건강한 대화를 통해서 겨우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다그니의 현재를 묻기도 하고,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하며, 열린 결말을 통해 미래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짧은 시간동안 다그니의 많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녀는 여전히 궁금한 사람이었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노인 현실에 대해 생각한다.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하며 OECD 1위를 자랑하는 곳에서 노인이 사회에서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나? 노인은 존엄하고 자립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정책을 집행할 당시에는 노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스웨덴에서 날아온 작은 한 사람의 다큐멘터리에서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노인 문제와 앞으로의 해결책의 필요성에 대해 더욱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다그니를 만날 준비를 한 사회일까?

다큐멘터리 인생은백살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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