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캡틴' 기성용(스완지시티)이 한국 선수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다 출전 신기록을 작성했다. 기성용은 4일 영국 레스터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 EPL 26라운드 레스터시티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후반 90분 풀타임간 도움까지 기록하며 1-1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날 출전으로 기성용은 EPL에서만 개인 통산 155경기를 뛰었다. 은퇴한 박지성(154경기)의 기록을 넘어선 한국 선수 최다 기록이다. 기성용은 FC서울에서 프로에 데뷔하여 2009년 스코틀랜드 리그 셀틱에 입단하며 유럽파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12년부터 스완지시티에 입단해 EPL에 진출했다. 이후 기성용은 2013-14시즌 선덜랜드에서 잠시 1년간 임대생활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줄곧 스완지에서만 활약했다. 스완지에서는 리그 128경기, 선덜랜드에서는 27경기를 각각 출장했다.

 지난 2015년 11월 29일, 기성용 풀타임 출전... 스완지는 리버풀에 0-1 패배

지난 2015년 11월 29일, 기성용이 풀타임 출전한 당시 모습 ⓒ EPA/연합뉴스


기성용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 빅리그에 생존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특히 몸싸움이 거칠고 속도가 빠른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아시아 출신 중앙 미드필더의 성공사례는 더욱 찾기 힘들다. 기성용 외에 EPL에서 성공했던 박지성, 손흥민, 이영표, 이청용, 설기현 등의 한국인 선수들은 모두 측면 미드필더나 풀백을 주 포지션으로 하는 선수들이었다는 게 차이점이다.

기성용의 가장 대단한 부분은, 데뷔 이래 거의 모든 경기를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하면서도 10년 가까이 거친 유럽무대에서 버텨냈다는 점이다. 아시아 선수로서는 보기드문 탁월한 피지컬에 뛰어난 패스와 경기운영 능력, 여기에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관리까지 겸비하였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기성용을 유럽무대에서 성공한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는 이유다.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유럽무대 도전

기성용의 유럽무대 도전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유럽진출 초창기만 셀틱 시절만 해도 주전경쟁에서 밀려 국내 복귀까지 검토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2년차부터 독기를 품고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결국 주전 자리를 꿰찼고 2012년에는 셀틱의 리그와 컵대회 정상을 이끌며 우승멤버로까지 등극했다. 그해 여름에는 런던올림픽에 출전하여 한국축구의 사상 첫 동메달 획득에도 기여했다. 무엇보다 기성용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의 플레이스타일과 유럽축구 특유의 거친 몸싸움에 대한 적응력 등은 사실상 셀틱 시절을 통하여 완성되었다고 할수 있다.

2012년 여름 스완지시티로 이적하면서 기성용은 꿈에 그리던 빅리거의 반열에 접어들었다. 첫 시즌부터 29경기를 출장하며 스완지의 리그컵 우승을 이끄는 등 성공적으로 연착륙하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 막판부터 미카엘 라우드럽 당시 감독과 불화설에 휩싸이며 팀내 입지가 약회되었고 2013-14시즌에는 결국 출장기회를 잡기 위하여 선덜랜드로 임대됐다. 당시 국가대표팀에서도 최강희 감독을 SNS로 비방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며 퇴출 위기와 비난 여론에 휩싸이는 등 기성용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기이기도 했다.

이를 악문 기성용은 다시 한번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선덜랜드에서 수비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전천후로 넘나드는 활약을 펼치며 팀의 1부리그 잔류에 크게 기여했다. 라우드럽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고 게리 몽크 감독이 부임한 2014-2015시즌에는 다시 스완지로 복귀하여 팀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2014-15시즌 기성용은 리그에서만 8골을 넣으면서 당시 아시아 선수 EPL 한 시즌 최다골 신기록을 수립하는 등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도 복귀한 기성용은 브라질월드컵에서 비록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겪는 와중에 그나마 선전했던 선수였다. 또한 결혼을 통하여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예전의 경솔한 언행도 줄어들고 한결 성숙해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기성용이 EPL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

스완지에서만 5시즌을 보내면서 어느덧 한국을 넘어 아시아 대표 빅리거로 자리매김한 기성용이지만 아쉬움도 없는 것은 아니다. 기성용이 선수생활을 보낸 스완지와 선덜랜드 모두 빅클럽과는 거리가 먼 지방의 중하위권 구단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측면이 있었다.

셀틱 시절 이후 한두 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EPL에서는 거의 매년 강등권 경쟁에 허덕이며 고생해야 했던 어려움도 컸다. 스완지는 최근 몇 년간 성적부진으로 인한 감독교체를 반복해야 했고 그때마다 기성용은 새로운 감독의 전술 실험 속에서 새롭게 주전경쟁을 겪어야 했다. 몇 차례 대도시 구단이나 빅클럽의 이적설, 심지어는 '황사머니'를 앞세운 중국 진출설까지 거론되기도 했지만 기성용은 고심 끝에 결국 스완지에 남았다.

기성용은 '돈이나 명성을 좇기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곳이 빅클럽'이라고 정의하며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신중함과 책임감이 기성용이 EPL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많은 한국인 유럽파들이 돈과 명예에 흔들며 잘못된 이적 결정을 내렸다가 몰락한 경우가 수두룩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성공한 장수 유럽파'로 자리매김한 기성용의 선택이 현명했다고도 볼 수 있다.

기성용은 올여름을 끝으로 스완지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소속팀 스완지는 여전히 기성용과의 재계약을 원하고 있을 만큼 기성용의 가치는 여전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기성용은 국가대표로서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출전도 눈앞에 두고 있다. 8년 전의 박지성처럼 주장 완장을 달고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어리거 출신 스타로서 어쩌면 축구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월드컵 무대이기에 더욱 뜻깊다.

비록 박지성이나 손흥민처럼 화려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기성용은 그렇게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마이웨이를 걸으며 '묵직한 리더'로서 성장해가고 있다. 기성용이 앞으로도 유럽무대에서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는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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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기성용 프리미어리그 대표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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