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인생도 영화처럼 편집이 된다면. 앞날이 걸린 갈림길 앞에서 씨름 중일 때, 그 길들을 다 가보고 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항상 선택만 할 뿐.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혹시 결과를 맞이했을 때, 다시 선택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물론 말도 안 되는 망상이다. 대신 영화를 통해 어떨지 가늠해볼 순 있다.

매사에 퉁명스럽고 이기적인 기상캐스터 필(빌 머레이)은 매년 2월 2일에 열리는 성촉절 취재를 위해 이번에도 일행과 함께 펑추토니 마을로 간다. 반복된 펑추토니 행이 지겨운 필은 취재는 건성, 사람들에겐 투덜거리며 빨리 끝내고 되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마침 내리는 폭설로 도로가 통제되고 결국 필 일행은 하루 더 묵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라디오에선 어제 아침과 같은 멘트가 흘러나오고 밖을 보니 쌓였던 눈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모두들 어제와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몇 번을 자도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영화처럼 인생도 편집이 된다면

사랑의 블랙홀 필을 연기한 빌 머레이와 리타를 연기한 앤디 맥도웰

▲ 사랑의 블랙홀 필을 연기한 빌 머레이와 리타를 연기한 앤디 맥도웰 ⓒ 소니 픽쳐스


필은 측정 불가능할 정도의 세월을 '2월 2일'에 갇혀 지낸다. 그동안 그는 말 그대로 '별짓'을 다한다. 음주운전, 그로 인한 경찰과의 추격전, 한 여성에게 출신학교를 물어보고 다음 날 동창인척 유혹하기, 현금수송 차량 절도하기, 귀찮게 하는 옛 친구의 얼굴 가격 등 질 안 좋은 행동을 일삼는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있다. 일행 중 한 명인 리타(앤디 맥도웰)의 마음을 얻는 것과 죽음. 그는 다른 여성을 유혹하는 데 성공했던 방법을 그녀에게도 시도하지만 뺨만 수차례 얻어맞는다.

이에 낙담한 그는 무한 반복을 벗어나려 투신자살, 감전사, 독극물 섭취 등 다양한 자살을 시도하지만, 눈을 뜨면 다시 성촉절 아침이다. 이후 우연히 관여하게 된 한 노인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는 변화한다. 마을 사람들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며 유명인사가 되고 피아노 연주와 얼음을 조각하는 일에 명수가 된다. 거기에 문학적 소양까지 쌓으며 모두가 그의 방송 멘트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인생도 편집이 된다면. 영화를 보기 전까진 해본 적 없는 상상이다. 그중 특히 나를 망상에 빠지게 만든 장면이 있다. 필이 리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타임루프(주인공이 동일한 기간을 계속 반복하는 것)를 활용하는 장면인데 이를 컷과 NG를 반복하는 영화촬영처럼 묘사한다.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다니. 반칙에 가까운 어드밴티지다. 하지만 필은 실패한다. 나중에 진심을 담은 사랑을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리타의 마음을 얻는다. 역시 사랑은 진심만이 통하는 법이다. 만들어진 이야기라서 이상적으로 표현된 걸까. 나는 아니다에 한 표. 왜냐면 현재 많은 연인이 타임루프 없이도 잘만 연애하고 있으니까. (아닌 분들에겐 죄송합니다.)

많고 많은 타임루프물? 그 시작은 <사랑의 블랙홀>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 필을 연기한 빌 머레이

▲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 필을 연기한 빌 머레이 ⓒ 소니 픽쳐스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영화 <소스코드>,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 현재까지 많은 타임루프 물이 나왔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이 장르가 줄기차게 나오게 된 시발점이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1990년대 최고의 코미디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개봉한 <해피데스데이>는 대사를 통해 <사랑의 블랙홀>을 대놓고 언급할 뿐 아니라 이야기 구조마저 비슷하다. 다만 여기에 호러, 하이틴 장르를 가미시켜 젊은 관객층의 입맛에 맞췄다. 그러다 보니 볼거리와 단순한 재미는 풍성해졌다.

하지만 <사랑의 블랙홀>만 못하다. 왜냐하면 <사랑의 블랙홀> 안에는 웃음과 인문학적 고찰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웃기면서도 인생에 대해 한 번쯤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는 흔치 않다. 이제 영화를 봤거나 보게 될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다.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기, 그거면 된다.

사랑의 블랙홀 타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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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를 꿈꾸는 일반인 / go9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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