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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고 싶어지게 한 영화였다. 곳곳에 숨어있는 복선과 암시가 재미를 더해 주었고, 과묵한 나를 할 말이 많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모습을 보다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패터슨의 일상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걸으며 주변을 관찰하고, 메모하는···.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나도 일상이 루틴이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같은 시간에 나서 아파트 단지 사잇길을 걸으며 지하철역까지 가는.

그러며 길 양쪽의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까치와 비둘기들의 다툼을 보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보고 들으며···. 나도 그렇게 모은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있다. 패터슨처럼 나만 볼 수 있는 노트에다. 약간 다른 점은 쓴 글 중 일부는 이렇게 남들에게 보여주지만, 노트의 비밀 속에 가둬둔 글이 더 많다. 아마 패터슨처럼 이제는 그 비밀 노트를 펼치려 고민하는 것은 같을 것이다.

로라는 페르소나?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인물은 '로라'다. 패터슨의 아내인지 여자친구인지 정확히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결혼사진이 없으니 아직은 동거인일 것이다. 물론 번역은 '여보'라 했고. 로라는 매일 아침 흐트러져 있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패터슨을 배웅한다. 그러며 간밤에 본 꿈 이야기를 한다. 월요일에는 '쌍둥이를 아이로 가진 패터슨'을, 화요일에는 '페르시아의 은빛 코끼리를 탄 패터슨'을 보았다며.

꿈 이야기를 들으며 로라가 패터슨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패터슨의 꿈을, 혹시 욕망을 일깨워주는 환상의 여인? 그래, 어쩌면 환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몽상도 뒤따랐다. 그러고 보니 로라는 항상 '블랙 앤 화이트'다. 꿈속의 장면처럼. 옷들도, 커튼도, 심지어 온라인에서 주문한 할리퀸 기타까지···.

로라의 꿈, 혹은 꿈속의 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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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가 꿈에서 본 두 가지. '쌍둥이'와 '페르시아의 은색 코끼리'. 이 둘은 패터슨의 모습과 욕망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쌍둥이는 둘이면서 각자가 완벽한 한 명이다. 거울 저편의 나와, 현실의 내가 똑 닮은 외모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모습이랄까. 시를 쓰며 시인으로 살아가고픈 내적 욕망과 매일 버스를 운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현실적 모습을 쌍둥이의 모습으로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Water Falls···." 라고 노래하는 소녀 시인과 그녀의 쌍둥이 동생이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며 그런 이중성과 은유를 읽었다.

코끼리는, 은빛 코끼리를 타고 있는 패터슨의 모습처럼 시인으로서 빛나는 자리에 선 것을 보고 싶다는 로라의 욕망이 꿈으로 나타난 것일 것이다. 어쩌면 패터슨이 원하고 있지만, 표현 못 하는 욕망을 대신 꿈꾸고 이뤄지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장면들을 보며 로라가 패터슨의 페르소나로 다가왔다. 패터슨의 일상과는 상관없이 집안 곳곳을, 자신의 옷을 페인팅하고, 뒤늦게 음악의 길을 가겠다 선언하며 창의적 요리를 내놓기도 하고···. 모든 게 창작과 관련된 모습이다. 꿈속의 여인이든, 현실의 철없는 동거인이든 패터슨은 묵묵히 들어주며 격려해준다.

사실 로라는 패터슨이 좋아하는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의 시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영화에선 우연으로 치부하지만. 나는 그래서 로라가 꿈속의 여인이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아니면 로라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인지···.

엔딩 크레딧이 끝이 아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두 가지가 떠올랐다. 먼저, 시가 쓰고 싶어졌다. 이런저런 글들을 써보고 있지만 시는 어려운듯하다. 친구가 수필과 소설을 영화로, 시를 사진으로 비유했는데 와 닿는 표현이다. 3차원의 형상을 평면에 담지만, 입체감이 살아있는 사진이 좋은 작품이듯이 시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짧지만 많은 생각을 담은 단어들, 문장들···. 시집 몇 권을 주문했다.

그리고 골칫덩어리 불독 '마빈'이 맨 위에서 세 번째로 소개되었다. 맞다. 이 영화의 두 남녀주인공만큼 중요한 배역이었다. 더 놀라운 건 본명이 '넬리'란다. 암컷이었나. 귀여운 넘···.

영화 패터슨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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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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