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새노조가 1월 4일 영등포 CGV에서 영화 '강철비' 단체관람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양우석 감독과 영화배우 정우성, 곽도원이 GV에 참석, 파업중인 조합원들과 대화를 가졌다.

KBS 새노조가 1월 4일 영등포 CGV에서 영화 '강철비' 단체관람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양우석 감독과 영화배우 정우성, 곽도원이 GV에 참석, 파업중인 조합원들과 대화를 가졌다. ⓒ KBS 새노조


질문을 듣자, 정우성이 고개를 묻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객석의 KBS 구성원들은 "정우성!", "정우성!"을 연호했다. 옆에 앉은 동료 배우 곽도원은 "허허허" 너털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정우성도, 곽도원도, 관객들도 당황하게 만든 강승화 아나운서의 질문은 이랬다.

"(정우성씨가) KBS 사장님 하면 안 돼요?"

앞서 강 아나운서는 "노조원들이 이런 제안을 했는데, 가볍게 들으시면 됩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기어이 우스개 섞인 질문을 이어갔다. 당황하던 정우성은 "저는 영화배우라서, 영화작업에 충실히 임하겠다"며 "공영성을 살피고, 공영성을 지킬 수 있는 친근감이 있는 분이..."라며 말을 아꼈다. 평소 특유의 너스레로 유명한 정우성도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정우성은 KBS 구성원들에게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123일째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KBS 새노조가 '드디어' 정우성을 직접 만났다. 4일 KBS 새노조는 서울 영등포CGV에서 정우성 주연의 영화 <강철비> 단체관람 문화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엔 양우석 감독과 주연배우 정우성, 곽도원이 참석했다. 관심은 단연 작년 연말 이른바 'KBS 본진 폭파'로 화제를 모은 정우성의 입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날 새노조는 정우성과의 만남을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기까지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날 행사를 진행한 김빛이라 KBS 기자는 정우성의 '파업 109일째 KBS 새노조, 힘내세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조회 수 350만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KBS < 4시 뉴스집중>에 출연했던 정우성이 인터뷰 당시 했던 "KBS 정상화"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미 정상화 길에 들어선 MBC에 비해 비교적 관심을 덜 받고 있던 KBS 새노조의 총파업에 정우성의 영상 응원과 관련 발언들은 큰 힘이 됐다. 이날 발언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영화배우이기 전에 국민입니다"

  KBS 새노조가 1월 4일 영등포 CGV에서 영화 '강철비' 단체관람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양우석 감독과 영화배우 정우성, 곽도원이 GV에 참석, 파업중인 조합원들과 대화를 가졌다.

KBS 새노조가 1월 4일 영등포 CGV에서 영화 '강철비' 단체관람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양우석 감독과 영화배우 정우성, 곽도원이 GV에 참석, 파업중인 조합원들과 대화를 가졌다. ⓒ KBS 새노조


"자꾸 정의다, 라는 단어를... 씁쓸한 거죠. 저는 영화배우이기 전에 국민입니다. KBS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KBS에) 요청할 수 있는 발언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해야 합니다."

<강철비>의 동료 곽도원이 정우성을 "정의롭다"라고 평하자, 정우성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발언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 혹은 미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의 문제 제기였다.

비록 한국사회는 유명인과 소위 '셀럽'들의 소신과 표현을 색안경을 끼거나 진영 논리에 의해 재단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색깔'로 한정 짓기에, 정우성의 이날 발언은 보편적이라 할 수 있었다. 40대 중후반의 '어른'으로서, 기성세대이자 한 사람의 선배로서, 무엇보다 "검열" 받지 않은 권리를 지닌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저희보고 공인이라고 하는데 저희는 공인이 아닙니다. 나라의 녹을 받고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익명성이 없고,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발언할 때 조심해야지 이게 이때까지 한국의 분위기였어요. 우리가 민주주의를 꿈꾸고 있고, 광화문혁명을 지나왔잖아요. (하지만) 그게 혁명의 완성은 아니잖아요, 이제부터 시작이잖아요.

민주주의를 찾아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이제부터 시작돼야 하는데, 그런 어떤 정당한 행위들을 누군가는 스스럼없이 해 나가야 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구나' '누구나 우리 국민이면 할 수 있는 얘기고 행동이구나' 그걸 후배세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후배 세대를 위한 책임감

 4일 서울 영등포 CGV에서 KBS 새노조와 영화 <강철비> 단체관람 문화행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 중인 배우 정우성과 곽도원, 양우석 감독.

4일 서울 영등포 CGV에서 KBS 새노조와 영화 <강철비> 단체관람 문화행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 중인 배우 정우성과 곽도원, 양우석 감독. ⓒ KBS 새노조


"후배세대들"에게 "정당한 행위"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야 하고 또 그래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는 정우성. 작년 연말 UN 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강철비>의 주연 배우로서 SBS 생방송 인터뷰에 나섰던 그는 "우리 국민 모두 정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대수롭지 않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 심리적 기저에 바로 "후배 세대들", '미래 세대'를 위한 배려 혹은 책임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정우성이 4·19 혁명을, 6월 항쟁을, 광화문혁명을 차례로 언급하며 '학생'들의 행동을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4.19도 그렇고, 87년 6월 항쟁도 그렇고, 이번 광화문 촛불 혁명도 그렇고, 사실은 학생들에 의해서, 학생들의 희생에 의해서 도화선이 불이 당겨지고 전 국민이 일어나고…. 근데, 그런 혁명이 끝나면 새 세상이 올 거야 하고 다 마음을 놓는 것 같아요. 더 이상 그러면 안 되잖아요." 

작년 12월 JTBC <뉴스룸>에 출연했던 정우성에게 손석희 앵커는 "제가 많이 배운 것 같다"며 놀라움을 표한 바 있다. 손석희 사장 역시 그저 정우성을 '봉사'나 '홍보'에 힘을 보태는 '친선대사'라거나 사회적 발언에 거리낌 없는 배우나 연예인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만인의 시선 역시 대동소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정우성은 달랐다. <뉴스룸>을 비롯해 근래 들어 여러 인터뷰를 통해 미얀마 로힝야족 난민 문제는 물론 평화와 인권에 대해, 그리고 한국사회의 현안에 대해 자신의 논리와 지식을 친절하게, 세세하게, 때로는 감성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이날 KBS 구성원들 앞에서 "KBS 정상화" 발언의 뒷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그랬다.

별달리 발언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정우성은 KBS 신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보안요원들을 보면서 "이 분위기는 뭐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고 한다. 또 프리랜서 작가와의 대화를 위해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KBS 파업에 대한 무관심을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KBS) 사무실로 딱 들어갔는데, (사무실) 책상들이 막 뭐라고 저에게 얘기했어요…."

연기를 업으로 삼는 예술인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누군가는, 어떤 언론은 이런 정우성에게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에서만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폴리테이너(Politainer)'란 딱지를, 그 주홍글씨를 덧씌우려고 할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런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이미 정우성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라와 관련된, 우리 사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정치적 발언 아니냐'는 그런 프레임으로 자제시키려고 하는 게 사회적 분위기인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성이 근래 보여준 KBS와의 '연대'는 그래서 더 눈여겨볼 만하다. '국민으로서', '선배세대로서' 책임을 강조하고 그 배경을 쉽고 자세히 설명하는 그에게 '폴리테이너'와 같은 부당하고 편협한 낙인찍기를 용인할 대중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수라>와 <더킹>, <강철비>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선택 역시 한국사회와 단단한 접점을 맺는 작품들로 채워지는 중이다. '후배세대'를 위해 대한민국 '국민'임을 몸소 '인증' 중인 배우 정우성, 아니 대한민국 국민 정우성을 응원한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 SBS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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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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