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포스터.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영화 <1987> 포스터.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모두가 뜨거웠던 그해'. 영화 < 1987 >의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다. 이 영화는 그 해, '뜨거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뜨거웠던 사람들, 진실을 가리려는 권력에 대한 분노로 뜨거웠던 사람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뜨거웠던 사람들. 그렇게 그 해, '모두'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하나로 모였고 권력자는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무릎을 꿇었다'가 아니라 '한 발 물러났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들이 완벽히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 발만'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고 결국 재집권에 성공했다).

영화 < 1987 >은 그렇게 '모두'를 다룬다. 모두가 광장에서 함께 어우러져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무치도록 감동적이다.

'모두'가 승리했던 '그 해', 그리고 2017년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당연히 2017년의 촛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는가'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인물인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 분)과 87학번 신입생 연희(김태리 분)의 '동일한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달라진다'고. '1987년에도 그랬듯이 2017년에도 우리는 세상을 바꿨다'고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이 확실시 된 지난 2017년 5월 9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대선 결과를 '위대한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로 규정하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1987년은 '모두'의 승리, 그리고 2017년은 '국민'의 승리. 우리는 이 두 해를 이렇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저 '모두'에, 저 '국민'에, 정말 모든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잊혀지고 소외된 사람들은 없을까?

'모두'와 '국민'이 끌어안지 못한 사람들

 '보도지침이 대수야? 앞뒤 재지 말고 들이박아' 외치는 신문사 사회부장(고창석 분). 하지만 언론은 이후 '노동자 대투쟁'에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보도지침이 대수야? 앞뒤 재지 말고 들이박아' 외치는 신문사 사회부장(고창석 분). 하지만 언론은 이후 '노동자 대투쟁'에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 CJ엔터테인먼트


흔히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리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기록된다는 말이고 패배자들의 역사는 축소되거나 잊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1987년에 대한 우리의 기억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그 '모두'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노동자들'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 7월부터 9월까지 약 3개월 동안 또 다른 대규모 투쟁이 곳곳에서 전개됐다. 이는 바로 '노동자 대투쟁'이다. 6월 항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이 '노동자 대투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가 '전태일 열사여'를 외쳤지만, 그 승리한 '모두'에 노동자들은 들어가 있지 않았으니까. 당시에도 6월 항쟁의 주요 세력들(넥타이 부대, 언론매체 등)은 노동자 대투쟁에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2017년의 '국민의 승리'는 어떨까. 아직도 이 겨울에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아직도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처참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의 시험대가 되었던 인천공항공사에서, '손잡고 함께 가자'는 비정규직의 눈물에 대한 대답은 '무임승차가 웬 이냐'는 것이었다.

1987년의 '모두'에도, 2017년의 '국민'에도, '노동자'들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1987년과 2017년의 승리는 '미완의 승리', '반쪽짜리 승리'다.

진정한 '모두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위하여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극 중 연희(김태리 분)의 대사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극 중 연희(김태리 분)의 대사다. ⓒ CJ엔터테인먼트


1987년 서슬퍼런 군부 정권을 벌벌 떨게 했던 승리의 기쁨 그리고 2017년 비정상적인 정권을 깔끔하게 심판한 승리의 기쁨에 흠뻑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소외된 사람들, 아직도 '승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성숙함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속 이한열(강동원 분)은 "가족 걱정은 안 하는 거냐"는 연희의 말에 "마음이 아파서 데모를 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마음 아파하는 '인지상정'이 결국 세상을 바꿨다. 우리도, 아직 승리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고통에 함께 마음 아파해주자. 그들을 위해서도 촛불을 들어주자. 응원해주자. 그들도 승리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들까지 승리해야 비로소 '모두'의 승리이며, '국민'의 승리일 테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양흔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987 6월항쟁 노동자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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