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분명히 축구선수인데 정작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은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다. 해외파라는 화려한 수식어도, 일반인들이 꿈꾸지도 못할 많은 연봉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정작 뛰지 못하는 축구선수를 과연 선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창 전성기를 보내야 할 시기에 무기력한 허송세월(虛送歲月)은 길어지고만 있다.

2017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한국축구가 '뛰지 못하는 해외파들'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은 한국 축구와 국가대표팀의 중심으로 평가받는다. 손흥민(토트넘)-기성용(스완지)-구자철(아우스크부르크)-권창훈(디종) 등 충분히 제 몫을 해주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하고 있다.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지동원(아우스크부르크), 홍정호(장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때 각 위치에서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들이다. 정상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면 지금쯤 전성기에 돌입했어야 할 시기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하나같이 소속팀에서 입지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더 이상 이들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반등의 조짐이나 돌파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청용] 기회를 잡지 못하다

돌파하는 이청용 지난 10월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이청용이 돌파하고 있다.

▲ 돌파하는 이청용 지난 10월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이청용이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앞날이 불투명한 선수들도 있다. 지동원과 이청용이다. 두 선수 모두 팀에서 입지가 탄탄하지 못하다. 지동원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올 시즌 단 3경기에서 17분을 소화한 것이 전부다. 지난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해 3골 2도움을 올린 그이지만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 구자철이 팀의 중심선수로 발돋움하는 동안 그는 이제 다른 팀을 찾아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청용이다. 한때 재기 넘치는 플레이로 박지성(은퇴)과 나란히 한국축구의 측면을 책임졌던 촉망받는 테크니션이었지만 이제는 존재감이 없는 선수로 전락했다.

이청용은 2015년 팰리스로 이적한 이후 주전 경쟁에서 완전하게 밀려났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벌써 3년째다. 팰리스가 현 로이 호지슨 감독까지 사령탑 교체만 세 번이나 있었고 선수단 구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청용의 입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올 시즌도 컵 대회를 포함해 고작 총 5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나마도 가뭄에 콩 나듯 기회를 잡았을 때 딱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시즌 초반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통산 100번째 경기였던 번리전에선 치명적인 패스 미스로 경기 초반 선제골을 허용하며 팀 패배와 함께 당시 이미 위태위태하던 감독 경질에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이청용은 이후로는 더 이상 별다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동원] 계속되는 골 가뭄

볼 놓치는 지동원 지난 10월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지동원이 패스를 놓치고 있다.

▲ 볼 놓치는 지동원 지난 10월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지동원이 패스를 놓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동원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올 시즌 단 3경기에서 교체로만 17분을 소화한 것이 전부다. 지난 시즌에는 전 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활약했던 지동원이지만 올 시즌에는 부상에서 돌아온 공격수 알프레드 핀보가손(11골)과 미카엘 그레고리슈(9골)가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주전 경쟁에서 완벽하게 밀려났다. 내년 여름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계약이 종료되는 지동원으로서는 위기 상황이다.

지동원의 최대 약점은 골 결정력이다. 지난 시즌 공격수로는 유일하게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고도 고작 3골을 넣는 데 그쳤고, 마지막 득점은 작년 12월이다. 벌써 1년 넘게 무득점이다. 유럽 무대에 진출한 지 6년이 넘었지만, 지동원은 총 13골을 기록하며 공격수임에도 1년당 평균 2골 정도에 그치고 있다.

지난 시즌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본인의 실력이라기보다는 공격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한 어부지리에 가까웠다. 실제로 지동원은 부상자들이 복귀한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이미 출전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며 불안한 조짐을 드러낸 바 있다. 유럽 무대 진출 이후 기량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끊이지 않는다.

[홍정호] 잘못된 선택이었던 중국행

자선 축구 볼다툼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홍명보장학재단 자선축구경기 '쉐어 더 드림 풋볼 매치 2017'. 하나팀 고요한과 희망팀 홍정호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자선 축구 볼다툼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홍명보장학재단 자선축구경기 '쉐어 더 드림 풋볼 매치 2017'. 하나팀 고요한과 희망팀 홍정호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홍정호는 중국행을 선택했다가 커리어가 꼬인 케이스다. 한때 '제2의 홍명보'로 불리며 중앙수비수로는 드물게 유럽 무대까지 진출하는 등 촉망받는 수비수였다. 그러나 2016년 돌연 중국 장쑤 쑤닝으로의 이적을 단행했다. 직전 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주전급 수비수로 도약하며 미래가 기대되던 홍정호였기에 아쉬움은 컸다. 일각에서는 돈만 보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도 컸지만, 홍정호는 중국 무대 역시 새로운 도전이라며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홍정호의 선택은 이적 타이밍을 잘못 읽은 최악의 한 수가 됐다. 중국 축구가 외국인 선수들의 비중을 줄이기 위한 갑작스러운 제도변경을 단행하면서 상대적으로 몸값이 낮은 아시아 선수들. 특히 중국 무대에 대거 진출해있던 한국 선수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설상가상 최용수 감독마저 장쑤에서 경질당하면서 '보호막'까지 잃은 홍정호는 1년도 안 되어 졸지에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홍정호는 후보 선수로 전락했고, 최근에는 선수 등록 명단에서도 제외되며 방출 수순에 접어들었다. 대표 팀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거듭하며 최근에는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팬들은 소위 '중국화'로 기량이 정체된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로 홍정호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팬들이 불만스러워하는 부분은 과연 이들이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냐, 아니면 못하는 것이냐에 대한 의구심이다. 이들이 팀 내 입지를 잃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적이나 혹은 임대를 통해서라도 적극적인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높은 몸값 때문에 계약 해지나 이적 협상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선수에게 경기에 뛰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손해는 없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기량도 주가도 점점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박주호도 최근 독일 도르트문트를 떠나 K리그 울산에 입단하며 간신히 잊힌 선수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김진수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주전 경쟁에 밀리자 미련 없이 K리그로 눈길을 돌려서 전북에서 화려하고 부활하고 대표팀에도 재승선하는 등,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해외파들의 입지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 꼭 대표팀이나 내년 월드컵만을 위한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더 대표 팀에 이들의 빈 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책임감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축구를 통하여 지금의 스타급 선수 반열에 올랐고, 특히 대표팀에서의 활약(월드컵-올림픽 출전, 병역 혜택)을 통하여 많은 혜택을 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축구가 이들의 재능이 필요할 시점에 이들은 소속팀에서 '무늬만 선수'로 전락하여 하루하루 허송세월하고 있다. 이들이 지금껏 축구선수로서 누린 부와 영광은 혼자만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니다. 개인의 커리어는 물론이고 한국축구를 위한 책임감의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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