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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이 연재 글에서 나는 첫 문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얘기했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첫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번에는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세 가지 유형별로 살펴본다.

내가 여기서 제시하는 유형은 다만 참고사항일 뿐 글을 쓰면서 글의 내용이나 장르에 따라 스스로 적절한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함을 미리 밝혀둔다.

첫 문장 쓰기에는 특별한 형태가 있거나 어떤 규범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첫 문장은 글쓴이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그냥 쓰면 된다. 글을 많이 쓰는 이라면 자신만의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막 시작하는 이는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 있다. 또한 이왕 쓰는 것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도록 쓰면 좋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글을 쓰면서 어떤 형태가 좋은 것이었는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해보겠다.

첫째, 요약형으로 쓴다.

요약형은 첫 문장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쓰고자 하는 글의 요지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쓰는 것을 말한다. 자칫 '요약'이라는 말에 너무 방점을 찍고 접근하지 말길 바란다. 요약이란 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쓰고자 하는 글의 모든 내용을 첫 문장에 요약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 문장에 모든 것을 요약할 수도 없거니와 요약해서도 안 된다.

요약할 때엔 쓰게 될 글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요약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길거리 곳곳에서 자선냄비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연말연시 불우이웃을 돕자는 '사랑의 손길'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보자. 이 글은 사랑의 손길을 펴는 갖가지 미담과 지금 어느 정도의 모금이 이루어졌는지를 나타내는 '사랑의 온도탑'이 가리키는 온도 등을 여러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이다.

그렇다면 첫 문장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고액 기부자의 선행? 아니면 모금액이 예년에 비해 저조한 실적?

앞의 내용으로 첫 문장을 써보자.

"올해도 어김없이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났다!"

아님 뒤의 내용으로 써보자.

"오늘도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예년에 비해 크게 밑돌고 있다."

그런데 두 가지 내용을 모두 첫 문장에 담아보자.

"오늘도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예년에 비해 크게 밑돌고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났다!"

문장 상으로는 일단 무난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조한 모금 실적을 강조하려는 글의 의도는 '얼굴 없는 천사'의 등장과 모순을 일으킨다. 실적이 저조하므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선행을 기대한다는 취지의 글을 쓰려고 했는데, 자칫 '얼굴 없는 천사'의 극적인 등장을 쓰려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물론 본문을 써내려 가다보면 당연히 천사의 얘기도 하게 되겠지만 첫 문장에서 이 내용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게 되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불분명해진다.

둘째, 인용형으로 쓴다.

인용이란 말이 의미하듯 이 방식은 누군가의 말이나 속담, 격언 등을 빌려 쓰는 방식이다.
앞의 예시문을 활용하여 인용형으로 써보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이 문장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 때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첫 문장이다. 이 첫 문장만 읽어도 독자들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대번에 눈치 챌 것이다. '얼굴 없는 천사'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아니면 자선냄비의 종을 치고 있는 자원봉사자의 말을 인용해도 된다.

"오가는 사람들은 많은데 온정의 손길이 한겨울 찬바람만큼이나 꽁꽁 얼었어요."

이 첫 문장을 보면 모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쓰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질문형으로 시작한다.

글 잘 쓰는 요령을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팁 중의 하나로, 질문과 답을 적절히 활용하여 쓰라는 방법이 있다. 첫 문장 역시 이 방법이 효율적이다.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를 질문으로 먼저 던져놓고 그 답을 써내려 가는 방식이다. 역시 앞의 예시문으로 설명해보자.

"지금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는 몇 도일까?"

그럼 다음 얘기는 당연히 사랑의 온도탑의 현재 온도가 몇 도를 가리키는지 얘기하게 될 것이고, 모금이 저조하다, 경기기 안 좋다, 예년에 비해 온도가 낮다, 얼굴 없는 천사 등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이 첫 문장의 질문이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 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더 좋다. 그래 맞아, 도대체 지금 그 온도가 몇 도쯤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극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글도 읽게 된다.

이밖에도 첫 문장의 형태가 여럿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큰 틀에서 대부분이 앞에서 세 가지 범주에 든다고 생각하여 생략한다.

첫 문장의 역할은 일단 독자들이 첫 문장에 이어서 더 읽도록 해야 한다. 첫 문장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면 다음 글들은 아무리 열심히 썼다고 해도 독자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만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첫 문장을 보자.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어떤가. 실정된 지 일주일째라면 도대체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왜 그랬을까, 어떻게 될까 등 독자들로 하여금 강한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첫 문장이지만 그 다음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독자들의 감성을 한껏 자극해 결국 밀리언셀러가 되도록 한 힘은 바로 이 첫 문장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 인상이 좋아야 좋은 인간관계가 맺어지듯 첫 문장이 매력적이어야 그 글은 독자와 관계를 맺게 된다. 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듯 첫 문장을 잘 쓰면 글은 이미 반이나 쓴 거나 다름없다. 온힘을 다해 첫 문장을 써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태그:#글쓰기, #첫문장, #요약형, #인용형, #질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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