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 KGC 오세근이 득점에 성공 후 환호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 KGC 오세근이 득점에 성공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혹사(酷使), 말 그대로 '혹독하게 일을 시킨다'는 의미다. 자발적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혹사를 당하는 사람에겐 지시 내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지도자와 선수라는 상하 개념이 명확한 스포츠 세계에서 선수가 혹사를 당한다면, 십중팔구 그 책임은 감독의 몫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컨디션 관리를 중시하는 현대의 스포츠에서, 혹사는 가장 금기시되면서도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에서도 좀처럼 끊기지 않는 악습 중 하나다.

문제는 혹사의 기준이 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나마 야구는 한계 투구 수나 연투, 휴식일같은 개념을 통해 어느 정도 기준이 잡힌 반면 다른 종목은 기준 자체가 없다. 축구나 농구 같은 타임아웃제 스포츠의 경우에는 고작해야 선수가 얼마나 많은 경기, 출전 시간을 소화했느냐로 혹사의 잣대를 가늠하는 정도다.

프로농구 안양 KGC 인삼공사의 에이스이자 국가대표 빅맨인 오세근은 최근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다. 프로 7년 차인 오세근은 6일 현재 경기당 평균 19.33점, 리바운드 10.07개로 두 부문 모두 국내 선수 1위를 달리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용되고 있는 오세근은 최근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 2경기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한국이 뉴질랜드-중국을 상대로 1승 1패를 기록하는데 기여했다.

그런 오세근이 최근 주춤하고 있다. 오세근은 올 시즌 경기 당 평균 34분 54초를 소화해 국내 선수 중 독보적인 출전 시간을 자랑한다.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도 서울 삼성의 리카르도 라틀리프(37분 14초)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오세근은 A매치 2연전 기간중 뉴질랜드 원정을 다녀온 데 이어, 대표팀 소집 해제 후 다시 11월 30일부터 4일간 3경기를 치렀고 여기서도 평균 35분 22초를 출전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아무리 강철 체력이라도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시즌 평균 51.9%의 야투율을 기록하고 있는 오세근은 A매치 복귀 이후 치른 경기에서는 43.2%로 급감하며 부쩍 떨어진 위력을 보이고 있다. 최근 2경기만 놓고보면 3할대 이하까지 추락했다. KGC도 이 기간 1승 2패에 그치며 부진했다.

물론 시즌 중 국가대표 소집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는 선수는 오세근만이 아니다. 올해부터 농구월드컵 예선전 홈 앤드 어웨이로 바뀌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은 아직 시즌 중 장거리 원정에 따른 시차 적응과 체력적 부담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유독 오세근이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는, 다른 포지션에 비하여 몸싸움이 심하고 부상위험이 높은 빅맨의 특성도 있지만 오세근 개인의 부상전력 및 벤치의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 부호와 무관하지 않다.

세심한 출전 관리, 선수 생명의 지속과 연관된 문제다

오세근은 사실 아마추어 시절부터 혹사 논란에 시달려왔던 선수다. 중앙대 재학 시절부터 이미 성인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오세근은 이미 프로 데뷔 당시에 고질적으로 허리와 발목 등이 좋지 않았던 상태였다. 데뷔 첫해 특급 신인으로 안양의 2011-12시즌 우승을 이끌었지만 이듬해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등 무려 4년 가까이 부상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중앙대 시절 괴물같은 운동 능력을 자랑했던 오세근은 이제 만 30세에 접어들며 이제 힘보다는 노련미로 승부하는 선수로 변했다.

사실 혹사 논란은 국가대표 빅맨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김주성(원주 DB)-김종규(창원 LG)-서장훈(아는 형님)-현주엽(창원 LG 감독) 등 유명한 선수들은 모두 아마추어 시절부터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프로 무대에서도 매 시즌 많은 경기와 출전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팀성적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감독들은 이들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다는 이유로 출전을 강행했다. 선수들이 잔부상이나 체력적으로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결과론이지만 이들이 젊은 시절부터 좀더 세심한 관리를 받으면서 출전했다면 선수 생명을 더 오래 지속했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감독들도 할말은 있다. 팀 사정상 주축 선수가 오랜 시간을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느 팀이나 체력 조절은 순위싸움이 어느 정도 확정된 시즌 후반기에야 가능하다. 김승기 안양 KGC 감독은 "휴식을 주려고 해도 오히려 선수들이 더 뛸 수 있다고 요청할 만큼 책임감이 강하다"고 해명한다.

선수와 감독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선수로서는 당연히 많은 시간을 뛰고 싶어할 수 있다. 그러나 출전 시간 조절과 관리는 어디까지나 감독의 판단과 책임이다. 힘들어도 "오늘은 못 뛰겠으니 나를 빼달라"고 말하는 프로 선수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선수가 원하니까 계속 출전시킨다는 것은 감독의 책임을 전가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분명한 사실은 김승기 감독 부임 이후 오세근의 부담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세근은 지난 시즌 데뷔 이후 처음으로 54경기를 모두 소화하며 평균 32분 38초를 출전했고 13.98점, 8.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안양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에는 자신의 프로 데뷔 이후 최다 평균출장시간 기록을 또 다시 경신하고 있는 중이다.

전임 감독들은 오세근의 부상 전력을 우려해 출전 시간을 어느 정도 관리해주던 분위기였지만 김승기 감독은 정 반대의 기용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나마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쳐주던 김민욱마저 최근 KT로 트레이드 시켜 오세근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전임 감독들과 달리 '건강한 오세근'을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다는 것은 김승기 감독에게는 큰 축복이지만, 자칫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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