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못 넘은 허재 감독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 대표팀이 26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월드컵 아시아예선 A조 2차전에서 중국에 81-92, 11점차 패배를 떠안았다.

허 감독이 경기 도중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만리장성 못 넘은 허재 감독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 대표팀이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월드컵 아시아예선 A조 2차전에서 중국에 81-92, 11점차 패배를 떠안았다. 허 감독이 경기 도중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이 2019 중국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 홈 앤드 어웨이 첫 2연전을 1승 1패로 마감했다. 우려했던 뉴질랜드 원정을 승리로 장식하며 기분좋게 출발했지만 안방에서 중국 2군의 패기에 눌려 연승을 이어가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도 뉴질랜드나 중국 같은 강호들을 상대로 끝까지 치열한 경기를 펼친 것은,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에 대하여 희망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농구대표팀은 2016년 허재 감독이 전임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이전보다 안정적인 체계와 색깔을 갖췄다. '허재호'는 한국농구의 전통적인 강점인 3점슛에 빠른 패싱게임과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모션 오펜스, 장신 스윙맨을 앞선에 배치하는 3-2 드롭존  지역방어를 내세웠다. 이는 전통적인 신장이 낮은 한국농구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한 전술이기도 했지만, 높이보다 공간과 속도를 더 강조하는 최근 현대농구의 흐름에도 부합했다.

허재호의 경쟁력은 지난 8월 FIBA 아시아컵에서 필리핀, 일본, 뉴질랜드 등을 제치고 3위라는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증명됐다. FIBA에서도 한국농구대표팀의 경기운영을 극찬했고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NBA(미국 프로농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연상시킨다는 의미로 'KOR'든 스테이트'라는 별명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만큼 허재호의 조직적인 패싱게임과 3점슛이 인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한국이 이런 전술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으로 국제무대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구의 주 득점원인 이정현, 전준범, 오세근 등은 물론 훌륭한 선수들이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국제무대에서도 개인능력으로 혼자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다. 중국전처럼 오세근의 파울트러블, 김종규의 부상 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하고, 준비했던 전술이나 수비가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흐름을 반전시켜줄 수 있는 믿음직한 '해결사의 부재'는 한국농구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고유의 팀 스타일로 팬 사로잡던 '공격농구' 사라진 상황

한국농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랫동안 수비농구가 득세를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KBL의 득점력 강화 캠페인으로 인하여 리그 평균득점이 다소 상승하기는 했지만 이는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높아져서일 뿐,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KBL 10개구단을 보면 전반적인 팀 스타일이 거의 차별화된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2000년대 초반 조성원-에릭 이버츠 등을 앞세워 평균득점 100점의 신화를 이뤘던 창원 LG나, 2000년대 중반 주희정을 앞세운 '런앤건'으로 한 시대를 호령한 KT&G(현 안양 KGC 인삼공사)처럼 우승은 못했어도 고유의 독보적인 팀 스타일로 팬들을 사로잡던 '공격농구'는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공격의 대부분을 의존하다 보니 국내 선수들의 득점력은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현재 국내 선수중 평균 20점 이상을 득점하고 있는 선수는 오세근(20.6점, 전체 9위) 단 한 명 뿐이다. 득점랭킹 20위권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국내 선수는 단 4명. 국가대표 주전 슈터이자 지난 시즌 국내 선수 득점 1위였던 이정현도 13.3점에 불과하다. 물론 예전에 비하여 수비전술이 고도로 발전한 탓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20점 이상을 넣는 국내 선수들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국내 선수들을 위한 공격패턴 자체가 한정되어있다 보니 외국인 선수들없이 나서야 하는 국제대회에서 그나마 3점슛이 터지지 않으면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농구의 오랜 갈증 중 하나가 '제2의 허재'에 대한 아쉬움이다. 선수 시절의 허재 감독은 뛰어난 득점원이자 승부처에 강한 해결사였다. 슈팅은 물론이고 돌파와 포스트업, 어시스트 등 공격에 관한 모든 옵션을 갖춘 '토털패키지'로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무대에서도 항상 강했다. 순간적인 스피드와 돌파력만 놓고 보면 김선형이 전성기 허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있지만, 내외곽 공격력의 조화나 폭발력에서는 비교 대상이 될수 없다.

허재의 전성기가 살짝 지난 시점에 출범한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를 상대로도 20~30점을 넣을 정도였다. 차라리 서장훈이나 김주성 같은 선수는 다시 나올 수 있어도 허재 같은 선수는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국내 선수들의 창의성과 개인기술 끌어올릴 시스템 마련해야
경기 펼치는 이정현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 대표팀이 26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월드컵 아시아예선 A조 2차전에서 중국에 81-92, 11점차 패배를 떠안았다.

한국 이정현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 경기 펼치는 이정현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 대표팀이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월드컵 아시아예선 A조 2차전에서 중국에 81-92, 11점차 패배를 떠안았다. 한국 이정현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전에서 한국을 무너뜨린 딩안유향의 플레이는 현재 한국-중국농구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93년생으로 2미터의 장신 스윙맨인 딩안유향은 자국리그 CBA MVP 출신이자 미국 NBA 서머리그에도 진출했던 유망주다. 비록 미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로서 미국 무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경우인 데다 탈아시아급의 운동능력은 한국을 상대로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딩안유향도 중국에서는 아직 2진급에 가깝다. 이미 개최국으로 농구월드컵 출전권을 거머쥔 중국이 이젠롄-궈아이룬-저우치 등 베스트멤버들을 소집하지 않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라인업을 꾸렸기 때문이다. 최근 다소 침체되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중국농구의 진정한 잠재력은 이처럼 광대한 영토와 인재에서 나오는 끝없는 선수층이다.

한국은 물론 기본적으로 중국에 비하여 선수층이 얇을 수밖에 없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양하고 개성적인' 유형의 선수 자체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각 포지션을 봐도 슈터, 가드, 빅맨 등 포지션에 따라 비슷비슷하고 전형적인 스타일의 선수들은 많지만, 스트레치형 빅맨, 장신의 듀얼가드, 돌파력이 좋은 슬래셔 등 저마다 차별화된 고유의 스타일을 갖춘 선수는 찾기 힘들다.

허재호에서 2미터의 스윙맨 최준용이 볼운반과 지역수비에서 제한적인 가드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만으로 한국농구에서 큰 파격으로 받아들여졌을 정도다. 전성기 허재같은 여러 포지션에서 진정한 '올어라운드형'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현 시대에는 아예 전무하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농구에 제2의 허재가 오랫동안 출현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슈팅과 조직력이 좋아도 개인능력과 기본기의 차이를 넘어서는데는 한계가 있다. 말로만 공격농구를 외칠 것이 아니라, 국내 선수들의 창의성과 개인기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적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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