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현대 재즈-클래식 음악의 대표적인 레이블 ECM 로고

유럽 현대 재즈-클래식 음악의 대표적인 레이블 ECM 로고 ⓒ ECM


이번엔 ECM이다.

온라인에선 합법적으론 도저히 들을 수 없었던 비틀스도 몇해전 철옹성 같았던 장벽을 허문데 이어 ECM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지난 1969년 독일에서 창립된 이래 ECM은 고집스러울 만큼 상업적 타협 없이 오직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우직스런 재즈 및 현대 클래식 레이블이었다. 

칙 코리아, 키쓰 자렛, 팻 메쓰니, 존 애버크롬비, 얀 가바렉, 비제이 아이버 등 신구 세대를 아우르는 쟁쟁한 음악인들이 거쳐갔거나 지금도 음반을 이곳에서 발표하고 있다.

CEO이자 대표 프로듀서 맨프레드 아이허의 진두 지휘하에 제작된 일련의 작품들은 빼어난 음질, 수려한 음반 표지 (일관성 있는 풍경사진 또는 타이포그라피로 처리)를 자랑한 덕분에 마니아들의 환영을 받았고 ECM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완성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키쓰 자렛과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영화배우 잭 블랙의 장인어른) 합작 음반 < Last Dance > 표지.  ECM은 일관성 있는 타이포그라피 표지로도 유명하다

키쓰 자렛과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영화배우 잭 블랙의 장인어른) 합작 음반 < Last Dance > 표지. ECM은 일관성 있는 타이포그라피 표지로도 유명하다 ⓒ ECM


하지만 특유의 우직스러움은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디지털 시대를 맞아선 대중들에겐 하나의 장벽처럼 자리 잡았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당시 ECM의 해외 공급을 담당한 폴리그램의 라이센스 업체 성음레코드를 통해 간헐적으로 국내 제작(LP)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ECM은 일체의 라이센스 제작 계약을 거부하고 오직 유럽 현지 생산 음반만 해외 시장에 공급했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선 고가의 수입 음반으로만 ECM 음악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21세기 들어서 온라인 음원 서비스가 보편화되었지만 ECM은 이마저도 거부, ECM 음반들은 온라인 음원 서비스에선 이용할 수조차 없었다.  그나마 몇해전부터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행하긴 했지만 개별곡은 불가, 오직 앨범 전곡 다운로드만 가능했고 일반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예 불가능했다.

이렇다보니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될 열혈 마니아가 아니라면 합법 시장에선 ECM의 음악을 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2017년 11월 17일을 기해 장벽이 하나 사라졌다.

올들어 새롭게 ECM의 해외 공급을 담당한 세계 굴지의 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드디어 ECM의 음반들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이날 부터 이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키쓰 자렛의 'My Song', 팻 메쓰니의 'Are You Going With Me?'도 멜론, 벅스 등을 통해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론 시대의 변화를 결국 ECM도 어쩔 수 없이 수용하게 된 것이다. 비록 일부에겐 아쉬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ECM 음반들은 듣기 어렵다"라는 대중들의 편견을 지울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마련된 셈이다.

그동안 워낙 많은 걸작들을 배출했기 때문에 ECM의 음반들을 제한된 지면을 통해 정리하기란 쉽지 않지만 초보자들도 부담없이 들어볼 만한, 나름 대중성도 겸비한 작품들을 이 기회를 통해 간략히 소개해본다.

ECM이 발굴한 스타 음악인...팻 메쓰니 그룹 < American Garage >

 팻 메쓰니 그룹의 1979년 음반 American Garage 표지

팻 메쓰니 그룹의 1979년 음반 American Garage 표지 ⓒ ECM


설명이 필요없는 기타리스트 팻 메쓰니는 퓨젼 재즈의 대중화에 일조한 스타 음악인 중 한명이다. 1970년대~80년대 중반에 걸쳐 ECM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작품들 상당수가 걸작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Are You Going With Me?'가 수록된 1982년 음반 < Offlamp >는 이 시기 팻 메쓰니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1979년에 발매된 < American Garage >는 4인조라는 비교적 단촐한 구성 (기타 : 팻 , 키보드 : 라일 메이스, 베이스 : 마크 이건, 드럼 : 돈 고틀렙)으로 수려한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낸 숨은 걸작 중 하나다. 

기타 신시사이저를 활용하고 타악기 멤버들을 추가에 더욱 역동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던 1980년대 이후의 팻 메쓰니 그룹과 비교해선 < American Garage >는 상당히 차분한 소리를 들려주는 음반이기도 하다.

가장 팝 음악에 가까운 대중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Airstream',  라일 메이스의 오버하임 신시사이저가 팻의 기타 이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13분짜리 대곡 'The Epic' 등은 재즈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감상해볼 만한 곡들이다.

피아노 장인의 즉흥 라이브...키쓰 자렛 < The Carnegie Hall Concert >


 2005년 카네기 홀 공연 실황을 담은 키쓰 자렛의 < The Carneigi Hall Concert >.  명곡 `My Song`이 솔로 피아노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2005년 카네기 홀 공연 실황을 담은 키쓰 자렛의 < The Carneigi Hall Concert >. 명곡 `My Song`이 솔로 피아노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 ECM


국내에서도 친숙한 이름인 키쓰 자렛 역시 ECM을 대표하는 음악인 중 한명이다. 트리오, 솔로 연주 등 다양한 형식을 빌어 40여년 이상 ECM에서만 음반을 발표하는 그는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도 담아내기로 유명하다.

우리에겐 얀 가바렉의 수려한 색소폰 솔로 연주가 가미된 'My Song'이 유명하지만 이밖에 1975년 즉흥 연주로 채워진 공연 실황 < The Koln Concert  >(1975년) 역시 만만찮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피아노 재즈 솔로 음반으론 보기 드물게 전세계에서 35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한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이다.)

2005년 9월 미국의 대표적인 공연장인 카네기 홀에서 가진 즉흥 솔로 연주 실황 음반 < The Carnegi Hall Concert >는 2000년대 이후 발표된 그의 라이브 중에서도 가장 발군의 작품으로 언급할 만하다. 

2장의 다소 방대한 분량인데다 특유의 즉흥성이 가미된 총 10개의 즉흥곡이 음반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약간의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는 양면성도 지녔다.

특히 'My Song'의 솔로 피아노 버전을 담은 건 본작 최고의 미덕 중 하나다. 연주 하면서 스스로 음악에 심취해 내는 가까운 특유의 흥얼거림도 여기선 추가된 악기처럼 들려온다.

클래식 지휘자의 또 다른 면모...정명훈 < Myung Whun Chung, Piano >

 서울시향의 수장이자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의 피아노 독집 음반 < Myung Whun Chung, Piano > 표지

서울시향의 수장이자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의 피아노 독집 음반 < Myung Whun Chung, Piano > 표지 ⓒ ECM


최근 서울시향을 둘러싼 일련의 갈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명훈은 잘 알려진대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클래식 지휘자 중 한명이다. 그런 그가 이전엔 능력있는 '청년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을 우리는 살짝 잊고 있었다.

ECM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그의 아들 정선의 제안에서 시작된 2013년작 < Myung Whun Chung, Piano >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잊혀진 존재감을 다시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음반이다. 

여기선 슈베르트, 베토벤, 슈만, 차이코프스키 등 비교적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클래식 고전 소품 10곡을 차분한 감성의 연주로 녹여냈다.

정명훈이 젊은 시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한 '가을의 노래' , 쇼팽의 녹턴 c#단조, 슈베르트의 즉흥곡 G플랫 장조,  드뷔시의 '달빛' 등은 사진작가 안웅철이 찍은 표지 속 감성과 제법 잘 어울린다.

ECM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도 이 음반에선 피아노 선율 속이 깃털 처럼 가벼워진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CM 재즈 스트리밍 클래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