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대종상 영화제는 예전처럼 우스개와 조롱의 대상일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영화상의 위신을 세울 수 있을까? 오는 2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대종상 영화제를 앞두고 수상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마다 영화인들의 외면 속에 온갖 비난을 듣고 끝없는 추락을 거듭한 대종상이기에 더욱 주목받는 분위기다.

올해 대종상은 영화 <더 킹>(한재림 감독) <박열>(이준익 감독)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판도라>(박정우 감독) 등 5편을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로 내세웠다.

18개 부문의 후보(작) 중에는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11개 부문,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의 조선인 학살에 항거한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박열>이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54회 대종상에서 12개와 11개 부문 후보에 오른 <박열>과 <택시운전사>

54회 대종상에서 12개와 11개 부문 후보에 오른 <박열>과 <택시운전사> ⓒ 메가박스(주)플러스엠/쇼박스


원로 영화인들 빠지고 현장 영화인들 참여

대종상의 올해 특징은 심사위원 구성에서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영화인들에게 전권을 넘겨줬다는 점이다. 그간 대종상은 원로영화인들이 주축이 된 영화인총연합회가 주관해 왔으나 해마다 계속되는 안팎의 비난과 심사과정의 공정성 논란에 본심 심사위원 구성을 젊은 영화인들에게 일임했다.

예심에서는 기존 구성대로 영화인총연합회 소속 단체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본심은 국내 유명 평론가와 감독들이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예심 심사도 심사위원장은 배장수 전 영화평론가협회장이 맡아서 주관했다. 배 평론가는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의견을 잘 정리해서 본심에 오를 작품들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대종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한 원로 영화인은 "그간 하도 말이 많으니 올해는 모든 권한을 넘겨준 것"이라며 "결과를 보고 나서 이후에 대해 생각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진보와 보수로 갈리는 젊은 영화인들과 원로 영화인들이 함께 대종상을 주관한 적이 있었으나 양측의 이해가 갈리고 심사과정에서 논란이 생겨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인들은 대종상과 거리를 둬 왔다.

본심 심사위원에는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교수) 김형준(한맥문화 대표) 김홍준(영화감독, 영상원 교수)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 오동진(영화평론가, 마리끌레르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성일(영화평론가) 정수완(영화평론가, 동국대 교수) 윤성은(영화평론가) 강성률(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등 9인이 선정됐다.

심사의 전권을 넘겨받은 영화인들은 작품성 위주로 상을 수여해 심사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작품 채점표도 수상작 발표와 동시에 공개할 예정이다. 평론가들이 전체 3분의 2를 넘게 차지해 기존의 흥행성이나 대중성 보다는 영화적 완성도와 작품성을 높게 따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사과정도 대종상 조직위원회 사무국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 모여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원 선정 일임

ⓒ 대종상영화제


영화인들이 실질적인 심사 권한을 넘겨받았지만 양측의 조정은 쉽지 않았다. 대종상을 5년간 위임받은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김구회 위원장)는 지난 5월 영화계 한 관계자와 먼저 접촉해 개인적인 참여를 요청했으나 "심사 전권을 넘기지 않는 한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진전되지 못했다.

대종상 측은 이후 일부 영화제작자와 평론가들에게 협조를 구했으나 이들 역시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사양해 벽에 부딪혔다. 결국 심사 전권 이양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그동안 대종상을 외면했던 영화인들이 나서기로 했다. 영화인총연합회 소속 영화인들은 반발했지만 땅에 떨어져 추락하는 대종상을 살릴 방법은 현장 영화인들의 참여밖에 없다는 판단 하에 심사에 대한 전권을 넘겨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한 심사위원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작품을 선정해 심사에 대한 잡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심사위원 구성에서도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취지를 이해한 영화인들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출품작에 응한 영화들이 많지 않은 데다 시기적으로 한 달 이상 빨리 열리면서 한 해를 정리하는 영화상으로서의 의미는 약해진 상태다. 올해 흥행해 주목받은 한 영화의 경우 "출품 요청이 왔으나 대종상이라 거부했다"고 제작 관계자는 말했다.

이에 대해 대종상 조직위원회 측은 행사를 치를만한 장소들이 모두 예약이 돼 마땅한 시간과 장소를 맞추는 게 어려웠다며 내년에는 예전처럼 11월 중에 열 생각이고 출품신청을 받지 않고 모든 영화를 대상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종상 영화제는 공영방송의 파업에 따라 TV조선을 통해 생중계된다.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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