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의 영화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부산국제영화제를 10월 12일부터 13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교통비가 더 나오겠다는 쓴소리는 접어두시길. 이미 엄마와 친구들에게 충분히 들어 귀가 따가울 정도니까. 어쨌든 짧은 일정 상 GV 상영인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의 <이름 없는 새> 한 편 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선 부산영화제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관람한 영화 <이름 없는 새>에 관한 짧은 감상을 적으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방문하여, 큰 기대와 설렘을 지닌 탓에 실망도 매우 커 앞으로 다시 방문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이후에 다시 한 번 부산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 때는 GV 상영에 구애 받지 않고, 좋은 영화를 골라 관람할 생각이며, 위의 방법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할 것을 독자들에게도 간곡히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제 방문은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이후 이번이 세 번째인데, 이전 두 영화제에서 음악으로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러덜리스>, 페이크 다큐, 진정한 예술과 예술의 진정성에 관해 철학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위아영>, 그리고 불안정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심리와 알력다툼을 매끄럽게 그려낸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를 감명깊게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두 영화제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유명한 부산국제영화제, 더군다나 영화 <동경가족> 이후 푹 빠진 아오이 유우의 새로운 신작을 개봉 전 영화제에서 그녀와 함께 본다는 사실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나의 기대를 한껏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듯 부산영화제는 내게 마치 꼭 맞는 수학 공식처럼 완벽하게 앞 명제를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영화 <이름 없는 새>의 한 장면

영화 <이름 없는 새>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오전 10시 영화를 관람하기로 했던 나는 이보다 30분 앞선, 9시 30분에 영화관에 도착했다. 미리 준비해야하는 성격 덕에 2주 전에 이미 온라인 예매를 성공, 영화 상영 당일 날은 극장에 들아가서 준비해 온 오페라 글라스의 배율을 어떻게 맞출 지 고민하기만 하면 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들려오는 어이없는 직원의 한 마디.

"손님, 줄 서셔야 합니다."
"어, 저 예매했는데요. 이 줄은 현장 발권을 위한 줄 아닌가요?"
"예매발권하시는 분들도 모두 한 줄로 서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 시작은 이제 20분도 채 안남은 상황.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족히 40명. 큰일났다. 중간에 새치기라도 해볼까 두리번 거리니, 드센 사투리를 장착하신 부산 분들의 매서운 눈길들이 가득해, 바로 야비한 생각이었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이제 10분 있으면 영화 시작하는데. 전전긍긍하며 앞을 내다보니, 내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20명은 넘게 남았다. 이대로 가다간 안되겠다 싶어 지나가던 스태프를 불러 다시 한 번 내가 맞는 줄에 서있는지 물어봤다.

"아, 저기요. 제가 이미 예매를 했는데, 왜 현장에서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후에 관람할 영화를 고르는 관객들과 같은 줄을 서야하는 거죠?"
"그게 저희가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건 당최 무슨 말인지.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 묵묵히 알겠다는 신호를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해당 직원을 불러세워 물었다.

"음,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5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이 곳 부산으로 왔습니다. 이미 2주 전에, 수강신청하듯 정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터넷 예매에 성공했구요. 심지어 오늘도 영화 시작 30분 전에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영화제도 이렇게 관객이 힘겹게 영화 관람하게 하지 않습니다. 영화제는 자고로 관객들이 다양하고 색다르며, 작품성 있는 영화를 보다 쉽게 관람할 수 있게 만드는 축제의 장입니다. 일반 영화 관람도 티켓팅 부스가 두 곳에서 세 곳인데, 주최 측에서 주장하는 대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라면 그에 걸맞게 티켓팅 및 예매 매뉴얼이 존재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곧 영화 시작합니다. 지금 줄 서있는 관객 모두가 영화관에 입장하기 전까지 영화 상영을 늦출 생각이 아니시라면, 당장 표 끊어주세요."

순간, 너무 나갔나, 어차피 봉사활동하러 온 이 분도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인데, 무슨 잘못을 하셨다고. 하지만 이내, 앞 뒤에서 들려오는 동의한다는 목소리와 불만섞인 목소리에 주최 측은 두 곳의 발권 창구를 급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늦어버린 미봉책에 영화 상영은 결국 무려 십 분 가까이 지연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급하게 자리 잡은 극장에서 주최 측도 아닌 남자 주연 배우로부터 아오이 유우가 전 날 레드카펫 행사 이후 집으로 가는 바람에 GV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일본어로 전해들었고, 그렇게 나의 부산 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베스트 셀러 원작을 다룬 영화들이 흔히 범하는 아주 정형화되고 고질적인 실수들을 모두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만 초점을 둔,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포르노그래피에 가까워 보였다. 영화와 소설의 아무런 장르적 이해와 고려 없이 소설을 그대로 시청각화 하는 데에만 집중했던 나머지, 영화 스스로도 본인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 헷갈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오이 유우가 맡은 토와코와 아베 사다오가 맡은 진지의 연기가 이 영화를 그나마 영화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요소였다. 사족으로 보이는 후반부 20분은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정도여서, 결국 영화 전체를 로맨스물도 아니고 스릴러물도 아닌, 영화 제목처럼 이름도 없고 규정지을 특징도 없는, 어떠한 의미도 담아내지 못한 영상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야한 장면들과 대사들로 가득한 영화가 호평받는 수작이 되느냐 아니면 그저그런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쾌락을 충족시키는 오락영화가 되느냐는 보통 그 일련의 행위들과 대사들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메시지를 담아낼 것인가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배우들의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를 모았던 스티브 맥퀸 감독의 <셰임>은 이러한 점에서 야한 노출신과 대사들을 어떤 관점으로 감독이 일관성 있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단순한 노출과 배드신의 열거로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평가를 받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와 아오이 유우의 신작 <이름 없는 새>가 비슷하다면 과한 걸까.

아주 노골적으로 포르노그래피를 표방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와 달리 사랑이야기와 정통스릴러의 장르적 성격을 표방하는 <이름 없는 새> 사이에서 어쩌면 좀 더 솔직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가 훨씬 더 나은 영화라고 한다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궁금하신 분은 영화를 관람해보시길. 참고로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내 의견에 동의했음을 밝혀둔다.

아오이 유우 부산국제영화제 이름 없는 새 토와코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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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세무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신입생 첫 수업 과제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고 감명 받은 바람에,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다른 동기생들과 다르게 프랑스로 떠나, 바게뜨와 크로와상만 주구장창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안인 점은 프랑스 빵이 정말 맛있다는 점과 토마 피케티를 매일 본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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