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4-2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7.10.8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4-2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7.10.8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초라한 수비력을 드러내며 참패했다. 평가전이었고 최상의 전력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4실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나마 이 경기가 월드컵 본선이 아니었다는게 다행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만일 본선에서도 이런 수비력이라면 월드컵은 나가보나 마나라는 사실이다.

특히 비판의 초점은 이날 경기에서만 2연속 자책골이라는 황당한 기록을 남긴 수비수 김주영과 신태용 감독에게 쏠리고 있다. 분명히 자책골 장면 자체만 놓고보면 운이 따르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운만 핑계로 대기에는 이날 대표팀의 경기력 자체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굳이 자책골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날 더 많은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게 차라리 다행일만큼 한국 대표팀의 수비는 선수의 개인 경쟁력-팀워크-전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1차적인 문제는 역시 선수 선발 실패에서부터 비롯됐다. K리그 일정을 배려하여 이번 유럽원정에서는 오직 해외파 선수로만 대표팀을 구성하다보니 애초에 선수 자원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실력과 컨디션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로 인하여 그나마 선발된 선수들도 제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어야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정상적이라면 국내보다 더 높은 몸값을 받으며 해외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의 기량이 더 높아야겠지만 현실은 그렇지못하다는 게 현재 한국축구의 '해외파 딜레마'다. 수비라인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냉정히 말해 이들의 경쟁력이 K리거들에 비하여 더 높다고 보기도 어려울 뿐더러, 해외로 나간 이후 기량이 더 성장했다고 볼만한 선수들도 찾기 어렵다.

특히 이번 러시아전에서 집중적인 비난의 타깃으로 된 김주영이나 김영권, 권경원 같은 선수들의 경우, 하필 모두 중국무대에서 뛰고있는 선수들이다. 최근 중국리그에서 한국 선수들의 입지가 줄어들며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해외 리그로 다시 이적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들은 대표팀에서 이미 최종예선 때부터 주전 자격을 놓고 끊임없이 도마에 오른바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경쟁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던 선수들이 과연 월드컵 본선에서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신태용호 출범 이후 첫 비아시아권팀이자, 유럽에서는 그다지 강호라고 할 수도 없는 러시아를 상대로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중국화 괴담'에 대한 확신만 더 굳힌 꼴이 되고 말았다.

단순히 실점을 허용하거나 경기에 졌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진짜 문제는 프로로서 '기본'을 지키지않은 부분이야말로 질타를 받아야할 대목이다. 김주영의 연속 자책골이 임팩트가 워낙 커서 묻혀진 감이 있지만, 수비수들은 이날 기본적인 협력플레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세트피스에서만 먼저 두골을 허용할 동안 한국 수비수들은 대인마크가 전혀 되지않아 러시아 선수들이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열어줬다. 미라추크에게 내준 네 번째 골장면에서는 공이 아직 인플레이 상황인데도 수비수들이 먼저 포기하고 뒤늦게 설렁설렁 뛰어오다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제 2의 슈팅을 내주는 등 집중력을 완전히 망각한 플레이가 나오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의 역량에 대한 불안감도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 감독은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지도자로 알려졌지만 성남 사령탑이나 연령대별 대표팀 시절부터 수비 조직력 구축에는 항상 의문부호가 붙었던 감독이다. A대표팀 데뷔전이었던 최종예선 이란전과 우즈벡전에서는 평소의 철학과 달리 실리를 추구하며 수비 위주의 전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무실점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용은 그리 좋지않았다.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첫 시험무대였던 러시아전에서 신 감독의 수비 전술은 또다시 우려의 물음표만 남겼다. 신 감독은 전문 수비수 자원이 부족했던 이번 러시아전에서는 변형 스리백을 실험했다. 센터백 김영권이나 공격형 미드필더 이청용이 윙백이라는 낯선 포지션에서 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하지않은 옷을 입은 듯 선수들의 움직임은 시종일관 부자연스러웠고 수비는 끝까지 안정감과 거리가 멀었다. 첫 평가전에서 완벽한 조직력을 기대하기는 무리임을 감안해도, 한국대표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수 있는 기본적인 전방압박과 협력수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세트피스에서의 약속된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은 완성도를 떠나 아예 처음부터 '수비 마인드'에 대한 숙지 자체가 부족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은 여전히 월드컵 본선같은 큰 무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팀에 불과하다.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세계적인 골잡이도 없는 한국이 월드컵에서 강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수비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파상공세를 끈질기게 버텨내고 확실한 한 방을 노리는 '지지않는 축구'가 가능해야 한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2002년도 공격보다는 수비의 힘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의 한국은 화려한 슈퍼스타는 없어도 선수 전원이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워 무한 압박과 체력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축구를 펼쳤다. 15년전이나 지금이나 수비가 되지않는 한국대표팀은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경쟁력이 없다.

그렇다면 신태용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은 제대로 된 것일까. 신태용호는 3경기에서 단 2골에 그쳤다. 그나마 0-4로 끌려가던 러시아전에서 승부가 기울며 상대 수비가 느슨해진 막판에 넣은 골이라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신 감독은 공격 부문에서는 유럽파 선수들의 개인능력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데, 한국축구에서 현재 가장 뛰어난 골잡이라는 손흥민은 A매치에서는 벌써 1년째 침묵하고 있으며, 러시아전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이청용이나 지동원은 정작 소속팀에서는 출전 기회도 제대로 잡지못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번 대표팀에 합류하지않은 공격수 자원이라고 해봐야 황희찬이나 김신욱 정도지만 이들이 러시아전에서 출전한 선수들보다 크게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좋은 전술도 선수들의 개인능력과 컨디션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현재의 한국 대표팀 선수층으로 세계 무대에서 공격위주의 축구를 펼치겠다는 발상이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감독의 어떤 아름다운 축구철학도 그라운드에서 구현하는 것은 결국 선수들이다. 특히 대표팀이라면 감독이 원하는 축구에 선수들을 끼워맞추기보다는 선수들을 가장 잘살릴 수 있는 축구를 찾아내는 것이 대표팀 감독의 역할이기도 하다.

아직 모로코전이 남아있지만 신태용호는 이번 유럽원정 이후 월드컵 프로젝트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불가피해보인다. 기존의 해외파 우대와 이름값 위주의 선수 선발에서 벗어나 각 포지션에 대한 내부 경쟁 체제를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 또한 신 감독과 현 코칭스태프에게 부족한 수비 전술과 조직력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코치진을 보강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러시아전은 지난 최종예선에 이어 신태용호에게 보내는 두 번째 위기 경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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