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가 출범한 2005년 V리그 원년, 여자부에서는 선두 경쟁보다 흥미로운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꼴찌 다툼이 있었다. 바로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한일전산여고(현 수원전산여고)의 김연경을 얻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 치열한 꼴찌 다툼의 승자(?)는 흥국생명이었고 그렇게 얻은 김연경은 흥국생명에게 4년 동안 3번의 우승컵을 안겨 줬다.

하지만 김연경은 2009년 챔프전에서 흥국생명을 세 번째 우승으로 이끈 후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떠났고 흥국생명은 심각한 흑역사에 빠졌다. 김연경이 떠난 첫 시즌 곧바로 4위로 추락한 흥국생명은 이후 5번의 시즌에서 한 번 밖에 봄배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3-2014 시즌에는 최하위 추락이라는 수모를 겪기도 했고 그 사이 무려 4명의 감독이 팀을 거쳐 갔다.

우울하던 흥국생명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2015년 '여우' 박미희 감독이 부임한 후부터. 박미희 감독은 나락으로 빠진 팀을 밑바닥부터 재건하는 작업을 했고 '슈퍼루키' 이재영과 FA센터 김수지를 중심으로 2015-2016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부임 후 해마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해 왔던 박미희 감독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챔프전 우승이다.

박미희표 배구로 '김연경 시대' 이후 10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 

 누가 뭐래도 이재영은 2016-2017 시즌 여자부 최고의 선수였다.

누가 뭐래도 이재영은 2016-2017 시즌 여자부 최고의 선수였다. ⓒ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은 2015-2016 시즌 5년 만에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했다. 프로 2년 차 이재영이 V리그를 대표하는 윙스파이커로 자리 잡았고 박미희 감독이 전략적으로 키운 조송화 세터의 기량도 무르익기 시작했다. 센터콤비 김수지(기업은행)와 김나희의 이동공격은 단연 리그 최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박미희 감독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하지 않고 팀을 우승전력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97cm의 최장신 거포 타비 러브를 지명했고 오른쪽 공격수 자리엔 수비와 서브리시브가 좋은 신연경을 배치해 공수 균형을 맞췄다. 박미희 감독은 토종 에이스 이재영에게 서브 리시브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2016-2017시즌을 앞두고 철저하게 준비를 끝낸 흥국생명의 노력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이재영은 득점 6위(479점, 토종 1위)와 서브리시브 1위(세트당 3.86개)에 오르며 최고의 공수겸장 레프트로 떠올랐고 외국인 선수 러브도 어려운 공격들을 책임지며 득점 3위(758점)에 올랐다. 김혜선(기업은행)과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한 한지현 리베로는 수비(디그+리시브)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세트당 8.1개)를 차지했다.

흥국생명은 20승10패로 승점 59점을 따내며 '김연경 시대'였던 2006-2007 시즌 이후 10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김수지와 김나희 정도를 제외하면 주력 선수 대부분이 큰 경기 경험이 부족했던 흥국생명은 챔프전에서 기업은행에게 1승3패로 패하며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러브와 이재영이 192득점을 합작하며 분전했지만 챔프전 4경기에서 홀로 139득점을 쓸어 담은 매디슨 리쉘의 활약 앞에 빛이 바랬다.

비록 8년 만의 챔프전 우승은 놓쳤지만 시즌이 끝난 후에 열린 V리그 시상식은 '흥국생명을 위한 잔치'였다. 에이스 이재영이 정규리그 MVP에 올랐고 이재영을 비롯해 조송화, 김수지, 한지현 등 무려 4명의 선수가 BEST7에 선정됐다. 김연경이 떠난 이후 오랜 암흑기를 씻고 박미희 감독과 이재영을 중심으로 다시 전성기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해준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분홍거미들은 든든한 맏언니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은 이번 시즌부터 흥국생명의 수비를 책임진다.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은 이번 시즌부터 흥국생명의 수비를 책임진다. ⓒ 한국배구연맹


종목을 막론하고 전 시즌 성적이 좋았던 팀들은 오프 시즌에 전력 보강만큼 기존의 전력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센터 김수지와 조송화 세터, 그리고 정시영이 나란히 FA자격을 얻은 흥국생명은 조송화와 정시영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코트 안팎에서 팀의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했던 김수지가 '하필이면' 지난 시즌 챔프전 상대팀 기업은행으로 이적해 버렸다. 흥국생명으로서는 팀의 리더이자 구심점을 라이벌 팀에게 빼앗긴 셈이다.

김수지를 잃은 흥국생명은 FA시장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을 영입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작년 리우 올림픽에서 모두 대표팀의 주전 리베로로 활약했던 김해란은 존재만으로 팀 수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V리그 최고의 리베로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김수지의 보상 선수로 남지연 리베로를 지명하면서 리베로 포화상태가 됐고 김혜선을 방출하며 리베로 라인을 정리했다.

흥국생명은 새 시즌에도 V리그 최고의 공격수 이재영과 1년 만에 흥국생명으로 돌아온 외국인 선수 테일러 심슨(등록명 심슨)으로 이어지는 쌍포가 건재하다. 대표팀 동료이자 오랜 기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김해란과 남지연 리베로가 모였고 지난 시즌 수비왕 한지현까지 버틴 리베로 자리도 전혀 걱정이 없다.

문제는 역시 김수지가 빠진 센터 한 자리다. 주장 김나희의 경우 속공이나 이동공격에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센터치고는 신장(180cm)이 크지 않아 블로킹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부터 라이트 요원 정시영이 센터로 변신할 예정이다. 정시영은 지난 천안·넵스컵에서 블로킹 부문 5위(세트당 0.71개)에 오르며 미들 브로커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지만 아직 센터로서의 경험은 턱없이 부족하다.

가뜩이나 높이에 큰 장점이 없던 흥국생명에서 리그 최고의 유효블로킹(우리 팀의 수비로 연결되는 블로킹) 능력을 가진 김수지가 빠졌다. 겉으로 보이는 전력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시즌보다 약해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박미희 감독은 지난 세 시즌 동안 높이보다는 조직력과 기본기를 강조해 흥국생명을 발전시켜 왔다. 부임 후 처음으로 전력 하락을 겪게 된 박미희 감독은 흥국생명의 성적을 다시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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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여자부 프리뷰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박미희 감독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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