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차 투쟁'은 한국 사회 안에서 굉장히 큰 기억으로 남아있다. 치열하게 싸우고 끔찍한 진압이 있었고. '저렇게 77일을 싸운 거야? 저 지독한 것들, 집단으로 제식 훈련이라도 받은 거 아니야?' 이렇게 보지 않나.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현장에서 본 사람들은 그냥 '일하는' '때로는 가족에게 무심한' 여느 아빠들이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운, 그런 아버지들이 해고된다고 하니 가족들이 함께 싸우기 시작했던 거다. 비록 현장에서 투쟁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도 아버지고 가족 구성원이고. 영화 <안녕 히어로>를 통해 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특별한 기억, 하지만 보편적인 경험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이 13일 오전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이 13일 오전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쌍차 해고 노동자인 아빠 김정운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아들 현우. 동시에 "아빠의 직업이 뭐지? 해고자? 사회 활동가?"라며 생활기록부 '아빠 직업란'에 적을 항목을 보며 고민에 빠지는 현우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 <안녕 히어로>가 지난 7일 개봉했다.

쌍차 송전탑 농성으로부터 1년 뒤,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은 현우를 만난다. 한 감독은 현우가 13살 때부터 그후 2016년 여름까지 3년 동안 현우네 가족을 카메라에 담으며 쌍차 해고 노동자를 아빠로 둔 현우의 삶을 포착한다. 너무나 '특별한' 아빠를 둔 현우지만, 한 감독은 현우가 "여느 청소년과 다를 바 없는 친구"라고 말한다.

"<안녕 히어로>는 해고자 가족의 고통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는 영화지만, 나는 현우가 한국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청소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해고자 가족으로서 겪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여느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지점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얻길 바랐다.

관객 분들이 현우를 아프게만 보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10대가 있는 가족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청소년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 분명하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사건이든 소화해낼 것이다."

<안녕 히어로>를 보러 온 관객들은 한영희 감독의 바람에 응답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영희 감독이 만난 관객들은 자신들의 유년 시절의 경험에 대해 털어놓았다.

 영화 <안녕, 히어로>의 스틸 이미지.

영화 <안녕, 히어로>의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쌍차 해고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자기 어릴 때의 기억을 많이들 떠올리시더라. 관객 분들 중에서 '예전에 사업이 부도나고 어려운 시기를 겪어 아빠에게 미움이 있었다'며 현우에게 공감해주는 분, 어릴 때 혼자 집에 외롭게 남겨진 경험이 있으신 분들, 학교 괴롭힘을 경험한 분들이나 아빠가 노조 활동을 하셨던 분들도 계셨다.

또 영화에서 보면 김정운씨가 술을 드시고 집에 치킨을 사오지 않나. '나 어릴 때는 아빠가 전기통닭구이 사오셨다는 분도 계시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다 보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나누게 되는 것 같아 좋다."

하지만 여전히 '쌍차'는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투쟁이기도 하다. 한영희 감독은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다시 마주하게 된 '쌍차'에 대한 비난 여론에 "지금 한국 사회 구조 안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많이 서운하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회는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집단주의적 사고관'을 갖게 하고 '회사가 어려우면 너네는 다 죽게 돼있다'고 가르친다. 댓글을 유심히 보다 보면 기업의 논리를 그대로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기업이나 정부 등 권위 체계에 반(反)하는 누군가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현우네 가족을 만나다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이 13일 오전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왜 많은 해고자 가족의 아이들 중에 현우였을까? 한영희 감독의 눈에는 해고자인 김정운씨가 먼저 들어왔다. 가족 이야기를 유독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 감독은 김씨를 기억한다.

"김정운씨는 특히 투쟁 현장에서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어제 우리 아들이 축구 시합을 가서 우승했어' '네 골이나 넣었대' 같은 자랑들? (웃음) 해고당하기 전에는 매 경기마다 가서 응원도 했다고 하더라. 해고된 다음에도 시간이 날 때면 가서 코치도 해주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김정운씨의 집에 찾아가 만난 현우라는 아이의 점잖음과 어른스러움이 한영희 감독의 눈에 띄었다. "현우의 마음이 궁금했다. '어린 녀석이 어떻게 저렇게 신중하지?'라면서 현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3년을 한영희 감독은 현우의 일상을 담기도 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보냈다. 현우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그렇듯 놀랍게 성장했다. 교복이 작아질 정도로 키도 컸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쑥 컸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생각도 세계관도 넓어졌다. 나는 40대이고 지금은 어린 시절을 거의 다 잊어버렸다. 현우를 보면서 '나도 그랬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웃음) 처음 현우를 만났을 때 현우가 아빠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더라. '아빠가 회사에 반대를 해서 회사에서 잘렸다'고. 내가 '네가 생각하는 반대가 뭐야?'라고 물으니 '반대'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 2년 뒤에 '파업'에 대해 비로소 이야기를 하더라. 현우가 점점 아빠에 대한 이해나 세계관이 넓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사실 김정운씨가 복직되는 과정에서 현우가 '아빠가 다시 복직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파업이 뭔지도 몰랐던 어린 친구가 이 상황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알고 있더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를 나눌 때 현우의 시각이 아직 복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향하더라. '(복직한 아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은 (복직하지 못한) 그 사람들이야'라고. 그렇게 시선이 확장된다는 게 연대가 아닐까. 나의 상황과 연결지어 아직 복직하지 못한 사람들도 복직되길 바라고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서 기쁘다'는 게 아니라 다른 쪽을 바라본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동시에 한영희 감독은 긴 시간 동안의 촬영이 현우에게 좋지 않은 영향으로 다가올까봐 고민이 됐다고 했다.

"다큐멘터리는 누군가의 인생을 담는 것이고 게다가 <안녕 히어로>는 청소년인 현우의 어느 순간을 담는 것인데 그 무게감이 컸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가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영화를 마칠 때쯤 어느 정도 답을 내렸던 것 같다. 내가 10대를 만나든 60대를 만나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그 속에서 현우도 자신이 갈 방향을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정말 한참 지나고 깨달은 것 같다. 왜 10대를 영향을 받기만 하는 백지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파업 현장에 있던 아이들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이 13일 오전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안녕 히어로>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 옆에서 영문도 모른 채로 웃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다른 해고자 가족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현장이 '재밌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율동하고 노래하고 삼촌들이 아이스크림 사주고 투쟁 현장을 그렇게 기억하더라. (웃음) 파업 자체에 대해 아이들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문제는 진압이 시작되면서다. 결국 사회가 해고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공안 사범으로 모는 과정 자체가 더 상처인 거다. '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옳을까요?'라고 말하는데 적어도 쌍차 투쟁에서 내가 본 10대 친구들의 기억 속에 집회 현장에 나가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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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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