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재능을 가지고도 꽃을 못피운 비운의 NBA 가드

1990년대 초 NBA(미 프로농구)에 '앤퍼니 '페니(Penny)' 하더웨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1993년 신인드래프트 3순위로 골든스테이트에 입단한 후 곧바로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되었던 그는 첫 시즌부터 NBA를 대표하는 무서운 신성으로 떠올랐다.

당시 올랜도 매직은 창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우승을 조준하고 있을 정도로 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199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공룡센터' 샤킬 오닐을 잡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NBA는 '나이지리아 흑표범' 하킴 올라주원, '킹콩' 페트릭 유잉, '해군제독' 데이비드 로빈슨 등 등 역대급 센터들이 자리 잡고 있던 이른바 '빅맨 전성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닐의 위력은 첫 시즌부터 선배들을 위협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신장 216cm, 체중 147.4kg의 압도적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운동신경과 탄력이 좋고 느리지도 않았던지라 상대팀에서는 늘 골밑수비에 골머리를 썩을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취약한 자유투였지만 다른 강점이 워낙 강해 큰 영향은 끼치지 못했다.

거기에 하더웨이의 합류는 화룡점정이었다. 빼어난 득점력과 패싱센스를 겸비한 하더웨이는 201cm의 장신임에도 1,2번 소화가 모두 가능했다. 매직 존슨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사기캐릭으로 불렸다. NBA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원투펀치'로 손색없었다.

오닐, 하더웨이를 중심으로 데니스 스캇, 닉 앤더슨의 '외곽쌍포' 그리고 베테랑 호레이스 그랜트가 4번에서 균형을 잡아주던 올랜도는 타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1994~95 시즌에는 은퇴 후 복귀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를 잡아내는 등 그야말로 거침없었다.

당시 하더웨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리그 최고 장신가드였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치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던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재목으로까지 꼽힐 정도였다. 조던과 함께 불스 왕국의 한축을 이뤘던 스카티 피펜은 "동나이대 나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췄다. 어디까지 성장할지 예측이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늘은 하더웨이를 버렸다. 건강만 보장된다면 무조건 NBA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것이 분명했던 하더웨이였지만 연이은 부상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결국 하더웨이는 올랜도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커녕 피닉스 선즈, 뉴욕닉스, 마이애미 히트 등 여러 팀을 전전하다 쓸쓸히 은퇴하는 비운에 울어야 했다.

 전주 KCC시절의 강병현은 리그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쓰임새많은 최고의 살림꾼 가드였다.

전주 KCC시절의 강병현은 리그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쓰임새많은 최고의 살림꾼 가드였다. ⓒ 전주 KCC


한국판 하더웨이 강병현, 마무리는 다를까?

리그 최고의 살림꾼 가드로 명성을 떨쳤던 강병현(29·193㎝)은 신인 시절 '강페니'로 불렸다. 가드로서 큰 키에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며 다재다능함을 뽐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강페니로 불렀으며 강병현 역시 그러한 별명을 좋아했다. 자신이 우상으로 여겼던 페니 하더웨이에 비견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강병현이 젊은 시절을 보낸 전주 KCC는 하더웨이가 뛰던 올랜도 매직과 비슷했다. 강병현이 하더웨이와 닮았다면 하승진은 '하킬'이라는 별명처럼 오닐과 비교됐다. 그랜트와 추승균도 포지션은 달랐지만 우승 경험 있는 전천후 베테랑 포워드라는 점에서 겹치는 점이 많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올랜도는 강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KCC는 넘치는 에너지를 자랑하며 멤버구성 첫해에 바로 챔피언결정전의 마지막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이다.

본래 전자랜드 소속이었던 강병현의 영입은 KCC입장에서 '신의 한수'였다. 당시 KCC는 하승진을 뽑기 무섭게 단숨에 우승후보로 불렸다. 하승진 외에 '골리앗' 서장훈(43·207㎝)까지 버티고 있던 상황에서 최고의 높이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고무된 허재 감독은 외국인선수들까지 장신자들로 뽑으며 사상 유래 없는 장대 군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KCC는 우승에 도전하기에는 밸런스가 부족했다. 장신자를 도와 외곽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줄 스윙맨의 부재가 컸다. 추승균이 있다고는 하지만 함께해줄 파트너가 없었고 이미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던 상황에서 혼자 모든 것은 책임지기는 버거웠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서장훈은 "후배의 성장을 돕는 선배가 되겠다"고 말했던 것과 달리 시즌 초부터 태업논란(?)을 일으키며 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었다. 서장훈은 겉모습만 보면 궂은 일을 잘하는 센터같지만 실상은 공격위주의 플레이를 선호하고 화려한 플레이를 즐기려 한다.

특히 개인 성적에 굉장히 예민한 편인지라 설사 팀이 이기고 있어도 그날 기록이 좋지 않으면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내며 덕아웃 분위기를 망쳐버리기 일쑤였다. 이는 노장이 된 당시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던 지라 본인의 출장시간이 줄어들자 대놓고 트레이드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언론을 통해서 먼저 터트려 버렸던 지라 KCC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랜드와 트레이드 논의가 있던 당시 KCC팬들은 어느 정도 검증된 정영삼(33·187㎝)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전자랜드 입장에서는 간판스타로 점 찍어놓은 정영삼 카드는 부담스러웠고 결국 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강병현을 트레이드 매물로 내어놓았다. 정선규, 조우현도 함께 왔다.

결과적으로 이는 대성공이었다. 서장훈이 궂은 일을 잘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화려함을 추구했다면 강병현은 매끈한 외모가 무색하게 마당쇠 마인드까지 가지고 있었다. 어린나이임에도 늘 개인기록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선수였다. "강병현이 아닌 정영삼이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얘기가 KCC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던 이유다.

거기에 조우현은 잦은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직접적으로 팀에 큰 도움은 되지못했지만 고참답게 팀 분위기를 앞장서서 이끌어주며 큰 박수를 받았다. 서장훈의 아쉬운 행보로 상처를 받았던 KCC팬들은 강병현, 조우현의 솔선수범으로 인해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선수로서 강병현의 최대 장점은 쓰임새가 많다는 점이다. 플레이가 정교한 것도 슛터치가 꾸준한 것도 아니지만 특유의 다재다능함을 앞세워 늘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슛감이 좋은 날은 강심장 에이스로 팀을 이끌고 아닌 경우에는 수비에 좀 더 집중하거나 골밑에서 몸싸움까지 벌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패스감각이 좋은 날에는 정통 포인트가드 못지않게 능숙하게 게임리딩에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강한 체력과 근성을 바탕으로 경기 내내 쉬지 않고 뛰어다닌다는 점에서 공헌도가 높았다. 감독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활용가능하다는 점에서 고마운 선수였다.

물론 현재의 강병현은 KCC가 아닌 KGC인삼공사 소속이다. 김태술(33·180cm)과 트레이드되어 둥지를 옮긴지 어언 3년이 흘렀다. 아쉽게도 KGC에서의 강병현은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부상 때문이다. 크고 작은 부상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어느덧 노장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라 예전 같은 엄청난 활동량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때문에 강병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도 결의를 다지고 있다. 현재 KGC는 박찬희, 이정현을 차례로 떠나보낸 것을 비롯 키퍼 사익스(24·178cm)까지 잡아두지 못하며 가드 부재가 불안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기윤(25·180cm)과 새로운 외국인 가드 마이클 이페브라(33·189㎝)만을 믿기에는 여러모로 불안하다. 강병현의 노련미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병현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시즌을 준비하는 각오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남다르다.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되었다시피 부상만 없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팀에 큰 도움이 되는 선수다. 농구인생 2막에 접어든 강병현이 베테랑으로서 KGC 앞선을 잘 끌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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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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