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페이스북에는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9월 4일 클로징 멘트가 올라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페이스북에는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9월 4일 클로징 멘트가 올라왔다. ⓒ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영상 캡처


'음악만 듣고 있는 것도 지겨운 데, 다른 방송국으로 갈아타야 하나요?'

지난 4일 방송된 MBC 라디오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클로징. 청취자의 사연을 읽던 진행자 배철수가 고른 사연은 대부분이 MBC가 목도한 총파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 중 위의 마지막 사연을 읽던 배철수의 목소리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간간이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신중을 기하던 그는 저 당혹스러운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예.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방송 들으시고요. MBC 라디오가 정상화됐는데도 그 방송이 좋으시면 계속 들으시고요, 아니면 다시 돌아오시고요. 자, 오늘 끝 곡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연주곡인데…, 아베마리아입니다.

저는 사실 종교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라봅니다. 청취자분들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다시 만나도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 디스크자키 배철수입니다.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안타깝게도 "다시 만나도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은, 지금 존재치 않는다. MBC 노조는 4일 오전 0시를 기해 총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이미 지난 2012년 김재철 전 사장 하에서 기록적인 170일 간의 파업을 강행했던 그때도, 김장겸 사장 하에서 KBS 노조와 공동 파업에 돌입한 지금도 '그' "만나면 좋은 친구"였던 MBC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 "만나면 좋은 친구"였던 MBC로의 회귀를, 상태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은 존재한다. MBC 라디오 작가 실장을 맡고 있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순탁 작가를 비롯해 이날 오전 총파업 지지 성명을 발표한 MBC의 라디오 작가들도 그들 중 하나일 듯하다. 대부분이 프리랜서인 이들 70명의 작가들의 바람 역시 MBC 라디오를 대표하는 DJ 배철수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MBC를 대표하는 <뉴스데스크>는 파행은 물론 김장겸 사장과 사측을 대변하는 '어용' 보도를 버젓이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3일엔 북한 관련 뉴스로 도배를 했고, 김장겸 사장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1일엔 자유한국당의 정기국회 보이콧과 일방적인 사측의 해명성 리포트, 맹목적인 고용노동부 비판으로 메인뉴스를 장식(?)했다.

3%대를 유지하던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픈 시청자들의 심리였는지, 이 주말 양일간 5%대(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공정방송은커녕 제대로 '어용방송'에다 자유한국당과 한 몸이 된 MBC의 현재를 반영하는 내용과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언론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MBC 뉴스는 지역 MBC에서만 찾아 볼 수 있었다.

전주 MBC 김한광 앵커 "MBC는 참담하게 망가졌습니다"

 지난 1일 방송된 전주 MBC <뉴스데스크>의 한 장면.

지난 1일 방송된 전주 MBC <뉴스데스크>의 한 장면. ⓒ MB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이 제가 진행하는 마지막 뉴스데스크입니다. 2년이 넘었는데요, 돌아보니 온통 무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대한민국의 공영 방송은 그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MBC는 참담하게 망가졌습니다. 지역방송 전주MBC는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근 10년 공영방송 장악은 집요하고 무도했습니다. 저희들 안에서 저항하고 한순간도 싸움을 멈춘 적 없었지만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실망하고 또 화나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서 다음 주부터 어쩌면 마지막이 될 공영방송 정상화 파업투쟁에 나섭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공영방송이 바로 서고 MBC가 사랑받게 되고 지역방송 전주MBC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돌아와서 본분에 충실하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매섭게 질책하시고 따갑게 비판하시더라도 절대 외면하시 마시고 끝까지 응원해 주시기를 감히 당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화끈하다. 어디하나 틀린 구석도, 흠 잡을 때도 없다. 한 글자 한 글자 고심과 진심 끝에 써내려간 멘트라는 것이 확연하다. 지난 1일 전주 MBC의 <뉴스데스크>의 오프닝 멘트 영상은 5일 오후 2시 현재 유튜브에서만 5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소셜미디어 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한광 앵커의 이 오프닝 멘트는 지금까지의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에서부터 MBC 구성원들의 다짐과 시청자들을 향한 당부까지를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다. 본사 <뉴스데스크>에서는 수년째 찾아 볼 수 없는 수위라 할 만하다. 가히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앵커브리핑'의 수위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서 응원과 박수가 쏟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날인 1일 강원영동과 대구 MBC에서도 날선 클로징 멘트가 터져 나왔다. 조규한 강원영동 MBC 앵커는 "언론노조 MBC본부 구성원들은 다음주부터 잠시 일손을 놓기로 했습니다"라며 "저 또한 여기에 동참하기 위해 당분간 이 자리를 비우게 됐습니다. 공영방송 MBC가 정상화되는 그날 다시 뵙겠습니다"고 말했다.

또 조재한 대구 MBC 앵커 또한 "MBC노동조합이 다음주 월요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갑니다"라며 "MBC가 더욱 건강하고 책임을 다하는 공영방송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이 같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촉구하는 멘트들은 MBC라는 언론과 공영방송의 파행을 타사 뉴스가 아닌 MBC 구성원의 자성어린 목소리를 통해 직접 시청자들에게 전파됐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9년 4월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

 2009년 4월 MBC <뉴스데스크>를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신경민 앵커.

2009년 4월 MBC <뉴스데스크>를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신경민 앵커. ⓒ MBC


"회사의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간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습니다."

20만 관객을 돌파하며 MBC와 KBS 양대 노조 파업에 불쏘시개가 되고 있는 영화 <공범자들>에서는 이 "클로징 멘트를 클로징하겠습니다"라는 당시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의 신호탄처럼 그려진다.


벌써 8년 전인 2009년 4월의 일이었다. 과연 김한광 앵커의 오프닝 멘트와 무엇이 다른가. 그 풍경이 무척이나 흡사하지 않은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언론사에 회자될 만한 이 멘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영화주간지 <씨네21>과의 영화 <공범자들> 대담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 클로징 멘트를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보고 또 봤다. 마지막 방송날 아침, 사장 주재 임원회의에서 내 해임안이 의결됐고 곧바로 통보받았다. 임원회의에서 '너는 끝이다. (마지막) 방송을 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하라'기에 '나한테 결정권이 있는 거냐'고 물어본 뒤 방송을 할지 안 할지 고민하다가 (클로징 멘트를) 썼다.

그 멘트가 인구에 회자되니 마지막 방송을 하길, 클로징 멘트를 쓰길 잘했구나 싶다. 그 방송을 안 했더라면, 내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면…. 마지막 방송은 후배들이나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준 일종의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 변치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1분이었다."

'아베마리아'를 선곡한 DJ 배철수도, 신경민 의원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김한광 앵커도, 그리고 공정방송 사수와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파업에 돌입한 다수의 MBC 구성원들도 다 같은 심정일 것이다.

2012년에 이어 그 마음 "변치말아야겠다"는 다짐은 물론 이번에야말로 국민들에게 사랑받던 "만나면 좋은 친구" 시절의 MBC로 돌아가겠다는 의지 말이다. 그래서 누구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국민들을 만나고, 누구는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파업에 동참하고 있을 것이다. MBC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의 마음도 매한가지이지 않을까.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 ‘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4일 열린 '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 ⓒ 권우성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은 <공범자들> 속 최승호 감독의 말마따나 "잘 들 산다"고 할 수 있다. 김장겸 사장은 김재철 전 사장처럼 보수진영의 공천권을 노린다는 해석이 파다하다. 하지만 정작 공영방송 MBC를 지켜왔던 구성원들은 눈물과 한탄, 인내 속에 고통받아야 했고, 시청자들이 망가진 MBC를 떠나 종편으로, 케이블로 채널을 돌리는 것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다. "MBC 라디오가 정상화됐는데도 그 방송이 좋으시면 계속 들으시고요"라면서도 "아니면 다시 돌아오시고요"라며 짐짓 시청자 편을 들 수밖에 없던 배철수의 그 클로징 멘트가 슬펐던 것은. 사측의 그 '공범자들', MBC를 망친 자들이 떠나 보낸 시청자들을 붙잡기 위해 그들을 제외한 MBC의 구성원들이 총파업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셈이기에.

신경민 앵커를 잇는 김한광 앵커와 같은 서슬 퍼런 클로징 멘트를 계속 보고, 듣기 위해서라도 MBC의 총파업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 PD수첩>은 물론이요,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드라마 왕국'으로 군림했던 그 과거 "만나면 좋은 친구"를 기억하는 모든 시청자들 역시 이번 총파업을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 지지를 업고, MBC 노조와 그 구성원들이 이번 총파업을 통해 공정방송 회복의 시금석을 쌓아 올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부디, "김장겸은 물러나"시라.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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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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