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방송을 장악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MBC 방송 장악해서 정부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방송사 로고 들고 국민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 공영방송 장악해서 정권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옛날엔 MBC가 로고를 들고 국민 앞에 나서던 시절이 있었다. 바른말 잘하고 지적 잘 하다가 검찰 수사를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MBC는 그 대가로 철퇴를 맞았다. 지금, 김장겸 사장 휘하의 MBC는 이제 이전의 MBC가 아니다. 시민들은 MBC 기자를 욕하고, 더러는 딱하게 여긴다. 촛불 집회 당시 상당수 시민은 어차피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을 취재는 왜 하냐고 기자를 딱하게 여기거나, 또 무슨 왜곡을 하려 하냐며 화를 냈다. 공영방송은 국민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언론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서 이렇게 된 것인지, 대체 주범이 누구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최승호 감독(전 MBC PD수첩 PD)이 만든 <공범자들>이라는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지난 9년(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간 공영 방송이 얼마나 상처를 입고 망가져 갔는지에 대해 다룬다.

'이명박근혜'의 언론 장악

ⓒ (주)엣나인필름


최승호 감독은 그 자신도 언론 장악 계획의 희생자다. 원래 PD수첩의 PD로 일했던 최승호 PD는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 일은 잘하지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만 하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 다른 곳에 보내준다(?)는 뉘앙스의 말도 있었다. 그는 더 PD수첩을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작년에 개봉한 <자백> 그리고 이 영화 <공범자들>을 만들었지만, 그가 원래 있던 곳은 MBC였다. <공범자들>은 누구보다 MBC의 변화 과정을 잘 아는 최승호 감독이 만든 영화다.

영화는 지난 9년의 흔적을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지난 9년 간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곳은 KBS와 MBC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정연주 KBS 사장이 해임되었다. 노조원들은 항의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정연주 사장은 곧 배임 혐의로 체포되었다. 검찰은 재판으로 그를 끌고 갔고 더러운 인간으로 낙인이 찍혔다. 해임되고 3년 5개월이 지난 2012년 1월에 무죄 확정판결이 났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MBC도 입에 재갈이 물렸다. 엄기영 사장은 정권과의 대립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사퇴했고, 이후 김재철 사장이 취임했다. 사원 중에서는 처음부터 김재철 사장의 취임을 걱정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은 자신이 MBC에서 수십 년을 일했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그리고 자신이 방송 독립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을 한강에 묶어서 버리라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

김재철 사장은 결국 MBC 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김재철 사장 재임 동안 수백여 명의 PD, 기자, 아나운서가 징계를 당했다. 방송인 김미화 씨는 영화 내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밝힌다. 광고도 잘 따오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데 나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더욱 참혹하다. MBC 언론인들은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곳에 발령을 받았다. 영화 속에는 스케이트장 관리인으로 보내진 한 사원의 인터뷰가 나온다. 기존의 업무를 못하게 하려는 사용자 측의 속셈에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너무 막막해서 처음엔 휴가를 냈지만 결국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PD들에 대한 가혹한 발언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PD들은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한 총 책임자 지위에 있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으로 매일 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모습에 따르면 그런 PD들의 자부심이 금이 가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너는 대체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래야 충성심 있는 사원을 키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악화한 현실,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 <공범자들>

ⓒ (주)엣나인필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이런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점점 악화하였다. 정권 초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화려한 외국어 실력'과 '아이돌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인기'에 대해 보도한 기사는 용비어천가 수준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물론 나도 웃었다. 야구 경기에 나가서 시구하면 모든 언론이 그에 주목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의 계시처럼 언론을 휘몰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는 언론은 침묵했다. 대신 고기를 도로 위에 놓고 구워서 얼마나 오늘이 더운지 날씨를 알려주는 뉴스가 나갔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던 언론들은 2014년 4월 16일에 기어코 세월호 참사 전원구조 오보를 낸다.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보도개입 논란에 대해 발표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언론이 침묵해야 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노조는 부당한 일이 있을 때마다 싸웠지만, 그때마다 많은 사람이 징계를 받고, 해고를 당하고, 전보를 당했다.

노조는 파업해야만 했다. 영화는 파업이 하나의 협상 전략이어서 했던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부는 언론 장악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사회의 분위기 역시 보수 정권에 유화적이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적었다. 노조는 파업밖에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파업을 통해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들은 해고당하고, 다른 부서로 쫓겨나고,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에 몰아넣어 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민심이 분노했다. 탄핵을 원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공영 방송은 이를 외면했다. 정부 비판 대신, 촛불 집회 대신 나간 건 북한 로켓 실험에 대한 뉴스였다. 시민들은 공정 방송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그렇게 공영방송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도 않고, 무시하는 언론이 되었다. 그리고 이 언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영화 내내 최승호 PD의 질문을 무시한다. 대답하지 않고, 피하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떠나려 한다. 그리고 방송의 미래를 위해 그만하라고 한다. 정말 아무도 영화 내내 인터뷰를 시도하는 최승호 PD에게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다. 최승호 PD는 계속 뛰어다니면서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영화의 후반부, 김민식 PD는 신뢰가 붕괴한 MBC에서 혼자서 외친다.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큰 소리로 말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혼자 하다 끝나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닌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애처로웠다. 다행히 그동안 억압되었던, 찍소리도 낼 수 없었던 언론인들이 그의 파업에 동감해주고 있었다.

언론은 사회와 정부의 감시자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부당한 사실엔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 상당수가 희생양이 되고 피해자가 되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전하면 앞으로도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은 제대로 살 수가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아직 이 모든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29일, 언론노조 MBC 본부는 투표율 95.68%, 찬성 93.2%로 파업안을 가결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 자명한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MBC KBS PD수첩 PD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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