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만약'이란 단어는 없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는 역사책에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것은 의미 없는 발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항상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만약'이란 의문을 품고 살아간다. 변하지 않을 고정된 역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가정 아래에서 요동친다.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가진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팬들은 '그 선수가 패널티킥을 넣었다면', '이 감독이 저 선수를 기용했었다면' 등의 상상으로 과거를 추억하고는 한다. 그 중에서도 팬들이 '만약'이란 생각을 무조건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오심'이다. 축구는 항상 오심과 함께 했다. 넓은 그라운드에서 22명의 만들어내는 사건·사고를 단 세 명의 심판이 정확히 판단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 TV 중계의 발전 이전에는 심판의 오심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미디어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팬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심판의 판정 장면을 판단할 수 있게 됐다. 팬들과 선수들이 눈으로 심판의 오심 장면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자 심판의 권위는 흔들렸다.

심판 권위 보호를 위해 FIFA는 다른 메이저 스포츠들과 다르게 비디오 판독 도입을 결사 반대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FIFA는 작년 일본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VAR(Video Assistant Referees)' 시스템, 즉 비디오 판독을 시작했다. VAR은 올해 한국에서 개최된 FIFA U20 월드컵 코리아에서도 활용됐다. 경기의 흐름을 방해할 것이라는 기존의 우려보다는 정확한 판단으로 손해를 보는 팀이 없어질 것이란 긍정적인 효과가 부각됐다. K리그 클래식도 하반기부터 VAR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많은 오심을 줄여나가고 있다.

VAR 시스템은 특정 장면에서만 활용이 가능하기에 주심의 판정이 완벽해졌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래도 결정적인 오심이 없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VAR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눈물을 흘렸던 많은 이들은 '만약 VAR이 있었다면, 그날의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릴 법 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온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에 대해 알아보고, VAR 시스템이 과거에도 있었다면 월드컵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 지에 대해 말이다.

서독을 울린 제프 허스트의 '유령골'

   '유령골'이 없었다면 잉글랜드 유니폼 가슴에 박힌 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령골'이 없었다면 잉글랜드 유니폼 가슴에 박힌 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 위키미디어


처음으로 만나 볼 오심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온 장면이다. 런던의 윔블던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은 개최국 잉글랜드와 12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서독의 승부로 펼쳐졌다. 잉글랜드는 준결승에서 이 대회 최고의 스타인 '흑표범'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포르투갈을 꺾고 올라왔고, 서독은 골키퍼 야신이 버티는 소련을 무너뜨리고 윔블던을 밟았다.

승부는 팽팽했다. 서독이 전반 12분 만에 선제 득점을 터뜨리자, 잉글랜드의 제프 허스트가 전반 18분 동점골을 넣으며 반격했다. 후반 33분 마틴 피터스의 역전골로 잉글랜드가 승기를 잡았지만, 후반 종료 직전 볼프강 웨버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연장전이 시작됐다.

연장전에서 축구 오심 역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제프 허스트의 '유령골'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종료 9분 전 오른쪽 측면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받은 허스트는 강력한 슈팅을 시도했다. 허스트의 발을 떠난 공은 크로스바 하단을 맞고 골라인에 애매하게 떨어졌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득점을 주장했다. 주심은 부심과 의견을 나눈 끝에 득점을 선언했다. 서독 선수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잉글랜드는 120분에 또 한번 터진 허스트의 득점까지 엮어 4대2로 서독을 꺾고 '축구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허스트의 유령골은 VAR로 다시 살펴보면 문제가 많다. 사실 다양한 각도로 보지 않아도 된다. 당시 허스트의 슈팅이 촬영된 화면만 봐도 허스트의 슈팅이 완전히 골라인을 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잉글랜드 팬들은 각도의 문제라며 허스트의 득점을 진실로 굳게 믿고 있지만, 여러 가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골이 아니었다.

VAR 시스템으로 정확한 판단이 가능했다면 잉글랜드의 결승골은 인정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서독이 우승했을 수도 있다. 잉글랜드가 패했다면 1966년 월드컵 우승이 최초이지 마지막 우승인 잉글랜드는 현재 더 심한 조롱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실용주의자 앨프 램지의 '윙 없는 기적'도 신화가 아닌 실패로서 후세에 기억됐을 것이다. 월드컵 역사에서 단 한 번 빛났던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소중한(?) 오심이다.

마라도나의 전설을 끝낸 루디 펠러의 '다이빙'

  루디 펠러(왼쪽)의 다이빙에 눈물을 흘렸던 마라도나

루디 펠러(왼쪽)의 다이빙에 눈물을 흘렸던 마라도나 ⓒ 위키미디어


오심으로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8년 뒤로 미뤘던 서독은 1990년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오심의 혜택을 누린다. 1990 월드컵 결승전은 '리턴 매치'였다. 1986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만났던 아르헨티나와 서독은 4년 뒤 이탈리아 로마에서 다시 만났다. 표면상은 서독이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모양새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마라도나의 천재성에만 기대 꾸역꾸역 결승전에 올라온 아르헨티나와 다르게 서독은 로타어 마테우스의 지휘 아래 신예 위르겐 클린스만 등이 활약하며 비교적 쉽게 결승전에 올랐다. 전력의 차이대로 결승전도 진행됐다. 아르헨티나는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하며 마라도나의 한 방에 모든 것을 걸었고, 서독은 전방위적으로 아르헨티나를 공략했다. 서독의 공격이 날카로웠지만 아르헨티나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의 세이브로 득점에 실패했다.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두 번째 결승전 연장전이 눈 앞에 다가온 순간 사건이 발생했다. 후반 43분 동료의 침투 패스를 서독의 공격수 루디 펠러가 잡았다. 실점 위기를 맞은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로베르트 센시니가 펠러의 등 뒤에서 도전적인 태클을 시도했다. 펠러가 센시니의 방해에 넘어졌고 주심은 곧바로 패널티킥을 선언했다. 마라도나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선수들 전체가 항의했지만 패널티킥은 그대로 진행됐다. 키커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정확한 킥으로 득점을 터뜨리며 서독이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VAR로 살펴보자. 잉글랜드 월드컵보다는 다양한 각도의 화면이 존재했던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제공된 화면을 돌려보면 루디 펠러의 동작은 '다이빙'에 가깝다. 센시니가 태클을 시도했던 오른발과 루디 펠러의 다리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센시니와 펠러 간의 신체적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기에 다리가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센시니의 동작이 파울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펠러의 동작은 다이빙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펠러는 태클을 기다렸다는 듯이 넘어졌다. 동작도 마치 다리에 걸린 것처럼 과장됐다. 정황상 다이빙의 가능성이 크다. VAR 시스템이 존재해 그 시절보다 더 다양한 각도의 리플레이가 주심에게 제공됐다면 페널티킥을 선언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펠러의 다이빙으로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서독은 그 해 10월 동독과 통일까지 하게 되었고 1990년은 독일 역사상 최고의 해로 남게 되었다. 반면 마라도나의 등장으로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섰던 아르헨티나는 이날의 패배로 정상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됐다. 라이벌 펠레가 그랬던 것처럼 '월드컵 2연패'라는 신화를 쓸 뻔 했던 마라도나는 시상식 내내 눈물만 흘렸다. 이 때부터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무대에서 번번히 독일에게 무너지며 아직도 마라도나의 눈물에 대한 복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 왕조'에 감춰진 이니에스타의 오프사이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결승전은 의미가 큰 결승전이었다. 결승전에 진출한 스페인과 네덜란드 두 국가 모두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어 누가 이기든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누리는 국가가 탄생하게 됐다. 또한 비유럽 지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유럽 국가가 챔피언이 되는 순간이자, 월드컵의 절대 강호였던 브라질, 이탈리아, 독일, 아르헨티나 중 어느 국가도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최초의 월드컵이었다.

승부는 팽팽했다. 사비 에르난데스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이 경기 흐름을 주도했지만, 오히려 네덜란드가 결정적인 기회를 맞으며 스페인을 흔들었다. 스페인의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의 눈부신 선방 덕에 승부를 연장전까지 몰고 간 스페인은 경기 종료 4분 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멋진 발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뽑아내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이니에스타의 '인생골' 목록에 반드시 포함되는 이 득점 장면에는 사실 오심이 포함되어 있다. 이니에스타는 득점 상황에서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패스를 받았다. 그 장면에서는 오심이 없었다. 문제는 바로 직전 장면이다. 이니에스타의 득점이 터지기 직전 역습 상황에서 왼쪽 측면에 있던 페르난도 토레스는 쇄도하는 이니에스타를 향해 크로스를 시도했다. 이 상황이 문제다. 토레스의 발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이니에스타는 네덜란드의 최종 수비수 라인에 걸쳐있다.

   정밀한 판정이 있었다면 이니에스타는 오프사이드 파울을 범했을지 모른다

정밀한 판정이 있었다면 이니에스타는 오프사이드 파울을 범했을지 모른다 ⓒ FIFA TV 캡쳐 화면


VAR로 다시보자. 동일 선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당시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밀하게 오심을 가려내기 위해 VAR 시스템을 통해 다각도로 이 장면을 검토했다면 판정은 바뀔 수도 있다. 실제로 중계 화면 상으로 봐도 이니에스타의 무릎이 네덜란드 수비수보다 앞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오심과 다르게 이 장면에서 심판의 판정을 비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중계 화면으로도 완벽하게 오심 여부를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이니에스타의 오프사이드 여부는 미세한 차이를 판독해야만 한다. 다만 네덜란드는 이 장면 말고도 이니에스타 결승골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득점 장면을 이끈 스페인의 공격 상황 바로 직전에도 오심이 있었다. 네덜란드가 시도한 프리킥이 스페인 수비벽을 맞고 나갔음에도 코너킥이 아닌 골킥이 선언됐다. 골키퍼부터 이어진 공격에서 골을 얻어맞은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억울한 판정이었다.

물론 네덜란드의 항의는 VAR 시스템이 작동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기에 VAR이 존재했다고 해서 변경될 판정이 아니다. 또한 전반전 네덜란드의 니헬 데 용이 사비 알론소의 가슴에 날린 거친 '쿵푸킥'이 퇴장이 아닌 옐로우 카드로 끝났다는 점에서 네덜란드도 오심 덕을 봤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결승골 상황에서 네덜란드에게 유리한 판정이 내려졌다면 FC 바르셀로나와 같이 세계 축구를 정복했던 '스페인 왕조'는 미완에 그쳤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은 유로 2008부터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으며 전설로 남게됐고, 네덜란드는 선배 요한 크루이프에게 살아 생전 월드컵 우승이란 선물을 바치지 못하고 씁쓸하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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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오심 VAR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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