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원할 신태용호 1기 명단이 발표됐다. 부상에서 돌아온 손흥민이 합류했고, 몸 상태가 확실치 않은 '캡틴' 기성용도 포함됐다. 한동안 국가대표팀과 거리가 멀었던 권창훈이 돌아왔고, '괴물 신인' 김민재, 133억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권경원도 생에 첫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어깨가 무겁다. 이란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조기에 확정 지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 박지성의 맹활약에 무너지며 본선행이 좌절됐던 만큼, 복수를 위해 이를 갈고 있다. 마지막 경기인 우즈베키스탄 원정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승리. 새롭게 출범한 신태용호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 한국 축구를 구원해내며, 희망을 전할 수 있을까.

    국가대표팀으로 돌아온 '라이언 킹' 이동국.

국가대표팀으로 돌아온 '라이언 킹' 이동국. ⓒ 이근승


"마흔 살이 눈앞인 이동국이 뛰는 데 젊은 선수들이 안 뛰겠느냐"

신태용호 1기 명단 발표와 함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이는 이동국이다. 2014년 이후 국가대표팀과 거리가 멀었지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빨간 불이 켜지자 돌아오게 됐다. 38세란 적잖은 나이, 과거보다 확실치 않은 소속팀 내 입지 등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자기 관리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이동국의 경험과 능력에 큰 점수를 줬다.

신태용 감독은 "이동국과 염기훈, 이근호는 K리그에서 어느 후배 선수들보다 열심히 뛴다. 이들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면서 "나이 사십 다 된 이동국이 뛰는 데 후배들이 안 뛰겠느냐", "노장 선수들이 후배들에게 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나가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동국이 2017·2018시즌 오스트리아 리그를 휘어잡고 있는 황희찬을 대신해 국가대표팀 선발로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같은 소속팀인 김신욱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 보기 어렵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의 말처럼 이동국의 복귀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동국은 산전수전 다 겪은 풍부한 경험이 있다. 젊은 선수들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지녀야 할 자세, 훈련 태도 등 이동국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솔선수범하는 이동국을 통해 국가대표팀 내 긴장과 경쟁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이동국의 신체 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지만, 경기 흐름을 읽는 눈과 해결사 능력은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올 시즌 적은 출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기록(4골 2도움)이 증명한다. 

녹슬지 않은 왼발 킥 능력을 앞세워 도움왕(K리그 클래식) 경쟁을 벌이고, 위기의 순간에는 득점포도 가동하는 34세 염기훈. 지난 6월, 카타르 원정에서 국가대표팀 복귀에 성공했고, 빼어난 활동량과 공격 포인트 생산 능력을 유지하며 신태용호 1기에도 합류한 이근호. 경험과 능력을 갖춘 베테랑들이 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무서운 아이들'의 합류

베테랑들의 복귀 못지않게 눈길을 사로잡은 이름이 있다. 2017시즌, K리그 클래식을 뒤흔들고 있는 '괴물 신인' 김민재다. 189cm의 건장한 체격을 앞세운 몸싸움과 공중볼 장악 능력,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볼을 빼앗아내는 영리함, 페널티박스 안쪽에서도 과감한 태클을 서슴지 않는 강심장 등 김민재는 한국 축구의 10년 이상을 책임질 대형 수비수로 불린다.

김민재는 신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전북 현대에서 당당하게 주전 자리를 꿰찼고, 팀이 제주 유나이티드와 함께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연령별 대표팀 경험도 없다는 우려가 있지만, '괴물 신인'의 합류는 불안보다 기대가 훨씬 크다.

대한민국에서 손흥민 다음으로 비싼 선수인 권경원도 기대를 모은다. 권경원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아시아 무대에서는 최고의 중앙 수비수로 불린다.

권경원은 전북 유스팀 영생고 출신으로 2013년 성인팀에 승격해 후보로 두 시즌을 보냈다. 지난 2015년, 시즌을 준비하던 최강희 감독은 권경원을 주전 수비형 미드필드로 낙점했다. 그런데 권경원이 알 아흘리(UAE)와 연습 경기에서 맹활약을 선보이자, 알 아흘리는 즉석에서 300만 달러(한화 약 36억 원)를 투자해 권경원을 영입해갔다.

권경원은 UAE 리그 진출 이후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꿔 대성공을 거뒀다. 이적 첫 시즌 만에 팀의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기여했고, 대회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리는 기쁨을 맛봤다.  

2016년 겨울, 거대 자본을 앞세운 중국 슈퍼리그 다수의 팀이 아시아 최고 수비수로 떠오른 권경원 영입에 나섰고, 몸값이 1,500만 달러(181억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권경원은 전설적인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톈진 취안젠을 선택해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몸값이 무려 1,100만 달러(133억 원), 손흥민이 지난 2015년 8월 레버쿠젠(독일)에서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로 이적할 때 남긴 기록(381억 원) 못지않은 금액이었다.

권경원은 다른 한국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슈퍼리그의 바뀐 규정 탓에 시즌 초반 힘든 시기를 보냈다. 5월 20일 전까지, 그의 실전 경기 투입 수는 '1'이었다. 그러나 착실한 훈련 태도를 보이며 칸나바로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고, 주전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충칭 리판(5월 20일)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해 무실점을 이끌었고, 그다음 경기였던 텐진 테다전에서는 무실점에 도움까지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주전 자리를 확실히 했다. 올 시즌 기록은 13경기 출전 1골 1도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신태용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는 권창훈도 국가대표팀에 복귀했다. 지난 5일 개막한 프랑스 리그앙 소속 디종 FCO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며 좋은 모습을 보이는 터라 기대가 크다. 소속팀에서 맡고 있는 측면 공격수는 물론, 미드필드 전 지역을 누빌 수 있는 다재다능함은 국가대표팀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태용호 1기는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팀의 구성을 갖추는 데는 성공했다. 더 이상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가 국가를 대표하는 모습은 보지 않게 됐다. 슈틸리케 감독 재임 시절, 선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장현수나 정우영 등도 소속팀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신구조화'. 이동국과 염기훈, 이근호 등 풍부한 경험을 앞세운 형님들의 솔선수범이 가라앉은 국가대표팀을 끌어올릴 수 있길 기대한다. 구자철과 손흥민, 이재성 등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 할 선수들이 이름값을 증명하길 기원한다. 김민재와 권경원 등 데뷔전을 앞둔 무서운 신예들의 패기가 국가대표팀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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