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의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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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80년 5월의 광주를 최초로 극화한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였다. 극히 제한적이나마 그날의 참상을 재현해내면서 큰 화제가 됐지만, 1980년 광주가 극 전체의 일부 시대적 배경으로 차용되면서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허구 논란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 이후의 영화들 역시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거의 모두가 가상의 인물을 통해 당시를 해석하면서 관점의 객관성 혹은 영화적 상상력의 과잉 등이 논란이 되면서 정작 항쟁의 성격 또 역사적 의미와 같은 중요한 문제들이 묻혀버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서 5.18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에 이르렀고, '이제 광주 좀 그만 우려먹으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많은 이들에게 상처가 되었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일부 종편과 극우인사들에 의한 조작과 왜곡이 끊임없이 시도됐고, 심지어 모든 책임의 중심에 있는 전직 대통령은 스스로를 '씻김굿의 제물' 운운하며 마치 자신 역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광주의 그날... 겹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우크라이나 혁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윈터 온 파이어>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영화 <택시운전사>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사복, 이 두 사람의 실존했던 외부자들을 통해 80년 5월의 그날을 담백하면서도 처절하게 증언하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 그들을 취재하러 온 푸른 눈의 이방인에게 길을 터주며 박수로 맞이하는 시민들의 슬픈 희망을 담은 웃음에 가슴이 무너졌다. 80년 광주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SNS도 없었다. 언론은 신군부의 위세에 미리 알아서 납작 엎드렸고 광주의 참상을 애써 외면했다.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담아낸 그 날의 처절했던 모습에 지난 2015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Winter on fire)>의 장면들이 겹쳐보였다.

이 기록영화의 부제는 'Ukraine's fight for freedom(자유를 향한 우크라이나의 투쟁)'이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1991년 당시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이후 2004년에 친 러시아 후보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선거의 결과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게 되고 그 시위가 바로 '오렌지 혁명'이다.

시민들의 항쟁은 성공을 거두고 선거결과는 취소된다. 그 후 몇 해 동안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한 국민의 고통이 부패한 기득권들에게 기회가 되는 것 또한 역사의 필연인 것인가.

2010년 정계에 복귀한 야누코비치는 다시 권력을 쥐게 된다. 당시 경제적인 고통을 겪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서방세계로의 진입, 즉 유럽연합의 가입을 바라고 있었고 야누코비치는 이를 선거공약을 통해 약속한다.

그러나 친러파였던 그는 분쟁지역에 대해서 러시아와 비밀리에 협정을 맺고 국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린다. 결국 그는 EU와의 FTA(자유무역협정)의 조인마저 거부하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다시 광장으로 나서게 된다. 그들은 말한다.

"야누코비치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소련의 지배를 받던 그 시대로 우크라이나를 후퇴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자녀들의 미래까지 훔쳤다."

시위는 축제였다
 우크라이나 혁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윈터 온 파이어>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시위는 평화로웠고 오히려 축제에 가까웠다. 2004년 이미 오렌지혁명을 경험한 그들은, 다함께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며 그들의 열망을 정부에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키예프 독립광장의 시위가 시작된 지 9일째가 되던 날, 수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염원을 끝내 저버린 그들의 국가는 국민들을 향해 철봉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무장경찰의 폭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진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시민을 군화발로 마구 짓밟고, 기절한 그를 마치 죽은 짐승의 사체를 끌고 가듯 질질 끌고 간다.

얼굴에 피범벅을 한 어느 중년 남성은 말한다.

"난 그냥 거기에서 잃어버린 제 딸아이를 찾으려 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제 말을 듣지도 않고 그냥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가까스로 성 미카엘 수도원으로 피신한 우크라이나의 민중은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서로에게 건네고 방한복을 준비해서 서로를 입히고, 광장의 한 켠에 법률상담코너를 만들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저항을 준비한다. 유모차를 끄는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온 어린 아이, 목발을 짚고 나온 상이용사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모인 수백만의 군중은 다시 키예프의 독립광장을 향한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유럽연합 가입 등의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그들이 요구하는 두 가지는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류의 가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이었다.

국가는 더 이상 국민으로부터 이것을 빼앗아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급기야 그들은 대통령관저가 있는 방코바거리를 향해서 평화행진을 시작한다. 그러나 전투경찰은 섬광수류탄 그리고 최루가스의 난사에 이은 무지막지한 폭력적 진압을 시작한다. 수없이 날아드는 곤봉에 맞아 쓰러져 피를 흘리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모습을 카메라는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유럽연합과 미국은 야누코비치를 만나 외교적 해결을 모색한다. 우크라이나가 자유국가로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이제 한 가닥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야누코비치는 비열하고 잔혹한 인간이었다.

부상자들의 치료를 위해 임시로 설치된 응급치료센터마저 파괴하는, 실제 전투현장에서도 벌어지지 않을 악랄함을 보인 전투경찰은 이제 시위진압용 고무총탄을 실탄으로 대체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국가가 쏜 총탄 앞에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목도한 키예프의 시민들은 비통함과 함께 당연한 공포에 떨게 된다. 야누코비치와 권력의 부역자들은 광장이 이제 스스로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광장을 지키던 한 중년의 남성은 자신의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멈추면, 누구도 저들을 영원히 끌어내리지 못할 거야."

"그날의 영웅들에 영광 있으라"

 우크라이나 혁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윈터 온 파이어>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광장에 사람들이 모인지 90일이 되던 2014년 2월 18일, 의회를 향해 평화행진을 하던 시위대에게 무장경찰은 본격적인 대량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한다. 이 기간 동안 125명이 사망하고 65명이 실종되었고 1890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고로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사망 218명, 행방불명 363명, 부상 5088명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공식적인 통계이다.

총탄이 머리 위를 휘젓고 지나가는 살육의 현장에서, 당시 열여섯 살의 드미트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엄마, 사랑해요."

2014년 2월 22일 동이 트기도 전 새벽, 헬기를 타고 아무도 몰래 키예프를 달아다는 야누코비치의 모습이 CCTV에 잡힌다. 그 날 오후, 키예프의 독립광장에 다시 모인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불법적 사임과 조기총선을 결정하는 의회의 모습을 지켜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외친다.

"우크라이나에 영광 있으라. 영웅들에게 영광 있으라."

야누코비치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망명한다. 러시아는 군대를 보내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합병한다. 이로 인한 분쟁으로 지금까지 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16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80년 5월 그 날 광주에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명령했던 책임자들은 어쩌면 온갖 부귀영화와 함께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의 전 대통령 야누코비치 역시 러시아의 어느 휴양지에서 호의호식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지금 이 순간도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말한다.

"진보는 직선운동이 아니라 추의 운동과 같다. 앞으로 나아간 만큼 그 반동의 힘을 받아 뒤로 밀리기도 하지만 다시 추동하여 나아가는 진자의 운동이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던 그 외침, 이 말을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키예프의 독립광장을 메웠던 그 함성, 그들 역시 우리에게 이렇게 화답할 것이라 확신한다.

"대한민국에 영광 있으라. 그 날의 영웅들에게 영광 있으라."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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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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