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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없이 '김연경 혹사', 한국 배구 '위험수위'

 '월드그랑프리 야전사령관' 김연경 선수

'월드그랑프리 야전사령관' 김연경 선수 ⓒ 박진철


'남자배구는 험난, 여자배구는 무난.'

한국 배구의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전망할 때 대체로 나오는 반응이다. 남녀 배구의 세계랭킹 차이, 김연경의 존재감 등을 감안하면 언뜻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중대한 변수가 발생했다. 도쿄 올림픽 출전권 부여 방식이 2016년 리우 올림픽과 비교해 대폭 바뀌기 때문이다.

기자는 현재 한국 여자배구의 세계랭킹과 경기력을 가지고, 변경될 도쿄 올림픽 출전권 방식에 대입해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물론 선수 구성과 경기력이 2019년도와 똑같을 수는 없다. 때문에 어디까지나 전망에 불과하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여자배구는 무난'이라는 단어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지난 5월 4일 발표한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 부여 방식 개편 잠정안'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출전 국가 확정은 남녀 모두 4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1단계는 도쿄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에게 자동으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부여된다. 2단계는 올림픽 세계예선전(본선 출전권 3장), 3단계는 올림픽 국제예선전(3장), 마지막 4단계는 각 대륙별 올림픽 예선전(5장)이다.

엄한주 FIVB 경기위원회 위원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 개편안은 잠정안이고, 최종 확정은 2018년도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편안의 큰 틀은 그대로 결정될 것"이라며 "단계별로 세부적인 사항 2~3가지가 추가로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여자배구 도쿄행 티켓, 태국과 '끝장 승부' 가능성

한국 배구는 2016 리우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8개 출전국 중 4위 안에만 들면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올림픽 세계예선전 규정상 유럽 강팀이 2개국밖에 출전할 수 없었다. 유럽 강팀들에게는 불리하고, 일본 등 아시아 팀들에게 유리한 구조였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국제예선전은 세계랭킹을 핵심 기준으로 출전 자격이 부여된다. 때문에 유럽 강팀들이 대거 출전할 수 있다. 그런 조건에서 두 대회 모두 12개 출전국 중 상위 3개국에게만 올림픽 본선 티켓이 주어진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올림픽 세계예선전은 일본을 제외하고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경기를 펼친다. 세계 최정상급 국가들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세계랭킹과 경기력만을 가지고 가정해 보면, 중국(세계랭킹 1위), 미국(2위), 세르비아(3위)가 본선 출전권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 열리는 올림픽 국제예선전은 전체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상위 12개 국가가 출전한다. 일본과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획득한 3개 국가는 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사실상 세계랭킹 16위까지 출전하게 된다.

현재의 세계랭킹만을 기준으로 출전국을 가정해 보면, 브라질(4위), 러시아(5위), 네덜란드(7위), 이탈리아(8위), 도미니카(9위), 한국(10위), 아르헨티나(10위), 터키(12위), 독일(13위), 태국(14위), 푸에르토리코(15위), 벨기에(16위)가 해당된다.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불가리아(17위)도 세계랭킹에서 앞선 팀들을 역전하고 출전할 가능성이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 대회에서도 한국이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브라질, 러시아, 네덜란드, 이탈리아는 한국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앞선다.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국제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따지 못할 경우, 한국 배구가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길은 단 한 가지밖에 남지 않는다.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만 한다.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일본과 앞선 대회에서 본선 티켓을 딸 가능성이 높은 중국이 출전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결국 한국과 태국이 마지막 본선 티켓 1장을 놓고 '끝장 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와 이번 월드그랑프리 대회에서 보듯, 태국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태국은 현재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공격진의 세대교체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월드그랑프리 대회 1그룹에서 아차라폰(23세·178cm), 핌피차야(20세·178cm), 찻추온(19세·178cm) 등 어린 선수들이 주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세계 강호인 브라질, 이탈리아, 터키를 꺽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들의 기량과 조직력이 한층 무르익을 3년 뒤에는 그 위력이 배가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마저 본선 티켓을 따지 못하고,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까지 밀려올 경우 도쿄 올림픽 출전 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김연경 혹사-남자배구 기적 '불편한 진실'

 2017 국제배구연맹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2그룹 결승에서 폴란드에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의 김연경 등 선수들이 지난 1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17 국제배구연맹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2그룹 결승에서 폴란드에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의 김연경 등 선수들이 지난 1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도 현재 한국 여자배구의 도쿄 올림픽 전략은 '김연경만 바라보는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배구는 감독과 선수들이 사실상 '기적'을 일으켜주길 바라고 있다.

배구협회에 도쿄 올림픽 남·여 동반 출전을 위한 치밀하고 장기적인 플랜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 되고 있지만, 아직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대표팀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배구협회 지도부 인사들은 이 중요한 시기에 주도권과 파벌 다툼을 하느라 수개월을 허비했다. 지난 7월 25일 오한남 회장 체제의 새 집행부가 들어섰지만,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전무이사, 남·여 경기력향상이사, 경기이사 등 4대 핵심 요직을 모두 오 회장이 선거 직전까지 몸담았던 대학배구연맹 출신으로 채웠다. 다른 산하단체들로부터 '측근 인사'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대표팀 운영에서도 배구팬은 물론 일반 네티즌까지 비난과 분노가 폭발하는 사태들이 발생했다.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엔트리를 다른 나라보다 2명이 적은 12명만으로 운영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에게 절반은 비즈니스석, 절반은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그 와중에 오 회장은 강남 고급 호텔에서 취임식을 열어 기름을 부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남녀 배구가 세계 강팀들의 행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망주 발굴·육성 외면과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 혹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세계 배구 강국들은 이미 도쿄 올림픽 출전권과 메달 획득을 목표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번 월드그랑프리 대회가 그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철저하게 주전 선수 휴식과 유망주 발굴에 초첨을 맞춰 대표팀을 구성하고 운영했다. 그러나 한국 여자배구는 리우 올림픽 주전 멤버를 거의 그대로 차출했다.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도 전무했다.

특히, 세계 최고 선수인 김연경(30세·192cm)에 대한 관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대회 중간중간 국가대표 소집 훈련까지 감안하면, 김연경은 지난해 10월 23일부터 올해 9월 24일까지 무려 11개월 동안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국가대표팀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소속 팀의 리그 준비에 합류해야 한다.

지금처럼 '김연경을 대부분 국제대회에 차출해 혹사시켜 놓고, 정작 중요한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예선전 등에서 체력과 기량 저하로 고전하게 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배구계 일각에선 '아주 중요한 국제대회가 아니면, 김연경을 국가대표에서 제외시켜 줄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배구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배구협회와 감독을 성토하고 있다.

키워야 할 '장신 유망주' 있는데도 외면

한국 배구가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도 뼈아픈 대목이다. 세계 강팀들의 행보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유독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팀 감독이나 코치진에게 물어보면 "아직 국가대표급 실력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세계 강팀들이 어린 유망주들을 주전급 실력이라고 생각해 엔트리에 포함시킨 게 아니다. 국가대표팀의 효율적 운영과 배구 흥행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올림픽을 준비하는 강팀들의 필수 코스이기 때문이다.

장신 유망주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남자배구의 임동혁(19세·203cm·제천산업고3), 차지환(22세·200cm·인하대2) 등은 국가대표팀에 조기 합류시켜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해줄 필요성이 충분히 있는 선수들이다.

임동혁은 지난 2015년 10월 한국 남자배구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바 있다. 2016년 1월 배구협회가 실시한 겨울철 스피드 배구 특별훈련, 2016년 9월 아시아배구연맹컵(AVC컵) 대회 출전 등을 거치며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그리고 지난 4월 아시아 유스(U19) 선수권 대회에서 이란, 중국 등 강호들을 연파하며 한국이 12년 만에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특히 중국과 8강 순위결정전에서 혼자 45득점, 이란과 준결승에서 41득점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였다. 이 대회 베스트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 공격수)로 뽑혔다.

임동혁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 배구 강팀들에서나 볼 수 있는 장신 라이트 공격수라는 점이다. 제천산업고 김광태 감독은 "임동혁의 현재 키는 맨발로 쟀을 때 203cm"라며 "신발까지 신으면 205cm도 거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대회를 갖다 오면서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지난해보다 체력과 공격 폼도 많이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203~205cm대 라이트 공격수는 한국 배구에게는 '꿈의 신장'이다. 현재 한국 남자배구 성인 국가대표팀에는 200cm 넘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언제 이런 장신 공격수가 또 나올지 알 수도 없다.

'오늘만 사는 배구'에서 벗어나야

차지환도 한국 배구에는 드문 200cm 레프트 공격수다. 장신임에도 몸이 날렵하고 공격력이 뛰어나다. 아직 대학 2학년생임에도 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인하대를 대학배구 최강으로 이끌고 있다. 대학배구 리그에서도 전체 선수 중 득점 3위, 공격성공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수비력은 보완이 필요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키워야 할 재목임에는 분명하다.

 정호영 선수(진주 선명여고1)

정호영 선수(진주 선명여고1) ⓒ 박진철


여자배구에서 정호영(17세·190cm·선명여고1)은 프로 팀 감독들조차 "김연경의 뒤를 이을 재목감이 틀림없어 보인다"고 말할 정도다. 장신임에도 점프력과 체공력, 순발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연습경기를 통해 정호영의 활약상을 직접 목격한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은 "아직 김연경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형 공격수로 성장할 잠재력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고 말했다.

정호영은 지난해 9월, 만 15세의 중학생 신분임에도 여자배구 성인 국가대표팀에 전격 발탁돼 뜨거운 화제가 됐다. 2001년생인 그는 당시 아시아배구연맹(AVC)컵 대회에 출전하면서 역대 여자배구 최연소 국가대표 신기록을 세웠다. 비록 교체 멤버로 간간이 출전했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안목을 키운 이후 1년 사이에 기량이 더욱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명여고 김양수 감독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 정호영을 레프트나 라이트 공격수로 고정시키겠다"고 말했다.

정호영은 현재 배구협회의 전학 관련 제재 조치 때문에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출전이 가능하다. 현재는 프로 팀과 연습경기 때만 주 공격수로 뛰고 있다. 한때 배구협회 내부에서 정호영을 국가대표팀에 선발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지금은 그마저 쏙 들어갔다. 

현재 한국 배구에 국가대표 감독 전임제 도입이 시급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지금 같은 사고와 국가대표 운영 방식을 지속한다면, 한국 배구의 미래가 긍정적일 수는 없다. 남녀 배구가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나 획득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김연경 은퇴 이후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오늘만 사는 배구'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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