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장훈 감독의 신작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를 스크린으로 소환한다. 광주로 향하는 외신기자를 태운 택시운전사라는 참신한 소재에, 송강호라는 훌륭한 배우를 업고 영화에 거는 관객들의 기대는 한층 고조됐다. 특히나 새로운 시대적 바람이 사회 곳곳에 불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적 관점을 발견하길 원했다. 일단은 합격점이다. 생각만큼의 감동을 전달한다는 평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송강호가 있다. 가장 세속적인 개인택시 운전사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해내는 소시민적 영웅으로 변화해가는 역을 충실하게 해낸다.

파르르 입술을 떨며 표현한 섬세한 감정은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외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처럼 주인공이 겪는 급격한 온도 차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영화는 송강호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택시운전사이자 일개의 소시민으로 정이 많지만 동시에 세속적 인물로 밑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강한 생활력의 기저에는 홀로 남은 딸을 둔다. 그렇게 가난하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로, 밀린 사글세 10만 원을 위해 그는 광주의 목격자가 된다.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 현장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 현장 ⓒ (주)쇼박스


수많은 시간을 할애해 만든 송강호의 캐릭터는 광주에 도착하면서 한 꺼풀씩 벗겨진다. 뜻밖에 변화의 시작은 참혹한 역사의 목격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소임을 묵묵하게 했던 광주 소시민들의 모습이다. 특히나 시청에서의 광주 내지인들이 보여준 호의와 그에 대한 송강호의 리액션은 관객들에게 뭉클한 전율을 만들어 낸다. 사물놀이를 하며 처음 보는 송강호에게도 주먹밥을 돌리는 광주시민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미소 속에서 우리는 시대를 공유하지만, 경계인으로서 금 밖에 있었던 존재로서 인간적 미안함을 느낀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송강호의 얼굴은 동시의 우리의 표정이기도 하다.

그 감정을 느끼고서야 우리는 하나의 주체로 광주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다. 내부인으로서 바라본 광주의 모습은 참혹했다. 존재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이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탄을 겨누었던 무자비한 권력. 빛이 안 새도록 이불로 창문을 막고 밥을 먹고 미래를 꿈꾸는 주인공들에게도 언제든지 총알이 날아올 수 있는 상황. 그것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영화를 보는 내내 극도의 서스펜스를 만들어 낸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괴물이 예고 없이 등장할 수 있는 이야기. 그 긴장감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공통되게 존재하는 사회적 상흔을 전제로 한다.

역사의 경계인에서 민주화 운동의 내부인으로 변화하는 캐릭터에 자신만의 색을 입힌 송강호의 연기력. 사회적 상흔이 만들어낸 시대적 서스펜스가 주는 긴장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동요한다. 하지만 참신한 서사를 풀어내는 단편적 플롯과 구성이 아쉬움을 남는다. 직업적 윤리와 결부돼 외신기자를 광주 안팎으로 옮기는 서사는 좋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플롯은 예상 가능할 정도로 단층 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카-체이싱과 같은 영화 전체 톤 앤드 매너와 어울리지 않은 장면은 몰입을 방해했으며, 딸을 남겨두고 다시 광주로 들어가는 주인공의 각성은 최근 전형화된 캐릭터를 가진 한국영화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 (주)쇼박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점은 광주 내부인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쓰인 것이다. 지금껏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극적인 역사적 서사 속에서 다층적이고 섬세한 인물묘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영화는 다소 직선적인 방식으로 광주인들을 소환했다. 1980년 5월 뜨거운 광주를 소환했다면 택시운전사에 비친 광주인들의 모습은 좀 더 호소력 있어야 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말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택시 운전사, 기자, 주유소 직원 등 절망적 상황 속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는 소시민들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1980년 광주 소시민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고통 한가운데서 그들이 꿈꾼 것은 바로 '민주주의'였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빛을 받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빛나는 미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시민으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한다면 언젠간 인간다운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 그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것을 스크린에 소환하기 위해 정치적 자유가 먼저 이뤄줘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몸소 증명한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어떤 위대한 영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역할과 책임에 충실한 소시민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영화가 다시금 우리에게 일깨운다.

택시운전사 송강호 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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