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를 두고 사람들은 말이 많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무어 그리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영화가 역사 드라마이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더욱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영화는 1945년 일제가 단말마(斷末魔)의 비명을 숨기며 제국주의 침략전쟁(대동아전쟁)의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절 이야기다. 일본 나가사키 현 남서쪽의 작은 섬 하시마(일명 군함도)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빠져 부산항과 시모노세키 항을 오가는 관부(關釜)연락선에 몸을 실은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 막상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해서 하시마 섬으로 이송당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은 단순히 자유로운 신분으로 돈 벌러 온 조선인이 아니라 '강제 징용'된 식민지 노예였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더구나 제국주의 군대와 경찰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는 조선인 앞잡이들이 일본인들보다 더 악독하다는 것이 조선인들을 더욱 분통 터지게 한다.

역사 그리고 그림자

 영화 <군함도>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엄정한 팩트의 잣대를 꼭 들이밀 필요가 있을까.

영화 <군함도>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엄정한 팩트의 잣대를 꼭 들이밀 필요가 있을까. ⓒ CJ엔터테인먼트


딸 소희(김수안 분)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기꺼이 제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는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이강옥(황정민 분), 당시 번화가였던 종로 일대를 평정한 건달 두목 최칠성(소지섭 분), 중국으로 팔려갔다가 이번에는 일본 하시마 섬의 유곽으로 팔려온 기구한 일생의 말년(이정현 분)이 등장한다.

여기에 독립군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사라진 조선인 윤학철(이경영 분)을 '모셔오라'는 명을 받고 하시마 섬에 잠입한 광복군 박무영(송중기 분)까지 가세한다. 식민지에서 끌려온 다양한 조선인 군상들이 석탄을 채굴하는 절해고도(絶海孤島)의 막장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막장 인생이 된 채 벌어지는 일들이 많은 현대 한국인들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나 보다.

특히 노무계 일을 하면서 주구의 끝을 보여주는 송종구(김민재 분)라는 캐릭터, 고명하신 독립군 지도자인 줄 알았는데 동포의 고혈을 팔아먹는 친일파 거두 윤학철(이경영 분)의 존재가 그러하다.

융 심리학적으로 송종구와 윤학철은 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shadow)'다. 그림자의 존재는 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불편한 우리의 그림자를 본격적으로 건드렸다는 점에서 영화 <군함도>는 도발적이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그림자와의 화해에 대한 문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영화 <암살> <밀정>을 살짝 웃도는 점수 밖에는 주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폭정에 시달리다 갑오년 동학 농민의 난에 들고 일어난 민초들에게는 일제의 조선 침략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주체가 조선 임금에서 일본 천황으로만 바뀌었을 뿐, 그들이 받는 고통이야 '오십보백보'였을 것임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었음에랴.

영화 그리고 팩트

 <3인의 광복군> 1945년 8월. 사진 왼쪽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선생.

▲ <3인의 광복군> 1945년 8월. 사진 왼쪽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선생. ⓒ 미상


영화 <군함도>가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팩트에서 착안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픽션에 너무 팩트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조금은 애써 담담한 마음으로 제국주의 말기 고통받는 식민지 백성들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마지막 광복군 김준엽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다시는 못난 조상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결의로 마음을 다잡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영화 속 박무영의 모델은 김준엽과 장준하 선생이다)

류승완 감독은 영리하게도 역사적 팩트에 착안하여 만든 픽션영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두고 '탈출의 성공이냐, 실패냐?'라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 영화의 엔딩은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바라보는 것이다.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떠나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역설적으로 그토록 아름다운 황금빛 노을처럼 묘사한 것이다.

비너스와 마르스 산드로 보티첼리 작품, 1483년 경. 목판에 템페라와 유채, 69.2 X 173.4 cm. 런던 국립 미술관

▲ 비너스와 마르스 산드로 보티첼리 작품, 1483년 경. 목판에 템페라와 유채, 69.2 X 173.4 cm. 런던 국립 미술관 ⓒ 산드로 보티첼리


융 심리학자인 제임스 힐만이 갈파했듯이, 그리스 신화에서 억센 털북숭이의 거칠고 잔악한 전쟁의 신 마르스의 연인은 역설적이게도 부드럽고 매끈한 팔등신의 비너스였다. 아레스-아프로디테, 즉 마르스-비너스의 대립 쌍만큼 전쟁의 역설적 미학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도 보기 힘들다.

화려한 황금빛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가지고 '전쟁은 아름답게 보이는 만큼 더 비극적이다'라는 이 역설적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군함도>는 잘 만든 영화다. (그러므로 영화 <군함도>를 인간의 본성의 한 측면을 제법 솜씨 있게 다룬 한편의 픽션으로 보지 않고, '국뽕'이니, 촛불이니, 유신독재 운운하며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 보려는 것은 작은 상자 속에 코끼리를 구겨 넣으려 하는 행위이다. 자신만의 이념적인 틀 속에 세상을 구겨 넣으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희망 그리고 비탄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 주민아 옮김 / 도솔 펴냄 / 2008.11 / 1만4500원)

▲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 주민아 옮김 / 도솔 펴냄 / 2008.11 / 1만4500원) ⓒ 도솔


영화 속에서 조선인들이 부른 노래는 <희망가>였다. 가사를 음미해보면 알겠지만, 제목과는 달리 절망에 빠진 식민지 조선인들의 비탄이 절절히 묻어난다. 그날 그때 하시마 섬에서 스러져간 조선인 징용자들이 느꼈을 심정이 이 노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풍진(風塵)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구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국 시민기자의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함도 #아레스비너스 #김준엽장준하 #제임스힐먼 #그림자(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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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의학자) 고려대 인문 예술과정 주임교수 역임. 융합심리학연구소장(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현)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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