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류현진 ⓒ LA다저스


부상 회복 이후, 류현진의 두 번째 등판. 류현진은 지난 미네소타와의 등판에서 3회까지는 압도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복귀 후의 퍼포먼스를 기대케 했다. 4회와 5회 급격히 제구가 흔들리고 실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한 달 동안 마이너 리햅 등판도 없이 실전을 소화한 선수로서는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였다.

또 오늘은 류현진 개인적으로도 동갑내기 절친 황재균과 맞대결을 펼치는 '꿈의 무대'가 펼쳐지는 경기였다. 한국무대의 상대전적은 45타수 13안타로 황재균의 통산타율(.286)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황재균이 강등 이후 누네즈의 트레이드와 맞물려 금방 돌아오면서 둘의 대결은 극적으로 성사됐다.

이런 무대에서 류현진과 선발 맞대결을 펼칠 선발투수는 자이언츠의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로 결정됐다. 원래는 맷 케인이 나오는 순서였지만, 경기 전날 보치 감독이 최근의 분위기 쇄신과 시리즈 스윕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범가너를 당겨쓰는 초강수를 두었다.

범가너는 이번에 류현진과 5번째 맞대결이다. 자신의 데뷔전을 포함해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가장 많은 맞대결을 펼친 선발투수가 바로 범가너다. 그 동안 범가너가 2승 2패를 기록했고, 류현진은 1승 2패를 안았다. (범가너 패전 나머지 1경기는 파코 로드리게스가 승리투수)

# 가장 많이 맞대결한 투수와 최고의 투수전 펼친 류현진

류현진은 1회 2개의 삼진을 곁들여(스팬, 펜스) 삼자범퇴로 가볍게 틀어막으며 1회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는 피칭을 보여줬다. 실제로 오늘 경기까지 첫 세이브 이후 있었던 선발등판 8경기 중 2경기에만 1회에 실점을 허용했을 뿐이다(6/17 메츠전, 6/22 신시내티전 각 1실점).

2회에 1사 1루 상황에 황재균과 첫 맞대결을 가졌고 풀카운트 접전 끝에 92.2마일 패스트볼로 땅볼을 유도해 선행주자를 잡아냈다. 후속 타자 벨트도 삼진으로 처리하며 정리.

3, 4회에는 의미있는 장면이 나왔다. 똑같이 선두타자 안타 이후 다음 타자가 초구 병살타를 때리며 2아웃을 잡은 것이다. 좋은 흐름이었지만 지난 경기 병살타 이후 제구가 흔들리고 투구수가 불어났던 장면이 있었기에 그때야말로 집중력을 발휘해야할 타이밍이었다. 3회에는 스팬을 땅볼로, 4회에는 포지를 삼진으로 돌려보내며 같은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

5회 두 번째로 만난 황재균은 공 3개 만에 전매특허 체인지업을 떨어트려 삼진으로 돌려보냈다. 5회가 끝난 시점에 투구수는 59구.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홈런치는 투수' 범가너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자칫 좋은 흐름이 끊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는 디너드 스팬이 병살타를 헌납하며 펜스와 같이 류현진을 도와줬다.

모처럼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시작부터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2루의 첫 위기를 맞았다. 이번에는 키케 에르난데스가 류현진의 도우미가 됐다. 키케 에르난데스는 깊지 않은 중견수 플라이를 잡고 기막힌 송구로 류현진을 도와줬다.

7회에 그랜달이 9번 타순에 들어서며 류현진은 경기에서 퇴장했고, 류현진은 7이닝 7K 5피안타 1볼넷 85구를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범가너와 정확히 똑같은 성적(범가너 투구수 99구)을 기록하며 두 좌완투수가 최고의 투수전을 보여줬다.

이후 8회 샌프란시스코가 길라스피의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냈지만, 9회 푸이그의 적시타가 터지며 동점으로 이어졌다. 11회초에 패닉의 적시타로 샌프란시스코가 리드했지만 이어진 11회말 시거의 2루타와 터너의 고의사구로 이뤄진 1사 1,2루 상황에 데뷔 첫 타석에 끝내기안타를 친 카일 파머의 깜짝 활약으로 다저스가 2-3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 상대의 약한 타선을 상대로 가장 자신있는 무기를 앞세워 공략한 류현진

 이번 시즌 샌프란시스코 야수들이 창출한 구종가치와 류현진의 오늘 투구분포. 대부분의 구종이 좋지 않은 타선을 감안해 이전에 자기가 가장 자신있게 던졌던 레퍼토리를 활용했다. 그간 적극 활용했던 커브는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샌프란시스코 야수들이 창출한 구종가치와 류현진의 오늘 투구분포. 대부분의 구종이 좋지 않은 타선을 감안해 이전에 자기가 가장 자신있게 던졌던 레퍼토리를 활용했다. 그간 적극 활용했던 커브는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다. ⓒ 정강민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타선의 구종 대처력이 대부분 바닥을 기는 팀이었다. 브룩스베이스볼에서 뽑아낸 구종 상대 창출 가치를 보면 샌프란시스코는 류현진이 던지는 구종 중 슬라이더만 중위권인 13위일뿐, 나머지 구종에 대해서는 20위권 밖이었다.

이 상황을 인식하고 나온 류현진은 커터나 슬라이더, 커브처럼 올해 새로 개발했거나 가다듬은 구종이 아닌, 자신이 가장 잘하고 처음 진출했을 때부터 무기였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85구 가운데 패스트볼(34)과 체인지업(28)이 전체 레퍼토리의 73%를 차지했다.

구속이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평균 구속도 90마일에서 형성됐고, 최고구속은 92마일이 나왔다. 그래도 구속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 타자들도 결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적극 활용했던 커브는 아껴두는 모습. 사실 류현진은 그간 새롭거나 개선된 구종이 주목받기 시작할 즈음까지는 적극 활용하고 이후에는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타선이 한바퀴 돈 시점부터 카운트 초중반에 가끔 1개 정도의 커브를 선택했다. (총 8구) 커터(10구)도 마찬가지였다.

# 행운도 상대타선도 류현진의 편이었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날카로운 타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펜스의 타구도 충분히 안타가 될만한 것이었고(타구속도 109마일), 3회말 나왔던 3루수 오른쪽을 뚫었던 고키스 에르난데스의 타구도 속도가 107마일로 상당히 잘 맞았다.

5회 크로포드와 벨트도 타구 방향이 상당히 날카로웠지만 타구 속도가 다행히 77-8마일 대에 머물렀고 수비수가 있는 위치로 나가면서 운도 상당히 따랐던 경기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 범가너의 등판, 류현진에게 오히려 좋은 영향을 줬다

오늘 맞붙은 투수는 자신의 소속팀뿐 아니라 리그 전체를 호령하는 에이스 투수인 매디슨 범가너였다. 올해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지만, 통산 3점대의 평균자책점과 함께 직전 4시즌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다. 특히 다저스 상대로는 27경기 170이닝을 소화할동안 ERA 2.70의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 당연히 많은 득점지원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이 부분이 오히려 류현진에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슈퍼에이스를 상대로 타선이 두들겨서 점수를 뽑아내는 것은 시즌 중 몇 차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아쉽지만 승리투수가 되는 것은 범가너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임을 인정하며 투구를 이어간 것이 좋은 투구 내용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 약체 타선이지만 이닝 이팅 능력보여줘... 다음 상대로도 좋은 기세 이어가야

샌프란시스코 타선은 압도적인 꼴찌 타선을 자랑하고 있다. 팬그래프가 산출한 공격의 종합 가치는 -100.6으로 29위인 콜로라도의 -79.7보다도 훨씬 안 좋다. 오늘의 퍼포먼스가 좋았다고는 하지만 상대 타선의 레벨도 분명 감안해야한다. 다음에 만날 상대는 기본적으로 더 좋은 타선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자신감을 갖는 호투를 펼친 것은 좋은 신호다. 지난 미네소타 전 좋은 징조를 보였던 류현진은 이제 오늘 호투를 발판 삼아 좋은 흐름을 잡을 찬스를 만났다. 다음 상대는 뉴욕 메츠원정경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리그 10위권의 타순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다.

오늘 최고의 투수전을 연출하며 전국방송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류현진. 계속 트레이드 시장에서 선발투수를 노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다저스에서 선발진을 사수하려면 이 지금이 아주 절호의 기회다. 이제 징조를 보이고 좋은 흐름을 불러왔으니, 그 흐름을 타고 유지하는 것이 베스트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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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MLB 다저스 선발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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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에서 일어난 팩트에 양념쳐서 가공하는 일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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