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파죽의 6연승 행진으로 공동 4위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양상문 감독이 이끄는 LG트윈스는 지난 21일 대구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경기에서 연장 11회 8점을 뽑아내는 폭발력을 과시하면서 10-4로 승리했다. 11회 최충연을 상대로 우중간 적시타를 터트린 오지환은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고, 이형종과 김재율은 지난해까지 LG 유니폼을 입었던 옛 동료 이승현을 상대로 백투백 홈런을 터트렸다.

마운드에서는 선발 차우찬의 8.1이닝 비자책 1실점 호투가 무위로 돌아간 가운데 10회에 등판한 정판헌이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세 번째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이날 정찬헌이 화제의 중심이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찬헌이 연장 11회 LG의 4번 타자로 나서 2타점 짜리 좌전 적시타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단 한 번의 스윙으로 두 명의 주자를 불러 들이며 '10할 타자'에 등극한 것이다.

부상·사건·사고 끊이지 않았던 정찬헌의 험난한 프로생활

 지난 2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 11회초 2사 주자 1, 2루 LG 이형종 홈런 때 득점한 정찬헌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이날 타자로 변신한 정찬헌은 2타점을 올렸다.

지난 2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 11회초 2사 주자 1, 2루 LG 이형종 홈런 때 득점한 정찬헌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이날 타자로 변신한 정찬헌은 2타점을 올렸다. ⓒ 연합뉴스


야구 명문 광주일고의 에이스였던 정찬헌은 2007년 대통령배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배 결승에서 광주일고에 패해 아쉬움의 눈물을 쏟아냈던 선수가 지금은 타자로 전향해 올스타전까지 출전한 서울고 이형종이었다(서울과 호남을 대표하는 고교 에이스 라이벌이었던 두 투수는 이듬해 나란히 LG에 입단하며 팀 동료가 됐다).

2008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1순위)로 LG에 지명된 정찬헌은 입단하자마자 김재박 감독의 눈에 들어 루키 시즌부터 사실상 풀타임 1군 선수로 활약했다. 데뷔 시즌에 106.1이닝을 던지며 시즌 최다패(13패) 투수가 된 정찬헌은 2009년에도 55경기에서 76.1이닝을 책임졌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 2년 동안 182.2이닝을 던진 정찬헌은 2009 시즌 막판부터 팔꿈치 통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금방 나아질 거 같았던 정찬헌의 팔꿈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2010년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고 시즌 아웃으로 이어졌다. 2010년 11월 미국에서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정찬헌은 2011년 2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다시 2년의 공백을 가졌다. 2년 동안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투수가 부상과 군 복무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팬들의 눈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2013년 팀에 복귀한 정찬헌은 4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하며 11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4년에는 1승 3패 3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4.44로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4월 2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빈볼 시비에 휘말리며 악동 이미지가 생기고 말았다. 정찬헌은 그 해 준플레이오프에서도 광주일고 선배 강정호에게 몸 맞는 공을 던지고 미안한 내색조차 하지 않아 팬들의 원성을 샀다.

정찬헌은 2015년에도 불펜 투수로 32경기에 등판했지만 6월 음주운전 사고를 내면서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지난 시즌에는 목뼈 부상으로 단 6경기 등판에 그쳤고 시즌 후에는 여성 대리기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물론 이 사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정찬헌의 누명은 풀렸지만 정찬헌의 이미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승리투수에 프로 데뷔 첫 타석 안타까지, 10할 타자 등극

정찬헌이 프로 입단 당시 받았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입단 동기인 나지완, 김선빈(이상 KIA 타이거즈), 임창민(NC 다이노스) 등이 KBO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로 성장한 데 비해 정찬헌은 프로 10년 차에도 여전히 45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평범한 불펜 투수일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정찬헌은 신정락과 함께 올 시즌 부상으로 초반 이탈이 불가피했던 마무리 임정우의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정찬헌은 올 시즌 지난 20일까지 35경기에 등판해 2승 4패 6세이브 2홀드 5.00으로 LG 마운드의 전천후 불펜 투수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전반기 4번의 패전이 있었지만 시즌 블론 세이브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정찬헌은 21일 삼성전에서 프로 데뷔 10년 만에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루를 경험했다. 경기 후반까지 삼성과 접전을 벌이던 LG는 8회 지명타자 박용택이 대주자 황목치승으로 교체되면서 투수가 4번 타순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의 바람과는 달리 9회 김지용이 대타 박한이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하며 경기는 연장으로 진행됐고 10회에 올라온 정찬헌이 1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재미 있는 상황은 11회에 발생했다. 11회 공격에서 오지환의 적시타로 리드를 잡은 LG는 4-2 2사 만루에서 '4번 타자' 정찬헌의 차례가 왔다. 양상문 감독은 11회 말 투구를 염두에 두고 정찬헌을 그대로 타석에 내보냈고 정찬헌은 바뀐 투수 이승현의 초구를 벼락 같이 잡아당겨 안익훈과 이천웅을 불러 들이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후 LG는 이형종과 김재율의 백투백 홈런으로 8점의 리드를 잡았고 정찬헌은 11회 마운드에 올라올 이유가 사라졌다.

LG의 봉중근은 고교 시절 청소년 대표팀의 에이스 겸 중심타자로 활약했을 정도로 뛰어난 타격 실력을 갖춘 투수였다. 하지만 정찬헌은 광주일고 시절에도 타석에 거의 선 적이 없다. 이 날을 대비해 남몰래 타격 연습을 했을 가능성도 낮다. 그런 정찬헌이 시속 140km의 빠른 공을 깨끗한 좌전 안타로 연결한 것은 과감한 스윙과 천운이 겹친 특별한 우연이라 할 수 있다. 승리 투수에 쐐기 타점까지. 프로 데뷔 10년 만에 찾아온 정찬헌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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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LG 트윈스 정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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