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UFC는 헤비급, 라이트헤비급, 웰터급 등 인기체급이 주춤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체급이 반대로 기세를 떨치고 있는 분위기다. 선수층이 쌓이고 그로 인해 경쟁구도가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 그 이유로 미들급, 라이트급, 페더급 등이 대표적이다.

 2017년 7월 9일 UFC213에서 미들급 잠정챔피언 벨트를 놓고 맞붙은 요엘 로메로(왼쪽)와 로버트 휘태커(오른쪽) 선수. 경기에서는 판정으로 휘태커가 승리했다.

2017년 7월 9일 UFC213에서 미들급 잠정챔피언 벨트를 놓고 맞붙은 요엘 로메로(왼쪽)와 로버트 휘태커(오른쪽) 선수. 경기에서는 판정으로 휘태커가 승리했다. ⓒ EPA/연합뉴스


미들급은 그야말로 '전국시대'다. 마이클 비스핑이라는 '역대 최악의 챔피언'이 체급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음에도 루크 락홀드, 크리스 와이드먼, 호나우두 소우자, 요엘 로메로, 게가드 무사시(최근 벨라토르와 계약), 비토 벨포트, 데릭 브런슨, 켈빈 가스텔럼 등 기량과 캐릭터를 갖춘 좋은 선수들이 즐비하다. 최근에는 로버트 휘태커라는 호주산 신성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가며 정상을 노리고 있다.

라이트급, 페더급 역시 코너 맥그리거가 난장판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파이터들이 중심을 잡아주며 UFC 기둥 역할을 잘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라이트급은 마이클 존슨, 에디 알바레즈, 에드손 바르보자, 마이클 키에사, 더스틴 포이리에, 알 이아퀸타, 짐 밀러, 앤써니 페티스 등이 두터운 선수층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토니 퍼거슨,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가 챔피언을 위협할 쌍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타 단체에서 건너온 빅네임 저스틴 게이치도 성공적으로 데뷔전을 마치며 태풍의 눈으로 평가받는 상황이다.

페더급은 신구조화가 매우 잘된 체급이다. 맥스 할로웨이, 조제 알도, 프랭크 에드가, 정찬성, 제레미 스티븐스, 데니스 버뮤데즈, 컵 스완슨, 히카르도 라마스 등 베테랑 라인에 브라이언 오르테가, 야이르 로드리게스, 머사드 벡틱, 최두호 등 미래자원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면 페더급 바로 아래라인인 밴텀급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모습이다. 경량급 특성상 뛰어난 선수들은 많지만 팬들의 관심을 끌만한 캐릭터가 많지 않아 인기라는 측면에서 소외되어있다. 새로이 챔피언에 오른 젊은 강자 코디 가브란트(25·미국)가 도미닉 크루즈(31·미국)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T.J. 딜라쇼(31·미국)와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강경호, 곽관호... 멈춰버린 '코리안파워'

UFC 현지에서의 인기와 상관없이 밴텀급은 국내 팬들 사이에서 나름 주목받던 체급이다. 다름 아닌 강경호(29·부산 팀 매드)와 곽관호(28·코리안 탑팀) 등 두명의 코리안파이터가 뛰고 있던 것이 그 이유다. 페더급 쌍두마차 정찬성, 최두호같은 역할을 밴텀급에서 강경호, 곽관호가 해주길 바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아쉽게도 페더급 수준의 코리안 돌풍을 밴텀급에서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대치로 챔피언까지 기대해볼만한 정찬성, 최두호와 달리 강경호, 곽관호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강경호는 밴텀급에서 2승 1패 1무효를 기록 중이다. 데뷔전에서 알렉스 '브루스 리로이' 케세레스(28·미국)에게 아쉽게 패한 그는 이후 심기일전하며 시미즈 순이치, 다나카 미치노리 등을 꺾었다. 특히 다나카 미치노리와의 경기에서는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보너스까지 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지 팬과 주최측에 자신을 어필할 부분이 부족하다. 성적도 지극히 평범하며 경기스타일도 화끈한 타입은 아니다. 마이너무대에서 뛸 때만 해도 그라운드, 스탠딩의 고른 밸런스를 바탕으로 상당한 임팩트를 남겼으나 UFC에서는 중하위권의 평범한 파이터일뿐이다. 정찬성, 최두호가 페더급에서 주목을 받았던 배경에는 화끈한 파이팅스타일도 영향을 끼쳤다.

물론 강경호는 아직 기회가 있다. 선수생활의 걸림돌이었던 군 문제를 마치고 돌아온 상태인지라 이제는 운동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반기 정도로 예상중인 복귀전에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인다면 충분히 체급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

문제는 곽관호다. 그는 UFC에서 치른 두 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첫 경기였던 브렛 존스(25·웨일스)전에서는 데뷔전이라는 부담감과 더불어 레슬링에서 밀린 이유가 컸다. 본인이 무엇을 보강해야 될지 과제를 남긴 한판이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있었던 러셀 돈(31·미국)과의 승부는 뼈아프다. 돈은 4연패 수렁에 빠져 퇴출 위기까지 몰린 파이터다. 체급 내 최약체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곽관호가 승리를 따낼 기회였다.

곽관호는 초반 펀치와 킥을 잘 살리며 정타를 꾸준히 넣었지만 돈이 데미지를 각오하고 터프하게 밀고 들어오자 기세에서 밀리며 경기 흐름을 넘겨줬다. 결국 자신의 장기인 타격에서 밀리며 1라운드 4분 9초 만에 TKO로 무너졌다. 곽관호는 UFC 주최측에서보면 인지도 낮은 동양인 파이터일뿐이다. 2경기를 모두 패한 상태인지라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밴텀급의 희망 가브란트, 스탭왕 시대 종결시킬까?

 UFC 밴텀급 챔피언 코디 가브란트 선수

UFC 밴텀급 챔피언 코디 가브란트 선수 ⓒ WIKIpedia


지금까지의 밴텀급 역사는 말 그대로 스탭왕들의 독주시대였다. 원조 제왕은 전 챔피언 도미닉 크루즈다. 화려하고 빠른 것은 물론 다채롭기까지 한 크루즈의 스탭은 마치 무협소설 속 '오행미종보법(五行迷縱步法)'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타격, 그래플링에 고루 능한지라 대응할 방법이 쉽지 않다. 크루즈와 맞서는 상대는 대부분 그의 현란한 움직임 속에서 경기내내 현혹되다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크루즈는 '지배자(The Dominator)'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공략 포인트를 찾아내기 힘든 완벽한 파이터였다. 하지만 그런 크루즈에게도 치명적 약점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내구력이었다. 크루즈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백기간이 길어졌다. 팬들 사이에서 '사이버 챔피언'이라는 말이 새로운 별명처럼 불릴 정도였다.

크루즈의 부상 공백을 틈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선수는 헤난 바라오(30·브라질)였다. 사나운 한 마리 맹견같던 그는 잠정챔피언을 거쳐 정식챔피언에 오르며 크루즈의 시대를 이어갈 새로운 주역으로 꼽혔다. 일각에서는 크루즈보다 더 강하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하지만 밴텀급 스탭왕의 역사는 여전히 유효했다. 바라오의 상승세를 잠재우고 스탭왕 계보를 이어간 선수는 다름 아닌 T.J. 딜라쇼였다.

'UFC 173' 메인이벤트 밴텀급 타이틀전서 딜라쇼가 바라오를 꺾으며 챔피언에 등극할 때만해도 이변이다는 분위기가 많았다. 딜라쇼가 좋은 선수이기는 했으나 바라오마저 격파하고 정상에 오를 정도의 존재감은 없었기 때문이다.

딜라쇼의 선수 커리어는 스탭왕이 되기 전과 되기 후로 나뉜다. 쓸만한 타격을 갖춘 레슬러 정도로 평가받던 딜라쇼는 명 타격코치 드웨인 루드윅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의 격투인생을 뒤바꿀 스탭을 장착하게 된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약조절이 적절하게 가미된 딜라쇼의 스탭은 크루즈 못지 않다. 옥타곤을 넓게 쓰며 상대의 공격 거리 밖에서 기회를 엿보다 빈틈을 발견하면 삽시간에 파고들어 공격을 펼치고 반격이 나오려는 찰나 잽싸게 빠져버리기를 반복한다. 사우스포 자세에서 훅과 어퍼컷이 나오다 느닷없이 오소독스로 전환하며 킥을 차는 등 자연스러운 엇박자 타격에 상대의 리듬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버린다. 거기에 타이밍태클까지 섞여 위력은 더욱 극대화된다.

결국 오랜 공백을 딛고 크루즈까지 복귀하자 밴텀급 구도는 스탭왕vs스탭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접전 끝에 크루즈가 딜라쇼를 꺾고 다시금 정상복귀에 성공한 시점에서 두명의 스탭왕을 위협할 선수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스탭왕 구도를 박살낸 선수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노 러브(No Love)' 코디 가브란트였다. 토마스 알메이다(25·브라질)와의 유망주 대결에서 승리한 그는 여세를 몰아 크루즈마저 물리치고 새로운 챔피언에 올랐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던 스탭왕 구도에 금이 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최측 입장에서 가브란트의 챔피언 등극은 반길 일이다. 크루즈와 딜라쇼는 강한 파이터임은 분명하지만 인기가 높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들의 스탭은 화려했으나 경기 내내 수 싸움 형식으로 이뤄졌는지라 화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 가브란트는 화끈하게 상대를 박살내는 유형인지라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상승중이다.

크루즈를 이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가브란트에게는 딜라쇼라는 적수가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가브란트와 두명의 스탭왕 사이를 잇고 있는 스토리 라인이다. 가브란트는 '캘리포니아키드' 유라이아 페이버(38·미국)가 수장으로 있는 팀 알파메일에 소속되어있다. 페이버가 이끄는 팀답게 알파메일은 경량급에 한해서만큼은 세계최고 체육관중 하나다. 선수들간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런 점에서 가브란트의 크루즈전 승리는 의미가 깊었다. 알파메일 입장에서 크루즈는 이른바 숙적이다. 크루즈는 수장 페이버를 비롯 조셉 베나비데즈, 딜라쇼(알파메일 소속 당시) 등 알파메일 선수들을 줄줄이 꺾은 전력이 있다. 알파메일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매우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알파메일의 명예를 가브란트가 지켜줬다. 가브란트 승리시 페이버가 당사자 이상으로 기뻐한 이유다.

가브란트는 본인을 위해 그리고 알파메일을 위해 빅매치를 한번 더 거쳐야 한다. 얼마전 딜라쇼는 알파메일을 떠났다.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소속팀 알파메일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양쪽의 감정도 좋지 않다.

둘은 본래 UFC 213에서 맞대결을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가브란트의 부상으로 경기진행에 브레이크가 상태다. 그 사이 딜라쇼와 플라이급 최강자 '마이티 마우스' 드미트리우스 존슨(30·미국)의 슈퍼파이트 얘기가 오가는 등 빅매치를 만들어보려는 주최측의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기만 문제일 뿐 가브란트와 딜라쇼의 대결은 피할 수 없다. 둘의 충돌은 현재 밴텀급에서 꺼내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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