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관련 사진.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관련 사진. ⓒ 소니픽쳐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스파이더맨: 홈 커밍>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대중'은 같은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라본다'의 대상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각적 대상일 수도 있고, 이상향과 같은 비가시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의미에서 다수의 사람이 무언가를 지켜보고, 공유하고, 또, 그것들이 주는 메시지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대중문화로는 영화를 들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대중의 동의다. 오늘날의 단어로 치환하면 '좋아요' 수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다. 대중의 인기를 얻은 영화, 대중의 공감을 산 영화는 좋아요 수가 많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기득권의 기득권 공고화다. 내 어린 시절 할리우드 영화 대부분이 그랬다. 백인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나라는 물론 지구까지 구했다. 백인 남성'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해결사 백인 남성'에 동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커다란 불편함을 못 느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뭔가 조금 다르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관련 사진.

피터 파커(우)와 그의 절친 네드(좌). ⓒ 소니픽쳐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을 연기한 배우들로 분류할 수 있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했던 <스파이더맨>에 대해 떠올려 보면, 백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피터 파커의 여자친구는 언제나 백인이었고, 그를 괴롭히는 힘 센 학교 친구들마저 백인이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다르다. 피터 파커의 가장 절친한 친구 '네드'는 필리핀계 미국인이었다. 피터 파커의 여자친구인 리즈 역시 흑인이었다. 주연들뿐 아니라, 피터 파커를 주도적으로 놀리는 친구, 학교 교장 선생님 등 비중 있는 조연들까지 여러 인종의 배우들을 배치했다.

"슈트 없이 아무것도 못하면, 넌 그 슈트를 가질 자격이 없어"

 영화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코리아


이번 영화에서 특기할 점이 하나 더 있다면, 슈트의 진화다. 인공지능 탑재로 시작되는 수백 가지가 넘는 거미줄 옵션, 낙하산, 내비게이션, 드론 등 다양한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슈트였다. 주인공의 부족함을 슈트가 보완해주는 측면이 여럿 보였다.

이전 시리즈와 달리 다양한 인종의 등장, 그들의 역할에 놀라며 영화를 보다 보니 내 머릿속에서 '슈트=피부'로 생각됐다. 그동안 피부색은 스파이더맨의 슈트처럼 특정 개인에게 이득을 준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 토니 스타크는 스파이더맨 슈트를 애원하는 피터 파커에게 "슈트 없이 아무것도 못 하면, 넌 더욱 그 슈트를 가질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다. '슈트보다는 내면의 본인(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사라고 생각됐다. 이는 '인종'을 넘어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적 편견에 일갈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백인 남성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전의 스파이더맨 영화들이 인종차별적 영화라고 단정 짓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역할로 등장한 것이 반가웠을 따름이다. 같은 것을 바라보는 대중의 구성이 다양하듯, 피사체도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브루스 배너 이후 2대 헐크로 한국계 아마데우스 조가 선정된 것처럼 말이다.

기존에 나왔던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흥미롭게 봤지만, 이번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여러 가지로 유의미한 영화였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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